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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과거와 현재를 읽고 여수의 미래를 내다보다기억 하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상) 원천 자료 확보·기록화 작업 서둘러야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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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6  10: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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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0년대 후반 국가산단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여수시 중흥·삼일지역 마을 대부분은 사라졌다. 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서면서 49가구가 살았던 낙포동 한구미 마을 역시 사라졌다. 현재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김종안 시인이 쓴 <고향의 노래> 망향비만 고향의 그리움과 애틋함을 전하고 있다.

제석산 자락에 터를 잡고/남해 바다에 그물을 던지던/우리 한 아비들// 울 너머로 음식 사발을 돌리며/인정을 주고받던/ 우리 한구미 사람들/울고 웃으며 살아온 지 그 몇 해// 이제 고향은/건설의 기지로 다시 거듭나느니/비록 떠난다 한들/우리들의 고향을 어이 잊으리// 마을 앞 모과나무는/옛 기상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서서/고향의 전설을 지키고 있으니/기어이 살아 천년을 가리라// 아!/부모형제들이여/우리는 때때로 여기 용머리에 와/서로 부둥켜안고/그리운 고향의 노래를/다 같이 외쳐 부르리라//

#2=여수시는 삼도수군통제영이자 전라좌수영의 동헌복원사업과 관련해 1919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 동헌일원과 주변의 사진자료 등을 감정평가 후 구입하거나 기부를 받는다며 자료를 소장한 시민과 단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 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서면서 49가구가 살았던 여수시 낙포동 한구미 마을 역시 사라졌다. 현재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김종안 시인이 쓴 <고향의 노래> 망향비만 고향의 그리움과 애틋함을 전하고 있다.

#3
=1967년 5월 5일 제1회가 시작된 이후 내년 50주년을 맞는 여수진남거북선축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축제지만 명칭이 자주 바뀌고, 축제위원회 이원화 등을 겪으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제1회부터 제11회까지의 축제 사진 등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3여(여수시·여천시·여천군)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록이 남아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시민의 접근이 사실상 막혀 있다. 우선 축제 관련 사이트가 일원화돼 있지 않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여수거북선축제’를 검색하면 ‘여수거북선축제’와 ‘여수진남거북선축제’, ‘진남제’가 검색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여수거북선축제’를 검색하면 ‘여수진남거북선축제’와 ‘제49회 여수진남거북선축제’가 검색된다. 홈페이지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홈페이지 자료실의 ‘지난축제’나 ‘사진자료’ ‘축제동영상’ 코너에는 게시물이 없거나 지난해 축제 사진과 동영상 몇 개만 올라와 있을 뿐 관리가 부실하다.

#4=전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한 곳으로 주변에 기암괴석과 동백숲 등이 어우러져 매년 200만명이 찾는 향일암. 그러나 여수시가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향일암의 사계절 사진은 없다. 오동도와 거문도·백도 등의 유명 관광지의 사계절도 시 공식 사진·영상 기록물로는 없다. 시는 올해 여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한 ‘사계절 관광사진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5=박람회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덕충동 귀환촌(歸煥村)의 경우 사진과 동영상 기록이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다. 귀환촌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징용 가는 사람들이 일시 대기소로 거주지를 만든 곳으로 박람회장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그 가족과 후손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유서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함께 살며 동고동락했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6=충남 연기군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기 전, 사라질 예정지역인 남면, 금남면, 동면 지역 내 마을과 산, 들의 지명유래, 명소, 유적지, 전설 및 설화, 음식기행, 생활양식 등 생활 문화 전반을 대화 형태로 상세히 수록하는 답사기를 발간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지역을 향토문화 자료 등에 대해 기록으로 보존해 이주민에는 향수를 간직토록 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지역의 산 역사 교육으로 활용해 애향심을 고취토록 한 것이다. 주민들에게 관련 자료를 CD에 담아 나눠줘 큰 호응을 얻었다.

   
▲ 여수세계박람회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덕충동 귀환촌(歸煥村)의 경우 사진과 동영상 기록이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다. 귀환촌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징용 가는 사람들이 일시 대기소로 거주지를 만든 곳으로 박람회장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그 가족과 후손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유서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함께 살며 동고동락했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 택지개발과 산단 조성으로 사라진 여수시 웅천택지지구와 삼일·상암지구 마을 등에 대한 시 차원의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설사 있다 해도 개인이 소장하고 있거나 파편화된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여수시가 지난 2008년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정치·경제·사회 등에 관한 향토자료를 집대성해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6억원(국비3억, 시비3억)을 들여 ‘디지털여수문화대전’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이후 시설과 건물 등이 들어서면서 경관 등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과거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 박람회 개최로 인해 바뀐 여수의 모습들과 경제 분야는 데이터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일정 기간을 두고 자료 업데이트 등 증보 사업이 필요하지만 예산 미확보와 관심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기록물에 대한 여수시의 인식을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면서 터전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그래서 현재를 살고 있는 후손들이 이를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록물은 여수정신을 보전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수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료 등 여수지역의 각종 기록물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는 물론 조사·자료 정리 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사라지거나 묻혀 있는 실정이다.

여수시가 중장기 계획을 세워 원천 자료 확보는 물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화하고 보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여수의 정체성과 정신을 담아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여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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