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이외수, 청도 전유성, 보성 조정래, 대구 김광석, 통영 윤이상
제주도·부산·통영 이중섭 활용 등 문학·음악·미술 장르 구분 없어

지역의 인물은 훌륭한 마케팅 수단일 뿐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원이다. 인물이 곧 도시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인을 활용한 지역 홍보·마케팅은 그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강원도 화천군은 2004년부터 75억원을 들여 문학관과 집필실을 짓고, 2006년 춘천이 고향인 소설가 이외수 씨를 감성마을에 정착시켰다. 이 씨의 영향력을 짐작할 만한 일화가 있다.

이 씨는 2011년 10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외수가 사는 화천 다목리 해발 700m 고지에서 재배한 배추. 양념과 절임이 대박입니다’. 그리고 글 밑에 다목리 이장 전화번호도 달았다. 이 한 문장의 글로 열흘간 배추 15t이 팔렸다. 당시 이곳 농민들은 배춧값 폭락으로 밭을 갈아엎으려던 참이었다.

경북 청도군은 개그맨 전유성 씨 덕에 유명해졌다. 청도군 등의 지원으로 ‘철가방 코미디 극장’을 지은 전 씨는 ‘개나 소나 콘서트’ 등으로 청도에 ‘웃음 마을’ 이미지를 심었다.

▲ 청도의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홈페이지 캡쳐.

울릉도엔 포크 싱어송라이터 이장희 씨가 있다. 1960년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과 함께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통기타 1세대로 활약했다.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2004년부터 울릉도에 거주하고 있는 이 씨는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경북도는 울릉도에 이장희 극장 겸 기념관을 짓고 있다. 이미 2011년 울릉군은 울릉도의 이장희 소유 농장 ‘울릉천국’에 ‘울릉도는 나의 천국’ 시비를 세웠다. 그 옆에는 조영남을 비롯해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김세환 등의 가수와 MC 이상벽, 개그맨 전유성, 화가 이두식, 사진작가 김중만, 전유성 등 이장희 절친들의 친필 사인이 새겨졌다.

이외수, 전유성, 이장희 씨는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니지만 지자체들이 투자를 통해 유치한 인물들이다.

외국의 사례도 있다. ‘To Mr. Santa Claus(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전 세계 어디에서든 겉봉투에 이렇게만 써도 편지는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클로스 마을로 배달된다. 해마다 이곳에 도착하는 편지는 75만여 통으로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일일이 답장을 해준다. 덕분에 로바니에미는 산타클로스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로바니에미, 산타클로스가 이 도시를 살려냈다.

이들은 지역을 살린 대표적 사례들로 인물을 활용한 지역 홍보·마케팅은 실존 인물이냐 가상 인물이냐를 가리지 않는다. 지역과 연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물을 어떻게 재탄생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문학가와 그의 작품, 성장 과정 등을 지역의 자원으로 활용한 사례도 많다.

▲ 통영 윤이상 기념관 (자료사진)

한국의 대표적인 예향(藝鄕)으로 불리는 통영은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등 우리나라의 걸출한 예술인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인물을 활용한 도시 마케팅으로 문화예술 도시라는 각인을 시키고 있다. 인구 14만에 지나지 않는 통영은 도시 곳곳에 전시관, 미술관, 유물관, 작가 동상, 시비, 대형 옥외광고물 광고판, 버스승강장 안내판 같은 공공시설물을 활용해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도시 자체가 문화예술 공간이랄 수 있다.

경남 하동군은 통영 출신 고(故) 박경리 작가를 앞세운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면 평사리에 문학관을 세우고 ‘토지길’도 만들었다.

경기 양평군도 소설 ‘소나기’를 쓴 고 황순원 작가의 문학촌을 짓고 매년 문학제를 열고 있다. 황 작가는 양평 출신이 아니지만, 양평군은 ‘소녀는 양평으로 떠나갔다’는 소설 속 한 대목을 끄집어냈다.

전남 보성군이 지난 2008년 11월 44억여원을 들여 벌교읍에 설립한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은 지난해 말까지 50만명이 방문, 매년 가을 열리는 ‘벌교 꼬막축제’와 함께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문학관에는 소설을 위한 준비와 집필, 소설 태백산맥의 탈고, 소설 태백산맥 출간 이후 작가의 삶과 문학 ‘소설태백산맥’ 등 159건 719점(육필원고 등 증여 작품)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보성군은 2018년까지 80억원을 들여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 ‘술도가’, ‘청년단 활동 무대’ 등 소설 속의 시설을 단계적으로 공원으로 조성하는 ‘태백산맥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태백산맥문학관 (사진 보성군)

대구시의 ‘영원한 가객’ 김광석 거리는 서울, 부산, 강원, 제주 등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평일 1000~1200명, 주말에는 4000~5000명이 몰려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대구 포크 페스티벌’도 시작됐다. 이제 김광석은 전국 어느 도시도 갖지 못한 대구만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이는 수십억, 수백억 원을 들여 대형 시설을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는 것으로 말해준다. 대구 출신인 김광석은 5살까지 이곳에서 살다 서울로 이주했다.

