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시민들에게 희망이 없는 이유

▲ 향일암에서 내려다본 거북머리.

지역 정치인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에서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조정하고 화합에 적극 나서야 할 이들은 국회의원과 시장, 시·도의원 등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향일암 앞 거북머리에 군 생활관 신축을 놓고 1년 가까이 이어진 주민과 군의 갈등은 협상 능력 부재 등 지역 정치권의 무능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되레 지역 정치인들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과 군의 갈등이 주민과 시장, 지역 시민단체 간, 국회의원과 시장의 싸움으로 확산, 변질되면서 피해는 결국 주민과 지역사회가 입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가 주민과 여수시에는 별 이득 없이 ‘예산까지 확보해주고 규모는 더 크게’ 군만 좋은 일 시켰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 마재일 기자
지역 갈등과 분열이 이어진 1년 가까이 김성곤(여수 갑) 의원과 주철현 시장은 군의 공사 강행으로 애타는 주민을 가운데 두고 핑퐁게임을 벌였다. 주승용(여수 을)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가 아니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적극적이지 않았다. 여수시의회는 책상머리에 앉아 성명서 2번 내고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수수방관했다. 도의원들은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보이지 않게 중재 노력을 했는데…’ 라며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절박한 주민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주 시장은 현행법상 국가사업에 지자체 예산을 투입할 수 없고 대체부지에 신축할 경우 또 다른 국립공원 환경 훼손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 이미 거북머리 주변이 난개발이 진행된 점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주 시장은 200여명밖에 살지 않는 마을에 이미 수십억원이 투입됐는데 또 수십억을 지원한다면 시민들이 이해를 못할 것이라고 말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주차장 등을 여수를 찾는 관광객들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지 주민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수지역 시·도의원 대부분이 대체부지를 마련해 생활관을 이전·신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주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시가 법적 요건만 따지며 명확한 해결안도 내놓지 않은 채 되레 갈등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 향일암 거북머리 부대 입구에 설치된 철조망.

김성곤 의원의 일처리 방식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무리수나 다름없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을 들고 나왔다. 군부대 이전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60%, 여수시가 30%, 주민들이 10%를 부담하는 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안대로라면 시비 투입이 불가피한데 시장과 사전 협의도 없이. 김 의원은 자신이 제시한 안이 논란이 일자 즉각 사과했으나 시장과 해법을 달리하면서 내내 충돌했다.

김 의원은 “여수시민도 국민이며 국민은 국방의 의무가 있다. 국방부가 국방부 땅에 건물을 짓겠다는 것을 주민들의 요구로 이전을 고려한다면 여수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김 의원이 주 시장을 몇 차례 직접 찾아가 ‘기부 대 양여’ 안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 국회의원이 한 문제를 놓고 시장을 몇 차례 직접 방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시쳇말로 김성곤 의원은 쪽만 팔렸고 주철현 시장은 불통 이미지만 굳혔다.

시민단체도 충돌했다. 안보보훈 단체들은 김성곤 의원이 제안한 기부 대 양여 방식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며 군은 즉각 생활관 신축을 재개해야 한다고 군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자 주민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립공원 향일암 지키기 시민위원회’는 “생활관 신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그 위치가 여수의 자연생태 관광지의 1번지로 여겨질 만큼 여수인의 자존심이 담긴 곳인 만큼 거북머리에 짓지 말아 달라”며 “국방부와 환경부 그리고 여수시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거북머리를 자연그대로 보존한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주길 바란다”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태 해결을 주문했다.

국회의원과 시장, 시민사회, 임포마을 주민,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책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싸우는 볼썽사나운 행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역 정치인들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지난 10월 5일 군이 향일암 거북머리 내 생활관 신축 공사를 기습적으로 강행하자 임포마을 주민들이 중장비 진입을 막으면서 충돌했다.

지역사회 한 목소리 내지 못해 소기의 목적 상실

지난 10월 5일 국방부가 공사를 강행하면서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지기까지 약 2개월간 국회의원과 시장이 해법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태 해결은 진전이 없었다. 여론의 호된 질타가 이어지자 군과 주민, 여수시가 협상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난항이 계속됐다.

결국 종교계가 나서 10월 21일 사태 해결의 물꼬를 텄지만 주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날 합의안을 접하고 어리둥절해했다. 7억원을 더 얹어 주고 더 큰 규모의 생활관을 짓게 해 준 꼴이 됐는데 이럴 거면 우리들끼리 1년 동안 뭐 하러 갈등하며 싸웠으며, 결과적으로 여수시가 한 일이 무엇이냐고. 국회의원한테 예산을 요청할 거면 진즉에 하지 그랬냐는 것이다. 수십억원을 확보해 주겠다고 해도 꿈쩍도 않던 시장은 막판에 국회의원들에게 국비 확보를 요청한 것이나 국회의원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노력하겠다’고 화답하는 형식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국회의원과 시장이 나서 해결하기는커녕 사태를 꼬이게 만들고 갈등을 악화시켜 놓고 북 치고 장구 친 격이라는 지적이다.

