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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남아있는 기록 없어지기 전에 대책을’기억 하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하) 기록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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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6  11: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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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는 최근 지역 경관을 도시발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울산경관기록화 누리집’을 개설해 운영에 들어갔다. 울산의 자연, 시가지, 역사문화, 산업, 건축물, 골목길 등 7개의 유형으로 분류해 일상을 다양하게 기록으로 보존한다. (사진=울산경관기록화 누리집 캡처)

인천 남구에 국내 최초 마을박물관 개관
사라진 삼일·중흥·낙포 마을역사관 고려도
울산시, 골목길 등 경관기록화 누리집 개설

여수시가 남아 있는 기록마저 없어지기 전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개발에 따른 도시의 외형이 변화될 경우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도시 경관 기록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지역에는 개인이 수집한 고문서, 사진첩, 희귀본 등 지역문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지역민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다해 더 이상 자료가 외부로 유출 되는 일이 없도록 지원과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 소장자들도 개인의 것만이 아닌 시민이 함께 공유해야 할 지역 공동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특히 마을의 역사는 대를 이어 터를 잡고 살았던 어르신들이 잘 안다. 어르신들의 구술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마을의 역사가 되고 설화가 되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겨 놓지 않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역사도 묻혀버린다. 생존해 있을 때 기록을 남겨 놓는 채록 작업이 시급한 이유다.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역사·해양·인물·미술·생활 등 여러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실행하되 기록된 자료를 모아 전시할 공간 마련도 필요하다. 수백억을 들여 지을 필요도, 화려할 필요도 없다. 소규모로 하되 분야별로, 기존 건물 등 있는 자산을 활용해도 된다. 그 안에 담을 콘텐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단 조성이나 개발 등으로 사라진 마을을 한데 묶어 공간을 만드는 방안도 있다. 일례로 여수국가산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삼일·중흥·낙포 지역에 산단 기업들이 마을의 기록을 한 데 모은 마을역사관을 만드는 것이다. 택지개발로 거의 사라진 웅천, 박람회장이 들어서면서 없어진 귀환촌 등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고향을 잃어버린 이주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향수를 달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산단 기업들이 지역민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힐 수 있다.

   
▲ 인천시 남구 용현5동 용정근린공원에는 최근 국내 최초의 마을박물관인 ‘토지금고 마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컨테이너 2채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는 토지금고라는 지명 유래, 토지개발 과정 등 마을 역사와 문화를 담은 자료와 영상 매체가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사진=시사인천)

인천시 남구 용현5동 용정근린공원에는 최근 국내 최초의 마을박물관인 ‘토지금고 마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컨테이너 2채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는 토지금고라는 지명 유래, 토지개발 과정 등 마을 역사와 문화를 담은 자료와 영상 매체가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이 지역 100여년의 역사를 마을 주민들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운영까지 직접 참여했다. 주민들은 박물관에 있는 사료에 자신들의 추억과 역사를 되새긴다.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공간 ‘기억의 저장소’에서는 주민들의 사연과 삶을 풀어낸 내용을 담는다.

울산시는 최근 지역 경관을 도시발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울산경관기록화 누리집’을 개설해 운영에 들어갔다. 울산의 자연, 시가지, 역사문화, 산업, 건축물, 골목길 등 7개의 유형으로 분류해 일상을 다양하게 기록으로 보존한다. 항공촬영 기법을 활용하거나 계절의 변화 등 다양한 경관을 수록했으며, 시민 누구나 1200여 장의 사진자료를 감상하고 내려 받을 수 있다.

기록물 수집·관리·발굴 위한 상시 기구 필요
기록문화 형태나 보존 방법 변화…시는 방치


각 기관의 고유 행정문서 등을 제외하고 여수와 관련된 각종 기록물을 찾아내고 관리하며, 지역 역사 알리기를 하는 주체를 구성해 상시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전주시는 팀장 1명과 민간전문가 3명, 공무원 1명으로 구성된 T/F팀을 꾸렸다. 서울과 인천, 부산 등은 상설 시사편찬위원회가 있어 도시역사를 수십 년 동안 기록하고 있다. 1949년 설치된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송파구에 별도의 건물을 둘만큼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천도 시사편찬위 사무실 뿐 아니라 역사자료관까지 갖춘 별도의 건물을 두고 있다. 부산도 1988년부터 시사편찬위원회를 두고 고문서 번역과 구술문화총서, ‘항도 부산’ 발간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 신축중인 여천시청. 1976년 여천공단 건설과 배후도시 조성을 목적으로 전남도 여천지구 출장소가 개설됐다. 1986년 1월 1일자로 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됐고, 시 승격을 전제로 1980년 학동에 여천시청 청사가 건립됐다.

여수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수시사(麗水市史·5권·2011년 발간)’는 지면상 제약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모두 기록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영상은 아예 실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자료에 대해 시민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것마저도 수량을 한정 발간해 시민의 접근이 사실상 어렵다.

