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고, 빽 없고, 돈 없어…수십 년 동안 소음에, 쇳가루·페인트 비산 마시면서 살고 있다”

여수시 남산동 주민들이 최근 폭발사고를 일으킨 남양조선소의 이전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조선소 입구에 내걸었다.
조선소 인근의 주택 옥상 물탱크에 자석을 대자 쇳가루가 달라붙는다.

남산동 조선소 인근 주민들 “쇳가루·소음·페인트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
“주민들 수십 년째 고통당하고 있는데 여수시·의회 우릴 방치하고 있다”

‘건강권’은 국민이 가진 기본권의 하나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보건의료기본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성별·연령·종교·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째 건강은커녕 정상적인 주거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을 보장받지 못한 채 쇳가루와 소음, 악취 등에 고통을 호소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조선소 인근 주민들이다.

여기에다 최근 조선소에서 폭발사고로 작업자 1명이 숨져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7시50분께 남산동 남양조선소 내에서 작업자가 용접작업을 하던 중 전날 선실 내부에 페인트칠을 한 뒤 뚜껑을 열어놓지 않아 차 있던 유증기와 용접 불꽃이 닿으면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가 숨졌다.

남산동의 남양조선소 전경.

주민들은 이날 ‘펑’하는 폭발음에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등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남산동 주민 김모(77·여)씨는 “옥상 장독대의 뚜껑이 금이 가면서 깨졌다”고 말했다. 이어 “옆집 주민은 아침밥을 먹으려는데 폭발음이 크게 들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는 지인의 집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이날 사고는 평소 조선소의 안전관리 등이 허술하게 이뤄져 ‘예견된 사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조선소 측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을 먼지에, 소음에, 악취에, 더 이상 말하는 것도 지쳤다. 이제는 폭발사고까지, 참는데 한계가 왔다”고 말했다.

주민 황선길(71·남)씨는 “용접을 위한 산소통과 철판 조각들이 곳곳에 너저분하게 있고,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와 배를 건조하면서 발생한 쇳조각 등이 방치되면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조선소 토양오염도 우려되는데 행정 기관의 지도단속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수시 남산동의 남양조선소의 폭발사고가 발생한 선박.
여수시 남산동의 남양조선소.

황씨는 “지붕에 쇳가루가 내려 앉아 지붕 색깔이 변할 정도다. 조선소 인근 주민들은 수십 년간 쇳가루를 마시며 살고 있다. 여기에다 각종 소음과 페인트 냄새 등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조선소 측은 물론 여수시와 시의회는 우리를 방치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 기자 양반이 봐라. 이 동네에서 살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지붕도 지붕이지만 집안의 가전제품도 먼지가 내려앉아 쓸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특히 “쇳가루와 페인트 냄새 등으로 인해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데 관계 기관들은 주민들이 죽든 말든 방관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소 인근에서 35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김제길(60대·남)씨는 “지금은 물이 들어서 보이지 않는데 물이 빠지면 바닥에 쇳조각과 쇳가루, 용접봉 등이 널려 있다. 물이 들거나 비가 오면 쌓여 있던 쇳가루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쇳가루를 물고기도 먹고, 사람도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 뒤쪽 주택가.

김씨는 “바람이 불면 쇳가루가 집으로 날아온다. 지붕과 창문 틈에 새까맣게 내려앉았다. 선박 도색을 위한 탈청작업과 도장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와 페인트로 인해 호흡이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어느 날 인근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페인트 작업 때문에 바닷물이 하얗게 변해 조선소 측에 항의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소 인근에서 36년째 살고 있다는 다른 한 주민(60대·여)은 “민원을 넣어 여수시청 직원이 나와도 그때뿐이다. 힘 없고 빽 없고 돈 없어 수십 년 동안 쇳가루를 마시고 살고 있다. 주민들만 불쌍하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팔을 봐라. 가려워서 긁는다. 몸 전체가 가렵다. 의사가 ‘독이 올라서 그런다’고 그러더라. 치료를 받을 때뿐이고 소용이 없다. 피부가 가려운 주민들이 많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했다.

조선소 인근의 주택 지붕을 흰 장갑으로 문지르자 쇳가루가 묻어나오고 있다.
조선소 인근의 주택 옥상 물탱크에 흰 장갑으로 문지르자 쇳가루가 묻어나오고 있다.
조선소 인근의 가드레일을 흰 장갑으로 문지르자 쇳가루가 묻어나오고 있다.

