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하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중-2)

바다와 수산 도시라면서 해양 역사·문화 공간·콘텐츠 빈약
‘음식과 맛의 고장’ 음식문화 등 체계적인 연구·기록 없어

여수는 바다와 수산의 도시라면서도 해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없는 실정이다. 해양 도시이지만 정작 해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록은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여수는 해양의 역사와 문화가 널려 있다. 해녀 하면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여수에도 현재 해녀들이 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에는 해녀 관련 기록이 실려 있다.

▲ 오동도 해녀. 언제 그만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13년까지는 오동도에서 수산물을 직접 잡아 팔던 해녀들이 있었다. (사진 심명남)
기록에 따르면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살았던 강호경 씨는 돌산해녀의 대모로 불렸다. 제주 출신으로 결혼을 하면서 부산에서 살다가 남편이 죽자 생계를 위해 언니가 있던 돌산에서 사업을 했다. 당시 작금을 비롯한 돌산 남부 지역은 전복이나 소라 등 패류와 돌미역 등 해조류가 많아 돈벌이가 되겠다 싶어 해녀를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일하러 왔던 많은 해녀들은 소개나 연애로 결혼해 돌산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뿌리를 내린 제주 출신 해녀들은 계를 조직하고 모임을 만들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부상조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박종길 향토사학자는 “전쟁의 상처로 남편을 잃고 좌절하지 않고 꿋꿋한 삶을 개척한 강호경의 사례를 보면 제주 사람의 강한 기질과 함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다. 돌산에는 30여명(2008년 현재)의 해녀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강호경의 사업으로 인해 돌산도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고향 사람들이다보니 상호간의 위계질서도 엄정한 편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여수시에 등록된 해녀 수는 211명으로 삼산면, 남면, 돌산읍, 종화동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령은 30세에서 86세까지 파악되고 있다. 언제 그만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13년까지는 오동도에서 수산물을 직접 잡아 팔던 해녀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해녀에 대해 기억하는 시민은 가족이나 관련 종사자들 외에는 거의 없다.

여수 돌산과 화양면에서 생산되는 굴은 맛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수지역에서 석화(굴) 양식을 누가 어디서 어느 지역에서 시작을 했는지, 양식 기술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여수에 전파 됐는지, 소호 앞바다의 홍합 양식은 언제 어떻게 들어와 시작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사실상 없다.

죽방멸치는 죽방염을 이용해 잡은 멸치를 말하는데 전국에서 사천과 남해 일대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에 잘 썩지 않는 참나무 말뚝을 V자 형태로 바다에 심어 놓고 물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고기가 몰리도록 유도해 끝에 몰린 멸치를 건져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어획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멸치를 잡을 수 있어 값이 비싸다. 죽방염의 기원은 문헌상으로는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중화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로 알려져 있다.

여수시 화정면과 남면에도 죽방염이 존재했지만 어느 마을에서 누가 죽방염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구두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어서 이에 대한 채록이 시급하다.

▲ 여수시는 지난 2002년 55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여수시 돌산공원에 어업인 위령탑을 건립했다.

물론 일정 규모의 시설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수항, 수산물, 양식장, 선박, 어로 기술 등을 통한 교육자원 활용과 해양·수산 도시의 저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박물관 등의 가치는 충분하다. 해양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수 돌산에 300여종이 넘는 어류와 패류, 바다거북, 3D 영상관, 체험수족관, 박제·화석 등이 전시돼 있는 전남해양수산과학관이 있지만 적자 발생으로 도가 더 이상의 예산 투입을 꺼리는 상황으로 여수시에 무상양여를 추진하기도 했다.

전남대 여수 국동캠퍼스에는 2003년 13억원을 들여 만든 해양박물관은 전시 자료와 관리 인력 및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거의 방치되어 오다 2012년 전남대 아트센터로 명칭을 변경, 이순신해양연구소와 작품 전시관로 쓰이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울산, 해남, 완도 등은 해양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완도군은 2002년 5월 국내 최초로 어촌의 생활사, 어획방법, 수산양식의 실태, 선박의 발달사, 어촌 풍물 등 전시와 체험이 가능한 어촌민속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해남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은 지난 2002년 12월 개관, 28m 길이의 대왕고래뼈를 비롯 5만여 점의 전시물이 전시돼 있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여수시는 지난 2월부터 농촌여성 역량강화 교육의 일환으로 교육생을 대상으로 ‘시골밥상 차림반’을 운영하면서 약선비빔밥, 톳밥, 바지락쑥된장국, 방풍나물, 두릅문어강회, 맥적, 숭어회덮밥 등의 밥상차림을 선보였다.

음식을 파는 도시에서 음식문화를 생성해내는 도시로
여수는 게장, 생선회, 서대회, 장어, 새조개, 아구찜 등 맛깔난 음식의 고장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음식과 관련한 체계적인 기록이나 테마박물관 등의 공간이 없는 실정이다.

