플라스틱·단조로운 시설물…안전관리법 시행 후 획일화
움푹 패이고, 담배꽁초 등 일부 놀이터 관리 미흡

▲ 문수동 부영9차아파트 내 놀이터.

요즘 아이들은 놀 시간도 없지만, 그나마 아파트단지의 좁은 놀이터에서 논다. 이마저도 천편일률적인 놀이기구 몇 개를 오가면서 논다. 놀이기구 몇 개마저도 종류가 5개를 넘는 놀이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2008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시행 이후 안전이 강조되면서 동네 어린이놀이터는 판박이처럼 똑같아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은 놀이터 등 어린이놀이시설을 설치할 경우 설치 검사를 받도록 의무화 하는 법안으로, 지난 1월 26일 정부는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검사를 받지 않은 전국 놀이터 6만4494개 중 1813개(2015년 3월 26일 기준)를 일시 폐쇄했다. 이 중 1367개가 영세·노후 아파트나 주택단지 등에 설치된 민간놀이터시설로 나타났다.

여수 관내에서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폐쇄된 놀이터는 없지만 플라스틱 놀이기구로 대체되면서 획일화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놀이 공간이 안전 문제에 멱살 잡혀 숨통이 조이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어른들의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아이들의 놀 권리와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 신기동의 놀이터.

우레탄으로 포장된 바닥에 조합놀이기구를 하나 세우고 그 옆에 그네나 시소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놀이터가 복사한 듯 똑같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합놀이기구가 중앙에 놓여 있어 공놀이도 쉽지 않다. 모래 놀이는 더더욱 어렵다.

‘조합놀이기구-그네-시소’ 어린이놀이터 조성 공식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시설부터 여수시가 직접 관리하는 놀이터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반면 놀이터는 좁고 시설은 부족한데 아이들과는 무관한 성인용 운동기구가 설치된 놀이터는 늘고 있다.

지난 6일과 9일,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현재의 놀이터가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보낼 수 있을 만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놀이기구가 다양한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 놀이터 몇 곳을 돌아봤다.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만큼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곳도 있었다. 놀이시설은 거의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여수시 신기동의 한 어린이 놀이터. 바닥을 우레탄으로 포장하고 조합놀이기구 하나를 놀이터 가운데 설치한 후 그네 2개를 그 옆에 설치하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에 달궈진 플라스틱은 고무 냄새를 풍기고 있고, 자칫 화상까지 우려될 정도다.

▲ 신기동의 놀이터에 있는 정자. 주변에 담배꽁초 등이 버려져 있다.

또 다른 놀이터는 조합놀이기구만 설치돼 있다.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놀이 방법을 새롭게 만들어 낼 나무나 흙 등은 주변에 없다. 놀이기구 바로 옆에 있는 정자 밑에서는 담배꽁초가 여럿 눈에 띈다. 놀이시설 옆에는 성인용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별 생각 없이 이용할 경우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둔덕동에 있는 한 놀이터는 우레탄 바닥 위에 조합놀이기구 하나 밖에 없다. 주변에 깔린 잔디에서는 한 주민이 개를 데리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소라면 죽림지구 내에 있는 한 놀이터의 경우 그네 밑 우레탄 바닥이 움푹 패여 있고, 노출된 폐타이어칩이 흩어져 있다. 이곳 역시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문수동 부영9차아파트와 문수동, 미평동 일원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합놀이기구 계단을 짚고 올라가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우레탄 위를 달려 그네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놀았다.

▲ 문수동 부영9차아파트 뒤 놀이터.

부영9차아파트에 사는 주부 윤 모(39)씨는 “여기서 놀면 아이가 다칠 일은 많이 줄어들겠지만, 너무 단조로워 아이도 심심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아파트 뒤에 놀이터가 있긴 하지만 외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시가 직접 관리하는 진남체육공원 내 어린이놀이터 역시 시설이 빈약하다. 목재로 만들어진 놀이조합기구와 시소, 그네 등 놀이기구 5개가 전부다. 바로 옆에는 성인용 운동기구가 있다. 목재 놀이기구는 노후화돼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바닥은 모래가 깔려 있지만 휴지 등이 버려져 있어 지저분했다.

‘여수시 어린이공원 및 어린이놀이터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는 흡연이나 음주행위, 동반한 애완견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줄을 착용시키지 아니하거나 배설물을 수거하지 아니하고 방치하는 행위, 생활쓰레기를 적치하는 행위 등은 제한하고 있지만 이를 무색케 했다.

▲ 둔덕동의 놀이터. 한 주민이 개를 데리고 운동을 하고 있다.
둔덕·신기동 놀이터의 조합놀이기구에 부착된 ‘설치검사 및 정기 시설검사에 대한 표시’에는 A/S연락처만 적혀 있을 뿐 시설명, 검사자, 검사기관, 정기시설물검사합격여부 등은 기록돼 있지 않다.

현행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은 어린이놀이시설 관리주체는 설치검사를 받은 시설에 대해 2년에 1회 이상 안전검사기관으로부터 정기시설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관리주체는 설치검사 및 정기시설검사에 합격했음을 표시하고, 검사 불합격 시설에 대해 이용을 금지하며, 월 1회 이상 자체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의 의무도 갖는다.

여수시가 정기적으로 안전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놀이기구에 대해 어린이 부모를 안심시킬 최소한의 서비스도 안 되고 있는 것이다.

▲ 여수시가 관리하는 진남체육공원 내 어린이놀이터의 벤치 주변에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다.

마땅히 놀러 갈 곳 없는 여수, 부모들 매번 고민
비용과 효율성만 따져선 안 돼…인식전환이 먼저
공공영역으로 포함시켜 체계적 관리시스템 필요

놀이터가 창의성이 부족하고, 다양한 놀이시설이 없이 고만고만한 것은 지속적인 예산 투입과 관리의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합놀이기구 하나가 1000~1500만원 선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리주체가 민간인(공동주택단지 등) 놀이터 시설의 경우 주민들의 비용부담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놀이터에 투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장애아를 위한 놀이시설은 전무한 실정이다. 장애아들의 자유로운 놀이터 이용을 위해서는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대해 고려가 필요하다. 장애아와 비장애아들이 한데 모여 놀면서 치료와 회복의 통합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인식과 전문성,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상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창의적인 놀이터, 장애아를 위한 놀이터는 언감생심이다.

국내에서 장애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놀이터는 서울숲 무장애놀이터 ‘거인의 나라’와 국회 무장애놀이터 ‘애벌레의 꿈’ 단 2곳에 불과하다.

▲ 소라면 죽림지구 내 어린이 놀이터. 그네 밑 우레탄 바닥이 움푹 패여 있고, 페타이어칩이 흩어져 있다.

무엇보다 놀이터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비용과 효율성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수의 경우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배울 수 있는 동물원이나 놀이시설 다운 놀이시설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어서 유치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여수지역 부모들은 매번 고민에 빠진다.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당장 막대한 돈을 들여서 아이들 놀이시설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있는 놀이터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민간 놀이터시설을 공공영역으로 포함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여수지역의 어린이 놀이시설은 총 362개이다. 세부적으로는 공동주택단지 210개, 도시공원 내 놀이터 등 시에서 관리하는 놀이시설 75개, 어린이집 68개, 음식점 3개, 아동복지시설 1개, 키즈카페 등 놀이제공영업소 5개에 이른다.

▲ 둔덕동의 놀이터.조합놀이기구에 부착된 ‘설치검사 및 정기 시설검사에 대한 표시’에는 A/S연락처만 적혀 있을 뿐 시설명, 검사자, 검사기관, 정기시설물검사합격여부 등은 기록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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