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위험 상존, 열악한 처우, 척박한 근무환경, 비인격적 대우 등 사중고
여수 A아파트서도 추석 연휴 하루 남겨 두고 해고 통보…폭언도 당해

아파트 경비원은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고령근로자들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몇 년 새 최저임금 상승과 무인카메라 설치 등으로 인한 아파트 경비원의 해고, 열악한 처우, 척박한 근무환경, 몰지각한 일부 입주자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따른 ‘갑질’ 논란 등 사중고를 겪으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들은 정년퇴직 후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한 사람들이거나 불가피하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도 못 하는 실정이다.

보통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들로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더라도 만약 해고당하면 다른 직업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해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권리나 처우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종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몇몇 사례를 보면 최근 서울 강남의 A아파트 경비원 10여명은 용역업체에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30분 뒤 해고라는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당했다. 경비원들은 해당 용역회사가 1년에 수차례씩 경비원들에게 사직서를 미리 받아놓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경비원을 고용하고 해고했다는 입장이고, 회사 측은 이때 받은 사직서를 근거로 노동계약 해지는 정당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아파트 경비원들의 부당한 해고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입주민들의 폭언 등 비인격적인 대우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 11월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에서는 한 입주민의 그릇된 행태를 견디지 못한 경비원이 분신해 숨지는 일이 벌어져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하지만 경비원이 입주자로부터 폭언, 폭행을 당하는 사례는 그 뒤에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 논란이 됐다. 부산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학생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인데, 게시자에 따르면 입주민들이 “우리 아파트 경비는 왜 인사를 안 하느냐”며 인사를 강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측은 경비원이 아닌 보안팀 요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아파트 근무자들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을 두고 ‘갑질’ 논란이 일었다.

또 같은 달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입주민 대표와 갈등을 겪던 경비원이 “그럴 거면 사표를 써라”는 말에 그동안 쌓인 감정을 못 이기고 흉기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여수지역에서도 납득할만한 사유 없이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거나 입주민이 욕설을 하는 등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지만 행정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산 한 아파트의 보안팀 요원이 학생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사진이 올라와 ‘갑질’ 논란이 일었다. [사진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여수시 봉계동 A아파트 경비원 3명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25일, 말일부로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고 해고됐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데 이들은 앞서 7월부로 계약이 완료됐다. 하지만 경비원 관리 업무를 주민자치회가 직접 할 것인지, 기존대로 용역 회사에 맡길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해 계약 기간이 2개월 연장된 상태였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느닷없이 일을 그만 두라는 처사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사람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다.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미리 알려주거나 당사자들이 납득할 만한 정당한 사유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한 경비원은 “통상 연장자 순으로 일을 그만둬 왔지만 이마저도 무시됐다. 경비원은 관리소장이나 주민들한테 밉보이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파리목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해고에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전임 관리소장이 근무를 평가해 내린 결정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는 근무 평가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원들은 “여태껏 근무 평가를 통해 일을 그만두게 한 적이 없었다. 입주자대표에게 영문도 모른 체 해고를 당했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전임 소장이 내린 결정이다”며 책임을 떠넘겼다고 전했다.

한 경비원은 술에 취한 입주민 등에게 폭언을 당했다. 해당 경비원과 관리사무소 측에 따르면 앞서 이 아파트에서는 한밤중에 승강기가 멈춰 입주민과 일행 등 2명이 갇히는 사고가 났다. 이 아파트 승강기는 노후화 돼 평소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럴 경우 경비원은 승강기 관리 위탁업체에 비상연락을 취하고, 탑승객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 섣불리 안전 조치를 취했다간 더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경비원은 이들에게 승강기 관리 위탁업체에 연락했으니 곧 올 것이라고 안심시켰지만 돌아온 것은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이었다. 상황이 종료된 이후 경비원은 단 한차례의 사과도 받지 못했으며,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입주민에게 ‘을’일 수밖에 없는 경비원은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 아파트의 다른 한 경비원은 여름철 한 낮 폭염 속에 아파트 주변 잡초를 제거하다 풀독과 열사병 증상이 겹쳐 며칠을 출근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파트 경비원들은 해고, 언어·정신적 폭력, 장시간 교대근무, 저임금 노동에다 많은 주민들을 상대하면서도 ‘을’ 입장이 되곤 한다. 특히 간접 고용돼 일하는 ‘을 중의 을’이다 보니 입주민들의 횡포에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감시(監視) 근로자’에 해당해 근로시간과 휴식, 휴일 등에서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다른 일반 근로자에 비해 노동력의 밀도가 낮고 신체적 피로나 정신적 긴장이 적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입주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결해 줘야 하는 만능맨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실제 대다수 경비원들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할 만큼 근무환경이 열악했다. ‘시민과대안연구소’가 최근 아파트 경비원 4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를 보면 대다수(96.6%)가 격일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으며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휴식 시간에는 업무 지시를 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63.5%는 “휴식 시간에 일이 생기면 즉각 대처하고 있다”고 답했다.

별도의 휴식 공간이 없어 경비실에서 쉰다는 경비원도 57.8%였다. 22%는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욕설과 구타를 경험한 아파트 경비원도 4.4%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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