”페인트 냄새 때문에 만성 두통이 생겼다”
”밥숟가락을 떨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현수막 내걸고 ‘조선소 이전하라’ 요구
주민들, 여수시 등에 대책 마련 촉구

21살에 이 동네로 시집을 왔다는 주민 김모(77·여)씨는 “교회에 나가 새벽 기도를 다녀온 후 자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야간작업을 많이 하는 여름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교대 근무를 하는 아들은 잠을 설치기 일쑤다. 한밤중에 갑자기 나는 소음에 놀라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고 말했다.

김씨는 “쇳가루가 쌓여 옥상 곳곳이 까맣다. 특히 비가 오면 황톳물 색깔을 띠는데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는다. 내놔도 안 산다. 새 건물은 엄두를 못 낸다. 조선소 옆에다 새 건물을 지을 수는 없지 않냐. 옆집은 아예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갔다. 며느리와 아이가 피부병을 앓아 이사를 간 집도 있다”고 했다. 실제 조선소 바로 뒤에는 빈집들이 많다.

그는 “페인트 냄새 때문에 만성 두통이 생겼다. 미칠 지경이다”고 말했다. 그는 “방진그물망을 설치해도 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바람을 막아 버려 우리가 돼지우리에 사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선소 뒤쪽 주택가. 방진그물망을 쳐놨다.

현재 남양조선소 측은 뒤쪽에 높이 10여m 가량의 ‘방진그물망’을 설치해 두고 있다.

또한 김씨는 “배 건조에 사용할 철판을 차로 싣고 와서 야적을 할 때 발생하는 ‘꽝’하는 소리에 밥숟가락을 떨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집이 흔들릴 정도다. 그리고 비산 먼지 때문에 집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 이불은 작업을 하지 않는 일요일에 말린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18일 남양조선소 입구 등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조선소 이전을 촉구하는 등 여수시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현수막에는 ‘소음에 귀머거리, 쇳가루에 피부병 수십 년 참아왔다. 사람이 먼저다. 남양조선소 이전하라’, ‘코가 맹맹, 귀가 멍멍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비산먼지, 소음공해 주민들은 죽어간다!’, ‘여수시는 하루빨리 주민생활 위협하는 조선소를 옮겨주라!’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조선소와 주택들이 인접해 있다.

한 주민(60대·남)은 “조선소가 이주를 하든지, 주민들을 이주시켜 주든지, 여수시가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여수시나 시·도의원, 국회의원들이 와서 직접 봐라. 선거 때만 되면 ‘해결해 준다’고 큰소리 땅땅 치더니 당선 되면 감감무소식이다. 쇳가루에 소음에 주민들이 골병이 들고 있는데 시장은 알랑가 모르겠다. 조선소 측과는 더 이상 말이 안 된다. 우리도 시민이고 국민인데 여수시나 전남도,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줘야지 이런 환경에서 사람이 산다는 게 말이 되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이어 “주민들이 순하고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시청에 쳐들어갈 시간도 없고, 데모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행정이 이를 방치해도 되는 것이냐. 이런 실정을 알고 안다면 먼저 대책을 세우는 게 행정의 역할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도심 한가운데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어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소 뒤쪽 주택가 빈집.

주민 건강 역학조사나 피해 조사한 적 없어
주민들, 여수시 수수방관 강한 불만 토로

이처럼 주민들이 수십 년간 쇳가루를 마시고 소음에 시달리면서 피해를 입고 있지만 주민들에 대한 건강 역학조사나 피해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 특히 쇳가루가 바다로 유입되고 있지만 조선소 인근 해역에 대한 오염 조사도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여수시는 비산먼지와 소음 등으로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시설 개선이나 보완 조치 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다.

주민들은 이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민들이 수십 년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대책 마련은커녕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에 여수시가 그동안 수수방관해 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수시는 도심 해안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에 따라 2006년부터 조선소 집단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용역을 두 차례 진행했지만 10여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조선소 집단화 추진 사업은 주철현 시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남산동 주민들이 최근 폭발사고를 일으킨 남양조선소의 이전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조선소 입구에 내걸었다.

여수시는 현재 남양조선소 부지가 포함된 주변 해안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해 줄 것을 건의해 두고 있으며, 해수부는 남양조선소가 포함된 ‘여수구항 친수공간 조성사업’을 제3차 항만기본계획에 포함해 용역중이며, 12월쯤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한편 남양조선소는 매 3년 단위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갱신하고 있으며, 여수시는 공장등록은 1982년 2월에 했다고 밝혔다.

조선소와 관련한 업무는 비산먼지와 소음은 여수시, 안전사고는 여수고용노동지청, 해양오염은 여수해양경비안전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는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맡고 있다.

조선소 뒤쪽 주택가.
조선소 뒤쪽 주택가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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