여수시는 2013년 ‘사진으로 본 여수의 어제와 오늘’ 사진집을 발간했다. 도시계획(시설), 공공시설, 경제·산업, 문화·관광, 교육기타, 생활·민속 등을 중심으로 실었다. 여수시청 홈페이지에서도 수록 사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사진만 실렸고, 홈페이지의 경우 시장 위주의 사진 등 행정 관련 사진이 대부분이다.

행정 문서는 잘 관리하고 있다. 행정 관련 문서는 총무과 기록물관리팀에서, 문화·향토 관련 사료는 문화예술과에서 관장하고 있다. 시는 지난 2012년 4월, 행정 기록물의 훼손 및 유실을 방지하고 매년 실시하는 보존·평가·이관·폐기·활용 등의 전 과정을 전산화해 문서관리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기록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모든 문서를 어떤 컴퓨터에서든지 열람 가능하도록 PDF 형태로 변환했다.

   
▲ 1984년 거북선공원 모습.

과거, 기록은 종이와 목판 등에 새겨져 역사가 됐으나 종이책은 개인이 보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고인의 유품을 자식들이 보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멸실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화되어가는 추세로 기록문화의 형태나 보존 방법들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수시는 6억 들여 디지털여수문화대전을 만들어 놓고도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게 방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금도 우리지역 또는 우리지역이 보존해야 할 많은 자료들이 없어지면서 역사도 지워지고 있다.

기록화는 방대하고도 지난한 작업을 요한다. 이에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먼저 정한 후 여수정신과 문화의 정수가 무엇인지, 이를 어떤 형태로 기록하고 복원하며 지금 이 시점에 향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역사와 문화는 기록하고, 소장하는 것뿐 아니라 새롭게 해석하고 복원해서 시민 모두가 향유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고 국제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하는 여수시가 국내외 유수한 문화도시들과 교류를 확대하는 주춧돌이 된다는 점에서 적극 나설 때라는 지적이다.

   
▲ 7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여수 출신 故 신영길 전 한국장서가협회장. 수 년 전 세상을 뜨기 전 이 책들을 고향 여수에 기증하려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서울 광운대학교에 기증했다.

신영길·윤형두, 지역에 받아줄 곳 없어
보존 가치 높은 사료들 다른 지역으로

우리지역 사료뿐만 아니라 소장 가치가 높은 사료들도 발굴 보존해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공간이나 의지 부족 등으로 기회를 놓친 사례가 있다.

여수 출신인 故 신영길 전 한국장서가협회장은 7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했다. 수 년 전 세상을 뜨기 전 이 책들을 고향 여수에 기증하려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서울 광운대학교에 기증했다.

본지가 지난 2008년 신영길 선생을 인터뷰할 당시 그는 일제침략 관련 서적, 경제학, 역사학, 정치, 법률 관련 서적 등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1975년 35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양휘산법(楊輝算法, 1275년)’은 전 세계에 단 2권만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권은 신영길 선생이, 나머지 1권은 일본 국보 17호로 지정돼 궁성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신영길 선생이 창안했던 제3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구호 포스터.
당시 35평 아파트가 400만원 정도 했다고 전해진다. 신영길 선생은 한 일본인이 찾아와 책을 20억원에 달라고 했으나 팔지 않았다고 했다.

‘양휘산법’은 13세기 후반 송나라의 수학자 양휘가 지었으며, 수학을 집대성하고 명(明)대에 정착된 민간 수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수학사적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계산 방법과 문제를 수록한 실용적인 수학책으로 곱셈과 나눗셈의 기본 규칙과 계산, 이차방정식과 연립방정식을 비롯한 고차방정식, 급수, 도형의 넓이 계산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중국에서 마방진(魔方陣)을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여수시 돌산 출신인 한국 출판계 거목 윤형두 범우사 대표는 지난 3월 모교인 순천대박물관에 국보급 유물인 고려시대 초조대장경(대반야바라밀다경 제565권)과 재조대장경(대방광불화엄경 제54권) 인쇄본을 기증했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인쇄본은 고려 현종 2년(1011)에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판각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 인쇄본이다. 거란족 침입에 대비해 국민정신을 통합하고 부처의 위신력으로 외적을 격퇴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대장경 판각을 시작한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표상이기도 한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고군 침입으로 모두 소실돼 당시 인쇄본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문학적 가치가 높다.

재조대장경 인쇄본은 목판이 8만여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린다. 국보 제32호로 현재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목판본의 인쇄본으로 초조대장경 소실 이후 당시 집권자인 최우 등을 중심으로 16년 만에 완성해 다시 판각했다는 의미로 재조대장경이라고 불린다.

윤 대표는 지난해 4월에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본 66권을 기증한 바 있다. 윤 대표는 이외에도 1985년부터 순천대도서관에 각종 도서 2만2000여권을 기증해 왔다. 여수에 박물관이 있었다면 유물들을 여수로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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