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지식창고·지역 문화의 산증인
경영난 견디지 못하고 끝내 폐점키로
시민들 “안타깝다, 살려야 한다” 반응

1952년 문을 연 이래 여수를 대표하는 서점으로 자리매김한 대양서림이 문을 닫는다.

63년 전통의 여수 대표 향토서점 ‘대양서림’이 문을 닫는다.

여수지역 서점계의 산증인으로 문화, 사회에 큰 뿌리 역할을 해 왔던 토종서점 종가의 폐점 사실이 전해지자 시민들에게는 크나큰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일 여수시 교동의 대양서림 정문에서는 재고 도서를 반품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서점의 대표인 배상동 씨는 “60여 년 동안 사랑하고 아껴 주신 점 감사드린다. 더 이상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서점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살에 점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아침 8시에 출근, 저녁 10시에 퇴근했는데 그 결과는 폐업이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배 대표는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이 어음결제까지 연기해 주겠다는 등 서점을 아껴주시던 분들이 어떻게든 서점을 살려보자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더라. 특히 9~11월은 책이 가장 안 팔리는 시기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서점을 찾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분이 손을 잡으면서 ‘대양서림이 왜 이리 작아졌느냐’,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 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여수시 교동 대양서림. 현재 전국의 출판사와 도서 배송업체에 폐업 사실을 알리고, 재고 도서를 반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폐업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시민들은 직접 찾아와서 “어찌 된 일이냐. 다시 살려보자”며 다들 안타까워한다고 전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양서림의 폐업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서점에 들른 한 60대 시민은 “한 달에 4~5회는 꼭 서점을 찾는다. 어릴 적부터 이 서점을 드나들며 마음의 양식을 키워 왔는데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수에 서점다운 서점은 대양서림이 유일한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현재 대양서림은 전국의 출판사와 도서 배송업체에 폐업 사실을 알리고, 재고 도서를 반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도서가 정리되면 며칠 내로 폐업 신고를 할 예정이다.

여수시 교동 대양서림. 현재 전국의 출판사와 도서 배송업체에 폐업 사실을 알리고, 재고 도서를 반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52년 문을 연 이래 여수를 대표하는 서점으로 자리매김한 대양서림은 지역 문화의 상징이었다.

인터넷 서점이 급성장하고 독서 인구 감소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유해 도서보급과 여수시민의 지식창고 역할을 해왔지만 결국 시대적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배 대표는 “책장에서 책이 하나둘 빠져 나갈 때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서점 문을 닫는 것은 내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63년 전통을 가진 서점이 우리 지역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더 서글프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지난해 11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최저가 입찰이 사실상 무의미해지자 유령 서점들이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등 공공기관 납품에 뛰어들어 지역 중소 서점들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했다. 등록은 되어 있지만 서점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 유령 서점이나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도매업자가 낙찰을 받는다는 것이다.

서점은 신고제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의 업체라도 취급 품목에 도서항목만 추가하면 입찰에 응할 수 있어 유령 서점의 입찰은 늘고 있다. 배 대표는 “도서정가제 시행 후 100여 군데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도저히 입찰을 따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지역 서점이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여수시가 서점들을 지킬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양서림 입구의 종이 박스에 쌓인 책들.

여수문인협회 임호상 지회장은 “대양서림은 지역 문화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역사의 큰 줄기 하나가 세파에 밀려 쓰러지는 것이니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대양서림처럼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라면 지자체나 교육계가 팔을 걷어붙여서라도 명맥을 유지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일 텐데 그런 움직임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시민 김정숙 씨는 여수시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여수의 부흥기였던 80~90년대, 대양서림은 만남의 장소이자 지식의 나눔 장소로 여수시민에게는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묻어 있는 곳”이라면서 “60년의 전통을 가진 대양서림이 결국 문을 닫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전국적으로 서점을 찾기가 힘든 요즘 여수의 근현대사를 같이한 대양서림의 이름과 장소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여수시는 이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줘야 한다”면서 “이곳을 공용서점, 도서관, 박물관 등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달라고”고 했다.

빈 책장 위에 대양서림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여수시 교동 대양서림 내 계단에 걸려 있는 사진. 대양서림이 지난 2002년 개점 50주년을 맞아 ‘책과 함께 50주년 그 반세기를 넘어’란 주제로 개최한 사진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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