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하기 ①] 겹받침의 발음, 문제가 심각하다.

10대들을 몰고 다니는 그룹 ‘블락비’를 아십니까? 남자인 우리가 봐도 좀 생겼는데, 여학생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이야 당연히 좋았지만, 발음 하나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앨범 <Her>에 수록된 ‘보기 드문 여자’라는 노래에 “굵직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 웬걸, ‘굵직한’을 [국찌칸]이 아니라 [굴찌칸]으로 발음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돌의 노래도 관심 있게 들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수 가인도 ‘Apple’이라는 노래에서, “우린 서로 넘지 못할 선을 밟고 Boy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어”라는 부분에 나오는 ‘밟고’를 [밥꼬]가 아닌 [발꼬]로 발음하는 게 아닙니까? 소속사에서 아이돌 그룹 하나를 탄생시키는 데 평균 10억 이상을 투자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비용을 쓰면서 발음 교정 하나 제대로 못한 것이 의문스러워졌습니다.

▲ “문법 공부,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라고 말하면 맞아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영어 문법보다는 국어 문법이 훨씬 쉽거든요. Ⓒ김전태

“겹받침 발음, 제1원칙과 제2원칙만 기억하면 됩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느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고2가 되어서 <문법>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나서야, 들을 귀가 열렸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배운 대로 쉽게 설명해 볼게요.

우리말에서, 한 음절의 중심을 이루는 모음은 가운뎃소리[중성(中聲)], 그 앞의 자음은 첫소리[초성(初聲)], 그 뒤의 자음은 끝소리[종성(終聲)]라고 하는 것은 아시지요.

     ┌ ㅎ …… 첫소리 …… 없음 ┐
한  ┤ ㅏ ……가운뎃소리… ㅣ   ├ 일
     └ ㄴ …… 끝소리 …… ㄹ    ┘

그런데 종성에 올 수 있는 겹자음은 11자(ㄳ,ㄵ,ㄶ,ㄺ,ㄻ,ㄼ,ㄽ,ㄾ,ㄿ,ㅀ,ㅄ)인데, 오늘 문제 삼는 것은 2자(ㄶ,ㅀ)를 제외한 9자(ㄳ,ㄵ,ㄺ,ㄻ,ㄼ,ㄽ,ㄾ,ㄿ,ㅄ)입니다. 국어의 음절 구조상 첫소리도 그렇지만 끝소리에도 하나의 자음밖에 올 수가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남고 하나는 탈락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 학교문법에서는 ‘자음군 단순화’라고 가르칩니다.

국어 어문 규정에 ‘표준어 규정’이 있고, 그 중에 ‘표준 발음법’을 규정하는 조항이 있는데 제11항(겹받침 ‘ㄺ, ㄻ, ㄿ’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ㄱ, ㅁ, ㅂ]으로 발음한다.)을 편의상 <겹받침 발음 제1원칙>이라고 하고 제10항(‘ㄳ’, ‘ㄵ’, ‘ㄼ, ㄽ, ㄾ’, ‘ㅄ’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ㄱ, ㄴ, ㄹ, ㅂ]으로 발음한다.)을 <겹받침 발음 제2원칙>이라고 하여 설명해 볼게요.

<1원칙>은 “가마표(ㄺ,ㄻ,ㄿ)는 제2자음 가마뵤(ㄱ,ㅁ,ㅂ)로 발음한다.”로 외우고서, “맑지→[막지]→[막찌], 젊고→[점고]→[점꼬], 읊지→[읖지]→[읍지]→[읍찌]” 등의 예를 떠올리면 돼요.

그리고 <1원칙 예외>로, “단, ‘용언 어간 ㄺ+ㄱ’은 제1자음(ㄹ)으로 발음한다.”를 외우고서, “맑게→[말게]→[말께]”를 예로 떠올리면 되지요. 여기서 한 가지! 그러면 왜 ‘닭과’는 “닭과→[닥과]→[닥꽈]”로 발음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어요. “용언의 어간 말음 ‘ㄺ’이 ‘ㄱ’앞에서” 와야 뒤의 ‘ㄱ’이 탈락하거든요. ‘닭’은 체언이잖아요. 그러니 ‘닭과’는 [닥꽈]로 발음해야지요.

<2원칙>은 “가마표 이외(‘ㄳ’, ‘ㄵ’, ‘ㄼ, ㄽ, ㄾ’, ‘ㅄ’)는 제1자음(예컨대 ㄼ은 ㄹ)으로 발음한다.”로 외우고서, “몫→[목], 앉고→[안고]→[안꼬], 넓다→[널다]→[널따], 외곬→[외골], 핥고→[할고]→[할꼬], 없다→[업다]→[업따]” 등의 예를 떠올리면 되지요.

그리고 <2원칙 예외>로 “단①, ‘밟+자음’은 제2자음(ㅂ)으로 발음한다.”를 외우고서, “밟다→[밥다]→[밥따], 밟지→[밥지]→[밥찌], 밟고→[밥고]→[밥꼬], 밟는→[밥는]→[밤는]” 등의 예를 떠올리면 되지요. 여기에서 하나 더, “단②, ‘넓적하다, 넓죽하다, 넓둥글다’는 제2자음(ㅂ)으로 발음한다.”를 외우고서 “넓적하다→[넙적하다]→[넙쩍하다]→[넙쩌카다], 넓죽하다→[넙죽하다]→[넙쭉하다]→[넙쭈카다], 넓둥글다→[넙둥글다]→[넙뚱글다]” 등의 예를 떠올리면 돼요.

