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태 사진가, 여수해안통갤러리서 내달 4일까지 50여 점 전시
원초적 고향같은 금오도 통해 잃어버린 시간 되돌아보는 계기 마련

비렁길로 잘 알려진 여수시 남면 금오도의 속살을 담아낸 박성태(50) 사진작가의 ‘옛사랑, 금오도’ 사진전이 여수 해안통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내달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박 작가가 지난 1년 6개월 동안 촬영한 다큐멘터리 사진 50여 점과 사진집 ‘임금의 섬, 민중의 섬 금오도’(눈빛출판사)를 선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작가는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짜는 데 금오도의 소나무가 사용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입도가 허용되지 않은 ‘황장봉산’으로 남아 있다 130여 년전에 입도가 허용된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금오도를 미화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앵글에 담아냈다.

그의 사진은 산업화와 도시화되어 가는 섬을 목가적인 평화로운 풍경을 미화하지 않고, 문명의 침입에 맞서 힘겹게 살아가는 금오도 주민들의 애환과 공동체적인 삶을 ‘사회적 서정성’으로 담아냈다.

박 작가는 “우리 시대에 금오도는 우리 자신과 가정, 사회, 국가, 인류가 자신들을 들여다 보고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일종의 거울이다”며 “자연과 공존하며 나와 너의 경계가 없는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사진에는 운동장만한 밭을 쟁기질 하는 모습이나 폐가에 걸려진 멈춰진 시계, 당제와 매굿, 도시화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힘겹게 생활 하는 모습, 지붕 높이만한 돌담집, 임금의 소나무,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인 정개(옛부엌), 흉년이 들어 먹을게 없을 때 끼니를 대신한 파래를 채취하러 갱번(갯가)에 나가는 모습, 아직도 여전히 살아있는 우물가 풍경 등이 담겨져 있다.

이번 전시작은 우리 스스로 잃어버리거나, 시대 변화에 따라 변모한 원초적 고향으로 상징되는 금오도라는 섬을 지난했던 삶을 한 땀 한 땀 직조해낸 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리얼리즘 사진의 진수를 통해서 삶의 근원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책 전문 출판사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박성태의 금오도 사진은 근대화에 매진해 온 우리가 잊거나 외면해 온 다도해의 섬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상기시켜주는 힘이 있다”며 “그리하여 금오도가 절해고도로 끊긴 것이 아니라 임금과 민중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징하게(감동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작가는 지난 2014년 여수애양병원의 평안의 집과 도성마을에 거주하는 한센인회복자들의 삶을 담은 ‘우리안의 한센인, 100년만의 외출’이라는 첫 사진전을 통해 주목을 받았고, 지난 해 12월 ‘임금의 섬, 민중의 섬 금오도’ 사진전을 가진 바 있다.

전시 관람 문의)여수해안통갤러리 061-662-5479.


   
▲ 박성태 사진가
사진가의 노트

유년 시절 나에게 섬은 정복 대상이었다. 지금의 여수 돌산대교 아래 ‘당머리’라는 곳에서 물살이 센 장군도까지 헤엄을 쳐 돌아오는 게 일종의 남자다움의 통과의례였다.

또 하나의 기억은 뱃멀미다.

거문도를 가거나 고흥 녹동항을 가는 뱃길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섬은 내게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내게 섬은 육지와 다른 세상이다. 그 다른 세상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나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나를 꾸짖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옛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존재하는 섬은 말이 없다. 말하지 않는 섬은 그 존재로서 수많은 말을 들려준다. 희망 없는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그렇게 나에게 금오도는 다가왔다.

2014년 7월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애양병원과 도성마을에 거주하는 한센회복자들의 삶의 애환을 촬영한 사진전을 열었던 나는 적지 않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나를 추스르는 방편으로 나는 또 다른 테마를 찾아 나섰다.

우연히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접하면서 원시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가 안고 있는 공동의 과제를 풀기 위해 찾아 나선 곳이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의 뉴기니에 살고 있는 원시부족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섬으로, 금오도로 가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빼어난 선경을 자랑하는 금오도는 희귀식물의 보고로서 뉴기니와 같은 생태학적 가치가 아주 높은 섬이다. 그 만큼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오도는 오랜 시간 백성의 입도가 허용되지 않은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남아 있었다. 임금이 궁궐을 지을 때나 관을 짤 때 해풍 맞은 금오도 소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5-600년 전 어디선가 날아 온 소나무씨는 군락을 이뤄 직포마을을 지키고 있다.

1885년(고종23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입도가 허용돼 백성들이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금오도 주민들은 이 곳에서 우물을 파고, 돌을 들어 담을 쌓고, 쟁기로 밭을 갈아 고구마를 심고, 물이 빠지면 파래를 따 배고픔을 이겨냈다. 섬 사람들은 지금도 배고픔을 견디게 해 준 갈파래를 잊지 못한다.

마을마다 당집을 짓고 당제를 지냈다. 오로지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위해서다. 매년 음력 설 다음 날은 당제를 지낸 주민들이 마을 집집을 돌며 이웃을 위해 매굿을 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비정한 사회에 매굿은 공동체 회복의 하나의 열쇠다. 개인이 없는 사회가 금오도다.

1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금오도 사람들은 그대로다. 원시공동체의 뿌리가 유?무형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붕 높이만한 이중의 돌담 집은 대문이 없다. 첨단 보안 장치를 설치하기 바쁜 우리 사회에 대문 없는 섬은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세계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게 아닌가.

방바닥은 섬의 돌을 가져다 구들장을 깔았다. 장작을 태운 연기는 정지(부엌)의 벽과 천정은 새까맣다. 모두가 섬에서 나는 돌과 나무다. 이런 면에서 섬 생활은 자연 순환 구조이다.

금오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섬 주민의 인심이다. 대문 없는 금오도는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가 없다. 물이 마르면 물을 내주고, 배가 고프면 밥을 내주는 곳이 금오도다. 배고픈 자에게 떡 하나 준 자가 천국을 갈 수 있다는 예수의 말을 강조할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금오도다.

섬은 이제 폐가가 하나 둘씩 늘어 가고 있다. 섬을 지켜 온 주민들도 대부분 70세 이상이다. 임금이 입도를 허용했지만 이제 민중은 스스로 섬을 떠나고 있다. 도시인은 또 하나의 도시로 전락시키기 위해 혈안이다. 국내 최대 차도선에 실려 오는 주말 관광차들을 볼 때마다 공포감이 든다.

금오도 원주민이 하나 둘씩 사리지는 속도만큼 우리 사회의 위기를 감지한다. 나의 카메라는 섬의 위기를 감지하는 그 지점에서 지난 1년간 서 있었다.

한 폐가의 벽시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웅변하고 있다. 미래를 보지 말고 과거를 돌아 보라고. 첨단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안고 있는 공동의 과제를 알파고와 같은 또 다른 첨단 문명을 통해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금오도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번 사진집은 30여 개의 섬으로 이어진 금오열도를 향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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