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콘텐츠로 발굴해 잘 활용한다면 지속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여수시와 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시정에서는 밀려나기 일쑤고 시민의 호응은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여수에 살면서 여수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현장답사와 여수학 아카데미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낮은 편이다.

흩어져 있고 더러는 흙 속에 감춰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복원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은 치열한 프로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분야다.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마치고도 지역을 연구하는 사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병호(64)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김 이사장은 찾아가는 우리고장 문화유적답사와 여수학 아카데미 강의 등을 통해 여수의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소개하고 있다. 그는 도시의 정체성은 결국 지역에서 지역민 스스로가 정립해 나가야 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면 지속가능한 도시는 요원하다는 지론을 펼치고 있다.

그는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콘텐츠로 발굴해 잘 활용한다면 지속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여수시와 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시정에서는 밀려나기 일쑤고 시민의 호응은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지역 역사·문화 교육을 하는데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 있는 자료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관 단체 네트워크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학생들의 학습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래서 도시에 (역사와 문화를)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 등이 필요한 것이다. 여수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엄청난 유물과 유적이 있는데도 박물관 하나 없다보니 시민들이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이 덜한 편이다. 학교나 일반 이론 교육은 시간·공간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여수는 전남 제1의 도시라고 하지만 일개 군에도 있는 박물관, 미술관, 문학관 어느 한 곳도 없어 문화적인 환경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은 문화 변방 도시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도시 가치를 높이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구가 8만 명인 경북 문경시의 경우 석탄박물관, 도자기박물관, 잉카마야박물관, 옛길박물관 등 박물관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문화도시 위한 과감한 투자 절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1897년 여수시 초대군수를 지낸 오횡묵 군수의 일기 ‘여수총쇄록’을 어렵게 입수했다. 일기에는 군수가 남면 금오도 심포 마을, 대횡간도, 안도 등 직접 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들과 소통한 기록 등 여수에 대한 여러 가지 중요하고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한문으로 기록돼 있어 번역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연구소도 시간적·인적 자원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집한 자료를 정리·해석하는데 손길이 모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지자체가 번역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시 화양면 마을 어르신들이 쓴 만장(고인을 슬퍼하며 지은 글이나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의 문장력은 뛰어나다. 비록 시골이지만 집안의 문집도 보존해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조사해서 번역을 해야 진정한 문화도시가 된다. 그런데 번역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는 지역사회의 공동책임이다. 전문연구기관 등 시스템을 통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관광 한 분야에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지역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기록물에는 관심이 없다.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지역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있음에도 이순신과 임진왜란 등 특정한 인물과 사건에 매몰돼 있다. 심지어 일부는 왜곡되는 실정이다”며 “상상력을 동원한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역사는 진실에 입각해야 오래도록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실제 여수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이순신과 거북선, 임진왜란 등으로 각종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차별화되지 않거나 정확한 고증 없이 진행하다보니 실패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순신 밥상 등이 대표적이다.

“여수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는 반면 감추고 싶은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도 있다. 여순사건, 일제 강점기 유적 등 어두운 역사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으로 활용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거문도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침략, 일제 강점기의 신사(神社) 터 등 역사 자료가 수두룩하지만 역시나 활용은 자연 경관 홍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 이사장은 “시 유물로 지정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여수에는 23개의 성곽이 있다. 복원 사업과 안내판 설치 등 관리가 절실하지만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여수에 성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도 많다”며 오랜 세월 묻혀 온 여수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꾸준한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고려 말 쳐들어 온 왜구를 군사들이 물리쳐서 크게 기뻐서 부른 노래가 장생포곡, 즉 고려가요 ‘동동’이다. 고락산 자락 망마경기장이 있는 골짜기가 동동골로, 지명과 역사적인 사실이 맞아 떨어진다. 이 역시 사실상 방치되는 실정이다.

김 이사장은 특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문화적 도시재생’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민속 등을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문화기획자 등 전문 인력 양성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있는 그대로 보전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개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상업적인 개발은 우리 세대에 끝난다.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 없어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 역할 아쉬워

지역의 대학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인문학은 이공계 못지않게 중요한 학문이다. 문학·역사·철학이 없는 대학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나마 대학박물관이 있는 순천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정도다.

김 이사장은 “대학이라면 모름지기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지역에서 가장 전문적인 기관은 대학인데 전남대학교의 역할이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여수는 해양의 도시다. 여수캠퍼스에 수산해양대학이 있지만 나날이 쇠퇴해가는 여수의 수산업 경쟁력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고 했다.

재방문율 높일 콘텐츠 발굴·차별화 전략 필요

김 이사장은 “관광은 성장기가 있으면 쇠퇴기가 있기 마련이다. 해상케이블카, 레일바이크 등의 시설 중심의 관광은 이용 가치에 한계가 있다. 관광에 역사·문화 콘텐츠를 접목해야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재방문율을 높일 콘텐츠를 발굴해 쇠퇴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장군도~돌산을 잇는 출렁다리를 설치하자는 제안은 상식이 없는 발상”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수중석성과 목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수중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1497년(연산군 3년) 수군절도사 이량 장군이 인근에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섬 안에는 이량 장군의 방왜축제비와 이순신 장군의 전공기념비가 있다. 70년대 초까지 죽방염을 위한 담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장은 대마도를 예로 들며 “과거 대마도를 방문해 대마도 시장에게 대마도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를 물은 적이 있는데 ‘보전이 개발이다’고 답했다”며 “보전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시장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산림자원만 팔아도 본토 국민들이 2년간 먹고살 정도로 대마도 면적의 89%는 산림이 차지하고 있다. 울창한 산림과 깨끗한 바다, 덕혜옹주와 최익현 선생 등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과 해안 트레킹, 산행으로 국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금오도 생태계 큰 관심…섬은 개발 대상 아냐

김 이사장은 금오도의 생태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금오도에는 큰개불알꽃, 산벚나무, 가시나무, 피자나무 등 다양한 생물이 존재한다.

큰개불알꽃은 어감이 좋지 않아 ‘봄까치’로도 불린다. 개불알꽃은 일본말 그대로 번역을 한 것으로 학명은 ‘베로니카’이다. 예수님 얼굴과 잎이 예수님 수염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팔만대장경 경판에 사용된 60%가 산벚나무로 알려져 있다. 바둑 애호가들은 피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최고로 친다. 가시나무(지역에 따라 정가시나무·참가시나무라 부른다)는 거북선의 주요 부위에 사용됐다. 김 이사장은 “금오도의 참가시나무는 약성을 가지고 있어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섬은 개발 대상이 아니다. 더 이상 욕심을 내선 안 된다. 그대로 놔둬야 한다”며 “섬 주민들 또한 관광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생태관광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답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보전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개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상업적인 개발은 우리 세대에 끝난다.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 없어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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