이제야 알겠지요? 왜 ‘굵직한’을 [국찌칸]으로 발음해야 하고, ‘밟고’를 [밥꼬]로 발음해야 하는지를!

▲ “겹받침,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요?” 거리에 나가서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 박기표

“겹받침, 누구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어요.”

북적거리는 거리에 나서서 겹받침의 발음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었지요. 손사래를 치면서 가는 분이 대부분이었고, 바빠서 미안하다며 가는 분도 있었으며,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는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80여 명의 시민들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총 4개의 질문을 드렸는데 결과는 예상대로였지요.

겹받침 ‘ㄺ’과 관련하여서는 ‘굵직한’과 ‘맑지’를 물었고, 겹받침 ‘ㄼ’과 관련하여서는 ‘밟고’와 ‘짧네’를 물었습니다.

우선 ‘굵직한’이 [굴찌칸]이 맞다는 사람이 61명(76.25%)이었고 [국찌칸]이 맞다는 사람은 19명(23.7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맑지’는 [말찌]가 맞다는 사람이 56명(70%)이었고 [막찌]가 맞다는 사람은 24명(30%)이었습니다.

그리고 ‘밟고’가 [발꼬]가 맞다는 사람이 60명(75%), [밥꼬]가 맞다는 사람은 20명(25%)이었고, ‘짧네’는 [짬네]가 맞다는 사람이 58명(72.5%)이었고 [짤레]가 맞다는 사람은 22명(27.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4명 중에 3명이 발음을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된 데 대하여 김아무개(40대, 봉계동)씨는 “영어 발음이 틀리면 다들 난린데, 국어 발음은 틀려도 신경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아니, 틀린 것 자체를 모를 정도예요.”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길거리 인터뷰를 하다가 “말, 그것 통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받았거든요. 아마, 우리 또래의 학생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여수고등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치는 박홍균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게 아닙니까?” 길거리에서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질문을 던지러 박홍균 선생님(여수고)을 만나러 갔어요. ⓒ유정우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요?”

- 선생님, 영어 발음을 잘못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우리말은 잘못 발음해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지적하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그래놓고, 말만 통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요.

“모국어를 잘못 쓰고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다들 모르는 것 같아요. 영어는 발음 하나만 잘못 써도 마치 난리가 난 것처럼 법석을 떠는데, 우리말은 정반대지요. 그러고서 왜 그런 말을 쓰느냐고 나무라면, 이렇게 말들을 하지요. 말이야 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뜻만 통하면 되지 하며 말이죠. 그건 자기 부끄러움을 덮으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아요.”

- 이번 기사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겹받침 발음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우리말 문법이 너무 어려운 게 아닌가요?

“문법을 쉽다고 하면 욕먹을 거예요. 사실 우리말 문법은 상당히 까다로워요. 하지만 단언컨대, 영어 문법에 비해서 국어 문법은 정말 쉬워요. 영문법 공부하는 데 쓰는 시간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국어 문법이 환하게 보일 거예요. 겹받침의 경우만 해도 그래요. 겹자음이 나오면 둘 중에 어떤 하나만을 발음하게 되어 있는데, 아주 간명한 규칙이 있거든요. 그런데 공부도 하지 않고 어렵다고만 해요.”

- 나이 드신 분들에게 문법 공부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법 공부는 이론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귀에 익고 입에 익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게 방송 매체입니다. 그런데 우리 방송인들을 한번 보세요.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겹받침 하나 제대로 발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방송국에서도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고요.”

선생님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다가 또 다른 의문이 생겼는데요.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들이 겹받침을 어떻게 발음하는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뉴스의 기상예보를 면밀하게 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 “오늘 날씨는 맑지만[말찌만]…” 기상예보에서의 잘못된 겹받침 발음은 심각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YTN, 연합뉴스, KBS, MBC’입니다만 다들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방송국도 비슷했고요. ⓒ유건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맑지만’은 [막찌만]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말찌만]으로 발음하거나 [말찌만]과 [막지만]을 뒤섞은 듯이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맑고’ 또한 [말꼬]가 아니라 [막꼬]로 발음하거나 [말꼬]와 [막꼬]의 중간쯤으로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맑습니다’ 또한 [막씀니다]가 아닌 [말씀니다]로, ‘맑겠습니다’ 또한 [말껟씀니다]가 아닌 [막껟씀니다]로 발음하는 경우가 꽤 되었습니다.

이제 시민들이 왜 그렇게 엉터리로 발음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어 발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아나운서나 기상캐스터가 그런 실수를 반복하는데도 그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은 게 우리 현실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국’인 KBS에서조차 겹받침을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랑해여수 6기! 인사드립니다. 송준, 김진우, 박기표, 박우준, 유건희, 유정우 기자입니다. ⓒ김진우

(기사 작성 : <사랑해여수 6기> 송준, 김진우, 박기표, 박우준, 유건희, 유정우 기자)

♣ 취재 후기 
지상파 방송국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파급력은 엄청납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런데 ‘민영 방송국’인 SBS나 MBC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국’인 KBS마저도 ‘겹받침 발음’에서는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 충격이 컸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작 몇 시간 문법 공부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언론고시’를 통과한 그분들이 왜 모를까, 지금도 몹시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이번 기사를 빌미삼아 계약직인 기상캐스터를 해고하는 일은 정말 없어야 합니다. 그럴 방송국은 없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내내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여수지역고등학생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6기, 팀장 : 송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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