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으로 보조금 지원 법적 근거인 조례 있어야
서완석 의원 “시 반대, 어불성설·이중 잣대 행정” 질타
유족회·시민단체, “의회,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여순사건 관련 사업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인 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위령제 등 관련 사업이 내년부터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이는 지난해 5월13일 개정된 지방재정법에 따라 내년 1월1일부터 조례 등 법적 근거가 없는 주민단체 등에 지원하는 보조금 예산을 편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사업이나 행사에 지원하는 보조예산을 과다 편성해 예산을 낭비하는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에 따라 여수시도 매년 보조금을 지원해 오던 각종 행사나 사업 중 꼭 필요한 행사나 사업의 지원을 위한 지원조례를 서둘러 제정하거나 일부 개정을 통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가족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유 등을 위한 위령제와 평화공원조성 등의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시는 여순사건 특별법 등 상위법이 없고, 지자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위임 법률이 없다는 점, 진상규명과 역사정립의 우선, 시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17일 여수시의회 의원 14명은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을 발의 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위원장 김종길)는 이런 저런 이유로 11개월째 계류시키고 있다.

조례에 명시된 주요 지원 사업은 ‘평화공원 조성사업’,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관련 자료의 발굴 및 수집, 간행물 발간’, ‘평화인권을 위한 교육사업’, ‘희생자 추모와 관련된 각종사업’, ‘그 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등이다.

▲ 지난해 11월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여수시의회 서완석 의원.
조례를 대표 발의한 여수시의회 서완석 의원은 “여순사건 관련법이 없기 때문에 조례 제정을 위임할 법령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법이 없어도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강제하지 않는 자치 사무는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며 “시 집행부의 조례 반대는 어불성설이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일례로 청주시의 행정정보공개 조례를 들었다. ‘청주시 행정정보공개조례’는 1992년 제정됐으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1996년 제정됐다.

더욱이 여수시의 원칙 없는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여수시는 향우회와의 교류 협력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교류 활성화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여수시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그런데 이 조례도 상위법이 없고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법률도 없다. 비슷한 이유로 시가 반대해 상임위에서 계류 중인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향우회와의 교류 협력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교류 활성화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키 위해 조례를 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원 범위는 ▲시정 시책 및 축제·행사 홍보사업 ▲시와 향우회 간 화합과 발전을 위한 문화·체육행사 ▲고향을 위한 투자유치 및 재원 확보사업 ▲향우회 정기총회 및 신년·송년·초청 간담회 등 각종 행사 ▲지역 농·수·특산물 홍보 및 판매 활성화 사업 ▲그 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등 지원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서완석 의원은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년·송년 등의 행사까지 지원하는 조례는 서둘러 만들면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지역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치유를 위해 필요한 조례 제정은 반대하고 있고, 시장이 이미 공개적으로 약속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여수시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달 15일 여수시의회 제16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져 재석 의원 23명 가운데 찬성 14명, 반대 4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여수시의회 기획행정위에서 이 조례안을 부실하게 심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위법과 위임 법률이 없는데도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 제정은 11개월째 제쳐두고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충분한 논의 없이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기획행정위 소속 한 의원은 “본회의에서 일부 의원의 지적이 나왔을 때 아차 싶었다.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내용이 적절한지 꼼꼼히 따지지 못한 것 같다”고 이를 인정했다.

이 조례안은 지난달 15일 여수시의회 제16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져 재석 의원 23명 가운데 찬성 14명, 반대 4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 스스로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서완석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의원 14명이 발의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은 상위법과 위임 법률이 없다고 반대하면서 같은 조건의 ‘여수시 향우회 교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며 “여수시가 원칙 없는 이중 잣대 행정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여순사건여수유족회와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 등도 15일 성명을 내어 “지난해 의원 14명이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안’을 발의해 놓고도 여수시장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시의회를 질타했다.

이들은 “(시의회가)거수기 의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어 안타깝다”며 “그러다보니 의원들의 시정 질의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정에 반영되기는커녕 시장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시민의 대의기구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향일암 군 생활관 반대와 성명서 채택 과정에서 시장이 국장과 돌연 퇴장하는 사태, 사립외고 설립 등의 밀어붙이기 행정 등에 대해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전남도정 질의와 국정감사장에서 여수시의 문제가 잇달아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고 했다.

이들은 “과연 관련법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공안검사 출신의 시장이 두려워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순사건유족들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특히 “관련 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지난 1998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여순사건 위령사업이 제6대 시의회에서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며 “참혹했던 여순사건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흐름을 가로막는 최초의 민선 의회로 기록될 것이며 시민사회는 이를 실명으로 두고두고 공개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한편, 순천시는 2006년 시비와 시민, 유족회 성금을 모아 위령탑을 세웠으며, 구례군도 그 해 6800만원을 들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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