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시절 “시가 주도적으로 조례 제정해 진상 조사 방법 강구” 약속
여순사건여수유족회·시민단체 “공약 어길 시 소송도 불사할 것” 경고
시의회 역사 바로 세우기 흐름 막는 최초 민선 의회, 실명공개

“특별법 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합니다. 비슷한 성격의 제주 4·3사건이 2000년도에 특별법이 제정된 것에 비해서 우리 여수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장이 무소속이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시장은 반드시 제1야당 소속의 기호 2번 주철현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이라도 우선, 시 주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해서 여수지역만이라도 진상 조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와 시의회, 도의회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이라면 당연히 이 지역에서 주도적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 기호 2번 주철현 후보가 시장이 돼야만 이런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지난해 6·4지방선거 시장 후보 시절 주철현 여수시장.
이는 주철현 여수시장이 지난해 6·4지방선거 전 ‘여수시장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여순사건 명예회복을 위한 기념위령사업 방안’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그러나 주 시장이 시장에 당선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시민과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키지 않고 있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여순사건여수유족회(회장 황태홍)와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은 지난 5일 주 시장에게 ‘여순사건명예회복을 위한 위령사업 방안과 관련한 주철현 여수시장의 입장’이라는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해 후보시절 답변의 이행 여부를 묻고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급기야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어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이라도 우선 시가 주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하는 방안과 여수지역만이라도 진상 조사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방안, 여수시와 시의회, 전남도의회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 등에 대해 공개 질의를 하고 답변을 거듭 요구하는 등 압박에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주 시장이 공개적으로 약속해 놓고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제는 여순사건 조례 제정조차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순사건에 대한 공약을 어길 시에는 시민의 명예를 걸고, 법적 효력 및 기간과 관계없이 소송도 불사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여수시의회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이들은 15일 성명을 내어 “관련 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지난 1998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여순사건 위령사업이 제6대 시의회에서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며 “참혹했던 여순사건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흐름을 가로막는 최초의 민선 의회로 기록될 것이며 시민사회는 이를 실명으로 두고두고 공개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이라도 우선, 여수시의회가 타 지역의 24개 자치단체처럼 주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할 의지는 있는지, 전남도의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등의 조례와 관련해 여수시의회, 도의회가 공동으로 공조 대응하는 방안과 의지는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 일정과 답변을 요구했다.

▲ (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여순사건여수유족회 등은 지난 4일 둔덕동 장덕사에서 유족회원, 김성곤·주승용 국회의원, 지역 시·도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여순사건희생자 합동 천도제를 봉행했다.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 11개월째 의회 상임위서 계류
시·기획행정위, 상위법과 위임 법률 없고 재정 부담 등으로 난색
유족회·여사연·조례 참여 시의원들 “무작정 보류, 이해할 수 없어”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지역에 주둔하는 국군 제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을 앞두고 봉기를 일으켜 정부 진압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지역 주민들이 희생된 대표적인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기록 돼 있다.

여순사건과 같이 6·25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거창사건, 노근리사건, 제주 4·3사건은 특별법을 통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 2001년 16대, 2011년 18대 국회에서 연속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여수시의회 의원 14명(대표 발의 서완석)이 지난해 11월 17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을 발의 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위원장 김종길)에서 11개월째 잠을 자고 있다.

여수시와 일부 보훈단체가 여순사건 특별법 등 상위법이 없고, 지자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위임 법률이 없다는 점, 진상규명과 역사정립의 우선, 시 재정 부담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순사건여수유족회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물론 조례 제정에 참여한 의원들은 여수시의 반대 의견과 소관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기획행정위에서 부결시키면 본회의 부의동의안을 발의해 본회의에서 전체 의원들의 판단을 거쳐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상임위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 집행부의 의견만을 들어 무작정 유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수시의 역대 민선 시장들도 여순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 행사에 매년 시 예산을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계류될만한 중대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순사건 기념행사에서는 시장과 시의장의 기념사도 있었다.

시는 올해 여순사건 67주년 위령제 400만원, 기념공연 300만원을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여순사건 중단기 위령기념 사업비 1억원(특별교부세 대체)을 지원했다. 또한, 2012년 여순사건 자료집 편찬사업에 2000만원, 2009년 여순사건 61주기 평화·인권 예술제와 여순사건 61주년 기념전 ‘역사적 재조명전’ 행사에 각각 500만원과 300만원 등 800만원을 지원했다. 2008년, 2007년, 2006년에도 기념행사와 예술제 비용으로 600~800만원을 지원해왔다.

일부 안보보훈단체가 조례 제정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지역의 아픈 역사인 여순사건의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명예회복을 통해 ‘화해와 화합을 통한 지역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추도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여수평화공원 대상지. 여수시 신월동 옛 14연대 주둔터.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움직임도 꾸준하다. 지난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을 주축으로 여수현대사평화공원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추진위에는 김성곤·주승용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역 도·시의원, 재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여순사건유족회 인사 등 97명이 참여하고 있다.

추진위는 그동안 위원회 안건심의와 찬반의견 수렴을 위한 시민간담회 개최, 평화공원을 건립을 위한 제주4·3공원 현장답사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오는 22일 오후 3시 여수시의회 소회의실에서 ‘여수평화공원의 조성방안’ 주제로 열리는 여순사건 심포지엄에서는 여수평화공원 기본 계획과 운영 방안 등이 발표될 예정이다. 평화공원에는 전시관과 위령탑, 봉안소, 트라우마힐링센터 등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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