주민들이 군부대 이전에서 증·개축으로 양보한 것은 현 막사를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다가 대체부지가 마련되는 즉시 이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가 약 28억원(국방부 21억, 특별교부세 7억)을 들여 짓겠다는 생활관은 사실상 거북머리에 눌러 앉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년 내에 이전한다고 하면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것이 뻔한데 국방부가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현 막사에 더 크게 증개축 하는 것이나 훼손된 자리에 짓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냐는 것이다. 군을 상대로 지역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보니 소기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진즉에 일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국회의원과 시장이 머리를 맞댔으면 향일암 사태는 조속히 해결할 수 있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 지난 10월 5일 군이 향일암 거북머리 내 생활관 신축 공사를 기습적으로 강행하자 임포마을 주민들이 중장비 진입을 막으면서 충돌했다. 경찰이 주민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되레 지역 갈등 방관·심화시킨 정치인들 ‘직무유기’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시장의 정치력·행정력 부재

국가사업엔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게 맞다. 여수시의 수장은 시장이지만 국가사업 주체인 군을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다. 그런 면에서 김성곤 의원은 4선 의원답지 않게 어설픈 정치력을 보였다. 4선·3선의 지역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오랜 정치 경험 등 노련함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국회의원의 힘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행정이 법과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법과 원칙만 따지는 행정은 프레임에 갇히기 마련이다. 특히 시장이라는 자리는 행정력과 정치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리다. 그런데 이번에 주 시장은 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행정력과 정치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특히 주 시장을 보좌하는 비서진과 주무부서의 안일한 초기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태를 요지경으로 만든 것도, 주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도 무능한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군을 상대해 싸움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국가와 싸우는 것인데 주민들의 힘만으로 부족하다. 이럴 때 방패막이 되어 주고 주민을 대신해 싸우는 존재가 정치인들이다. 그러라고 뽑아 준 것이고 국회로, 시의 수장으로 보낸 것이다. 지역 정치인들은 이를 망각한 채 싸우느라 시간만 허비했다. 되레 지역 갈등을 방관하고,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민생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정치인들의 직무유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장의 정치력·행정력 부재이자 자업자득이다. 주민들의 절박함은 뒷전인 채 서로의 정치적 입지와 자존심 때문에 충돌하는 것은 지역민들에게 구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사태는 지역에 수십년간 여당으로 군림해온 ‘새정치민주연합(옛 민주당)’이라는 당의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더욱 굳히게 했다. 주민들은 급기야 새누리당에 도움을 요청했다. 절박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당 저당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김상도 임포마을 이장은 (새정치민주연합)지역 의원들이 있어 새누리당에 연락 안했는데 가만 놔두니까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새누리당에 도움을 청한 것이라고 했다.

▲ 지난 10월 14일 향일암 거북머리 군 생활관 신축을 반대하는 주민 50여명이 민·관·군 협의가 진행 중인 여수시청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번 사태 지역 정치인들 존재 이유 돌아보는 계기

여수시의회라고 나을까. 오죽했으면 지역의 시민단체가 “(시의회가)거수기 의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다보니 의원들의 시정 질의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정에 반영되기는커녕 시장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시민의 대의기구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비난했을까. 시의회가 지난 9월 10일 제163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군 생활관 반대 성명서를 채택하자 주 시장과 국장들은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의원들과 악수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회기가 시작되는 첫 본회의에서 시의원과 시 집행부는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다.

이 단체는 “사립외고 설립 등의 밀어붙이기 행정 등에 대해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전남도정 질의와 국정감사장에서 여수시의 문제가 잇달아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고 강한 질타를 했다.

10월 5일 군이 공사를 강행하며 주민들과 충돌했을 때 지역 정치인들 모두가 나서 주민들과 함께 온 몸으로 막았어야 했다. 사태 해결도 해결이지만 주민들이 더 원했던 것은 다른 지역은 몰라도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주민들 편이라는, 시민들 편이라는’ 기대를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10월 14일 주민들이 상여를 메고 시청 앞에서 저녁까지 집회를 할 때 주 시장은 주민들을 한 차례도 대면하지 않았다. 저녁 끝 무렵에 주민 대표 2명과 만났을 뿐이다. 주민들은 “주민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수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시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주민들은 ‘시민이 시장이다’는 민선6기 시정구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주민들의 대응도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지 못했다. 시민단체 등과 ‘국립공원 향일암 지키기 여수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으나 사실상의 컨트롤타워가 부재 등으로 내내 군과 국회의원, 시장 등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조직화된 단체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마을 주민들이 장사를 하고,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다가 마을에 큰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법을 공부하고,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논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싸우는 연습을 할까. 그래서 주민을 대변하고 여수를 대변할 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을 뽑는 것 아닌가.

▲ 지난 10월 14일 향일암 거북머리 군 생활관 관련 민·관·군 협의가 결렬된 후 임포 주민들이 여수시청 현관에서 연좌 농성중이다.

갑론을박만 하다가 교각살우 우 범해
지나친 아집은 결국 자신을 베는 칼
정치인들 믿은 주민들만 놀아난 꼴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군에 있다. 아무리 국방부 땅이라고는 하지만 주민과 지역사회의 여론을 무시한 공사 강행은 더 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니다. 물론 너무도 열악한 병사들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다. 군이 주민들을 공생관계라고 여겼다면 최소한의 이해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여수발전과 여수시민을 위하는 것인지 대승적 차원의 종합적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는 국회의원과 시장 등 지역 정치인들 모두 속 좁은 정치력을 보였다. 갑론을박(甲論乙駁)만 하다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정치인의 지나친 아집(我執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고집)은 결국 자신을 베는 칼이 된다.

향일암 앞 거북머리 군 생활관 신축 문제는 특정 지역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여수 시민 모두가 나서서 필사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치인들의 싸움판이 되면서 정치인들을 믿은 주민들만 놀아난 꼴이 됐다. 지역 정치인들의 시민을 위한 고민의 무게만큼 시민들의 희망 무게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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