여수시는 민선4기 때 이순신 밥상을 개발해 선을 보였지만 충분한 검증과 연구 없이 다른 지자체를 따라 하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시는 지난 2월부터 농촌여성 역량강화 교육의 일환으로 교육생을 대상으로 ‘시골밥상 차림반’을 운영하면서 약선비빔밥, 톳밥, 바지락쑥된장국, 방풍나물, 두릅문어강회, 맥적, 숭어회덮밥 등의 밥상차림을 선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음식을 확대 보급해 음식의 다양화, 지역 농수특산물 소비 촉진 등과 연계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수는 음식문화콘텐츠가 단단하지 못해 음식과 맛의 도시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식품관련 문화콘텐츠기반이 약한 편이다. 전국적으로 맛이 평준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음식문화기반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한계점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여수시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한 것을 찾아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앞서 우리 지역의 음식역사를 발굴하고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도시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식품관련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음식문화를 생성해내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역 농특산물에 대한 기록도 소홀하다.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 금오도의 특산품인 방풍의 경우 언제부터 밭에다 옮겨 심어 재배를 했는지 등의 기록이 사실상 없다. 돌산 땅두릅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갓’에 대한 기록은 여수시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만 접근성과 활용도 면에서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읍·면·동·마을지는 지역 향토 사료의 기초
로드맵 세워 주민 참여한 공동작업 필요
여수학 확대 운영과 지역인물 바로 알기도
병행해야…기록물 관련 조례 제정 필요

▲ 1994년 발간된 남면지(南面誌).
그동안 읍·면·동의 기록을 담은 출판물은 남면지(南面誌·1994년), 삼산면지(三山面誌·2000년), 화정면지(華井面誌·2000년), 율촌면지(栗村面誌·1998년), 돌산읍지(突山邑誌·2000년) 등이 발간됐다. 읍·면 지역을 제외하고는 동 지역에서 발간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대교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특화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유래 등을 담을 소규모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는 도시화가 진행돼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옛 쌍봉면(현 쌍봉동)은 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다. 학동, 소호동, 안산동 등을 관할하는 쌍봉동은 행정동으로는 여수시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시청, 시립도서관, 소방서, 우체국 등 공공기관과 여수산단 사택, 이주택지, 아파트단지, 병원 등이 있어 여수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이나 변화상을 담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기록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거북선공원 입구에 있는 표지석이 과거 이 일대가 용기, 건천, 부등마을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쌍봉면사무소 자리에는 1998년 3월, 여천시 향토유물 자료관이 개관했다. 120평 부지에 연건평 30평 규모로 자료실과 전시실, 야외 유물전시관을 갖췄으며 베틀, 가마니틀, 연자방아, 수차 등 각종 생활유물 100여 가지가 전시됐다. 하지만 활용은 미미한 수준이다.

마을지로는 향우회 등이 편찬위원회를 꾸려 만든 손죽향토지가 향토사학자 김계유 선생의 감수를 받아 지역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발간된 것으로 전해진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에 마을 이야기가 수록돼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안도마을, 거문도 서도마을, 군내리, 도성마을, 덕양리 등 5개 마을에 그치고 있다.

주석봉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주민 개인이 소장한 지역 자료가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수시가 적극 나서 중장기 로드맵을 세워 각 읍·면·동 주민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네 사람들이 동네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여수학은 역사에서부터 문화·산업경제·교육·복지·지리환경·문화유산 등 지역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강좌로, 매년 진행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이다.

공동체 의식 회복과 기록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여수학(麗水學)을 확대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수학은 역사에서부터 문화·산업경제·교육·복지·지리환경·문화유산 등 지역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강좌로, 매년 진행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이다.

주석봉 선임연구원은 “어릴 때부터 지역축제나 행사, 답사 참여, 교육 등을 통한 경험이 체득화 되면 고향을 떠나서도 애향심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여수의 역사를 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채택해 가르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 공무원이나 테크니션스쿨 교육생은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특히 지역의 지도자들이나 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소양이다. 지역을 모르면서 지역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우리 지역만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정립하는데 여수학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여수라는 매력적인 도시에 살고 있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민·관은 대내외적으로 여수를 좀 더 잘 알게 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수시가 원천소스 확보나 사료 등의 기록화 작업을 소홀히 하고 체계가 없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만큼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자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라도 각종 기록을 발굴·연구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록물과 관련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관 조직이나 조례 제정 등 제도 마련도 뒷받침돼야 한다.

조례는 여수시는 물론 관내 각 기관·단체의 여수 관련 사료들에 대해서도 조사, 연구 지원할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핵심은 아카이브(archives, 영어로 정부나 관공서, 기타 조직체의 공문서와 사문서를 소장·보관하는 문서국 또는 기록보관소를 의미하는 말)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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