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인물’ 우선 공감…‘사건과 스토리’ 있으면 가능
시장 의지의 문제…과감한 정책적 우선순위 재조정 필요

▲ 손상기(1949-1988)는 여수 출신의 천재 화가로 척추장애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미술계에서 일찌감치 주목 받아왔다. 손상기는 남면 연도리 출신으로 여수서초등학교, 여수제일중, 여수상고를 거쳐 원광대를 다녔고, 평생 여수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작가이다.

인물을 활용한 도시 마케팅에 앞서 인물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특색 있는 스토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 문화자원인 문화예술인들의 자료와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발굴과 정리가 미흡해 공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실한 상황에서 유명 인물만을 내세운 마케팅은 철학과 가치의 빈곤을 드러낼 수 있다.

단순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인물이 현실에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정책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문화예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동시에 지역민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게 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인물마케팅은 ‘지역과 인물’이 우선 공감해야 하고 ‘사건과 스토리’가 있으면 가능하다. 그 인물의 가치를 깊이 있게 재해석한 후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 로드맵 설정과 지속적인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물론 대외 인지도가 미미한 인물은 관광객을 흡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인지도가 미미한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차별화하고 공감이라는 옷을 입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케팅을 떠나 우리 지역 출신 인물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일은 시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과업이라는 지적이다.

지역출신(연고) 유명인물을 활용하는 인물마케팅을 이르는 ‘셀렙마케팅(celeb marketing)’이 있다. 셀렙마케팅은 유명인(celebrity)과 마케팅(marketing)의 합성어로,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인 등 유명인물을 활용한 마케팅이다.

셀렙마케팅은 인물마케팅뿐만 아니라 전시관, 미술관, 거리조성 등 다양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여수에 ‘식객거리’나 ‘허영만 공원’을 만드는 방안도 있다. 허 화백 작품의 다양한 만화 캐릭터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원에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 모형도 만들고, 저팔계나 사오정의 다양한 모형을 만들어 그 안에 애니메이션도 상영하면 전국의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천사벽화골목에 만화 캐릭터가 일부 그려져 있지만 크게 어필하지는 못하고 있다.

김정수 작가의 기념관도 가능하다. 전원일기 세트장을 만들어 추억을 상영하고, 당시 출연진들도 초청해 방문객과의 만남도 가지는 등 활용 가능한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인물마케팅으로 성공한 외국이나 전국의 도시들 사례는 무수히 많다. 반드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서는 여수시의 의지의 문제이지 방법의 문제는 아니다. 과감한 정책적 우선순위 재조정이 요구된다.

▲ 손상기 작. 나의 어머니 45x38cm 1986

인물 평가 엇갈려…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자료 조사와 평가 선행돼야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 복지 증진 제도 등 생태계 조성 시급

여수시가 지난 2일 지역 출신 허영만 화백에게 웅천 장도에 빈집을 리모델링한 아뜰리에(작업실)을 제공하겠다고 밝히자 지역 예술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예울마루 2단계 사업(장도 개발)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수시가 계획에 없던 허 화백을 장도에 갑자기 입주시킨 것은 예울마루 기본계획 축소 움직임을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지역 미술인들은 “허영만 화백은 우리미술인 들이 존경하는 선배이자 동료로 이분에게 작업실도 제공하고 전시장도 만드는 일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여수시와 예울마루가 체결한 허영만 선생님의 아뜰리에(작업실) 사업은 졸속 행정의 극치”라며 “작업실의 위치, 초대방법, 급조된 작업실 제공은 허영만 선생님의 명성에도 맞지 않는 대우”라고 비판했다.

이는 여수시가 성과 보여주기와 중장기 로드맵 없는 문화예술 정책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수시는 이날 앞으로 지역 출신 예술인들이 고향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 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먼저,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과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 작업과 조사, 특히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이 있는 만큼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극히 일부 문화예술인들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인물이나 작품에 대한 시 차원의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 평가가 사실상 전무하다. 이는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지역 출신 인물 모두에게 해당된다. 여수시사 등에 기록돼 있긴 하지만 단편적으로 나열해 놓았을 뿐 입체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줄곧 지역에서 활동해온 예술인 A씨는 “단지 여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검증 없이 환대 받아서는 안 된다. 여수와 관련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삶과 작품 활동보다는 취미 수준의 작품 활동을 한 인물도 있다. 작품 세계나 작가의 삶 등에 대한 냉철한 평가 등 철저한 검증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의 유명인물을 활용한 마케팅이 도시의 브랜드 가치와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씨는 “소수의 유명 문화예술인에 집중하다보면 정작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지역 예술인들이 소외받을 수 있다. 지역에서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창작 활동을 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여건 조성도 병행돼야 한다. 먼저 예술인들의 생활 실태와 복지를 공론화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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