제주도와 부산, 통영은 이중섭을 활용하고 있다. 기념관과 거리, 공방을 만들고, 심지어 그가 즐겨 찾던 다방과 동네까지 발굴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이중섭에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고 그를 기념하는 곳 어디에도 이중섭의 진품은 없다. 탁월한 작품성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가 짧게나마 머물렀던 도시에는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 이야기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중섭이 서귀포에서 4인 가족과 산 기간은 11개월에 불과하다. 가난했지만 이중섭 작품에는 서귀포의 생활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서귀포는 이중섭 화가와 그의 부인 이남덕 여사와의 사랑이 깃든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가난과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우던 이중섭은 마흔한 살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 받다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의 매력은 가난했던 소시민의 인생이 담긴 그의 작품 속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강렬한 동질감과 한국인으로서의 진한 향수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저곳에서 인물을 상품화한다며 이중섭 마케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없진 않지만 ‘단지 그 사람’ 때문에 도시나 지역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이순신(여수, 통영, 남해, 해남 등), 윤이상(통영), 최근 KBS에서 방영한 ‘징비록’을 쓴 유성룡(하회), 삼봉 정도전(영주), 윤선도(보길도), 노무현(김해) 등이 해당된다.

▲ 통영 전혁림 미술관 (자료사진)

‘인물과 도시’를 연결하는 능력이 관건…사실에 ‘이야기’ 감동 더해져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과 도시’를 연결하는 능력이다. 무작정 예산을 투입해 관련 시설을 만들고, 홍보에 열을 올리기에 앞서 흡인력 있는 스토리(이야기)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즉, 사실에 ‘이야기’의 힘이 더해져야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인과적 재미와 감동을 통해 사실과 사실 너머에 있는 가치를 인지하고 싶어 한다. 알고 싶다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이다. 이는 어느 분야의 인물을 활용하는데 있어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인물과 도시가 함께 살아 움직이려면 고향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그 사람 인생 최대 하이라이트의 장소를 보유했거나 그 사람의 일상이나 작품 속에서 그곳에 대한 염원이나 애틋함이 강하게 스며있으면 흡인력은 배가 된다.

▲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손상기 화백의 생가.

천재 꼽추 화가로 널리 알려진 손상기 화백은 신체적 장애를 딛고 수많은 문제작을 발표해 지금도 비평가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손상기기념사업회가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건립비용 등의 문제로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생가를 복원해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품 500여점을 전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생가 주변 정비를 통한 관광자원화가 절실하다.

임진왜란 5년 전인 1587년(선조 20년) 2월 17일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 전라좌수군이 벌인 전투에서 병사 100여명과 전사한 이대원 장군은 죽기 전에 “해 저무는 진중에 왜군이 바다건너와/외로운 병사 힘 다해 끝나는 인생 슬프다/나라와 어버이 은혜 갚지 못해/원한이 구름에 엉켜 풀길이 없네”라는 절명시를 남겼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싸움이 끝난 후 손죽도 주민들은 해안가에 밀려온 장군과 병사들의 시신을 섬에 고이 묻고, 지금까지도 넋을 기리며 제를 지내오고 있다. 이 장군 묘 바로 앞에는 전사한 수군들의 무덤자리라고 알려진 무구장터가 있다. 하지만 예산 지원 등 공식적인 관리를 받지 못하면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으며, 시는 관광자원화에는 소홀하다.

▲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에 있는 이대원 장군 동상 (사진 심명남)

여수시의 이순신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타 지자체와 차별화된 것이 거의 없다. 이순신 장군을 통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되짚어보지만 함께 싸웠던 휘하 장수나 민중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한다면 이순신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사실에 감동이 더해진 생명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보다 자발적으로 진실과 가치에 다가가게 된다.

여수시는 스토리텔링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9년 수천만 원을 들여 이순신 장군, 거북선과 관련한 이야기, 여수지역에 내려오는 설화와 전설 등을 발굴하는 용역도 했지만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 해남군은 기존의 이순신 동상들과 차별화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표현한 동상을 제작해 상표로 등록했다. 고민하는 섬세함과 인간미를 더해 다른 이순신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동상을 하나 세우더라도 차별화가 요구된다. 해남군은 기존의 이순신 동상들과 차별화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표현한 동상을 제작해 상표로 등록했다. 이 동상은 칼과 갑옷 대신 도포를 입고 지도를 든 모습으로, 시선도 정면이 아닌 울돌목의 물살을 바라보는 고뇌의 모습을 담았다. 고민하는 섬세함과 인간미를 더해 다른 이순신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동상이나 기념관 등으로 인물에 대한 기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시민과 관광객 삶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그 기억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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