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느 원로분이 찾아와 자신들의 세대에 대해 긴긴 넋두리(?)를 하고 가셨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 서럽다고 했다.
나잇값을 지닌 자신을 발견하고 싶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말도 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5억원이 필요하네, 8억원이 필요하네 하지만 의지할 곳 없어 요양원에 의지하는 노인들을 보면 호랑이 등을 타고 질주하는 듯 한 불안감을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결혼한 자녀들의 주택마련이나 사업자금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내주고, 정작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들 자신은 노부모를 모시고 산 세대지만, 자식들로부터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서러운 노인’ 1세대인 것이다.

늙으면 자녀가 자신을 부양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성인 10명 중 1명밖에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성인 10명 중 8명이나 된다는 세상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열심히 키웠지만 노후에 자녀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어르신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늙은 어버이를 자식이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러한 풍속을 선진국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 노인이 부럽다." "한국 가족제도가 훌륭하다." 이런 찬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가정은 부모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벗으려 하고, 정부와 사회는 아직 이를 넘겨받을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노인 문제의 핵심이다.

고령화 사회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기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으뜸이다. 전에는 북유럽 나라들의 빠른 고령화가 본보기처럼 이야기 되어왔다. 그러나 그 나라들에서 한 세기쯤에 걸쳐 이루어진 변화를 우리 사회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국가나 지자체가 단기 및 중ㆍ단기 계획을 세워 대처해야 할 텐데 아직까지 뚜렷한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보릿고개를 거쳤고, 전쟁의 공포를 겪었고, 밤낮없이 일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어낸 주역이다.
정신없이 달려와 어느새 노인이 되었으나, 옛날의 노인이 받던 대접을 정작 자신들은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당황하게 된다.

자식을 위해 교육비를 아끼지 않고 지출하다 보니 모은 돈도 없다. 성장한 자식은 학업을 마치고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제 처자 건사하기에도 빠듯하니 부모가 짐이 될 뿐이다. 자식이 여유가 있다 해도, 모시겠다는 갸륵한 효심을 부모가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의 지위는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날이 갈수록 낮아져 간다. 늙는다는 것이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즐거울 일이 아니었겠지만, 노인이 요즘처럼 서러운 때도 없을 것이다. 국가가 돌보지 않고, 가족이 보살펴 주지 않고, 사회가 냉대하니 벼랑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황혼 이혼이 하루빨리 재산을 상속하고 싶어 하는 자식들의 종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세상은 메마름을 넘어 살벌해지고 있는 듯하다. 자살하는 노인도 많다. 65세 이상 노인이 하루 7.5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러한 한국 노인의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이 그만큼 궁핍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거나, 정신의학적으로는 우울증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는 분명 '사회적 타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치매 노인 문제는 심각하다. 치매 노인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정이 전적으로 떠안기에는 벅차며, 자식이 효심만으로 감당하기에는너무 고통스럽다. 자신이 장차 치매 상태가 될까봐 걱정하는 연로자들도 많다. 60세의 어느 분은 미리 쓴 유언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넣기까지 했다.
"의학적으로 완전치료나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졌을 경우엔, 절대로 내 생명을 기계에 의존하여 연장시키지 말라. 오직 자연사를 원할 뿐,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다오!

만에 하나라도, 내 병이 금방 죽음에 이르지는 아니하되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염려가 있거나, 가족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치매, 기타 등등)에 이르러 의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판정이 내려졌을 경우엔, 지체 없이 일정한 격리수용시설에 의탁하라."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한 비용을 별도로 준비해 놓았다. 이런 정도 대비라도 돼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의탁할 만한 시설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노인들이 양로원보다는 가정에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는 하나, 그렇지 못한 형편에서는 노후를 양로원에서 보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의탁할 곳이 없어 목숨을 끊거나, 돌아보는 이 없어 죽은 지 며칠 후에나 발견되는 것은 비극이다.

쇠잔한 노인이 남은 삶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시설들이 필요하다. 노인 대책은 이제 코앞에 닥친 문제다. 지자체에서도 정책으로 다방면의 노인 복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것은 누구나가 누려야 한다. 외롭고 괴로운 노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없거나 적어야 선진국, 선진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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