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의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제시하다
섬여행학교 강동준 대표, 남은진 매니저

“섬을 걷자, 섬에서 배우자, 섬에서 나누자”

그동안 먹고 놀고 즐기는 것에 치중했던 국내 관광(또는 여행) 문화는 다녀간 이들은 즐거웠을지 몰라도 현지 주민들에게 남는 것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주민 소외와 불편이었다. 인문학적 성찰이 없는 관광은 특히 섬과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행정과 여객선사는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 혈안이 됐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광객과 주민, 주민과 주민 간 마찰과 갈등은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5월말까지 여수를 찾은 관광객 중 섬 여행객이 지난해 23만 명에서 올해 32만 명으로 42%나 증가했다. 이에 맞춰 여수시는 좀 더 많은 관광객들이 섬 관광에 나설 수 있도록 명품 여행상품을 꾸준히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절실한 것은 인문학적·생태학적 성찰이다. 한 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여수시는 온갖 난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 교통 악화,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가 반면교사 대상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100년 후까지 내다보고 제주 미래의 핵심가치로 ‘청정’과 ‘공존’을 채택하고 이를 실현할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그간 제주땅에서 벌어진 거침없는 개발사업의 폐해, 시장중심, 효율과 성장 일변도의 국제자유도시 전략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여수도 제주도가 겪는 몸살이 이미 시작됐다.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 이후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난개발을 막을 선제적인 제도 장치 마련에 실패하면서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축물들이 여수의 해안 경관을 망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차별적인 섬 관광 홍보로 인해 지금 돌산이나 섬에는 펜션 등의 숙박시설이 산림을 훼손하며 들어서고 있지만 행정은 법과 제도를 핑계되며 제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명세를 탄 일부 섬들은 벌써 수용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 먹거리로 365개의 섬을 핵심 자원으로 삼고 있는 여수시도 이제 관광객 중심의 이기적인 관광이 아닌 마을과 주민 중심의 여행, 주민과 여행자들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 결국 마을 공동체가 복원되는 여행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이에 인문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여행자와 여행지 주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여행을 하자는 ‘공정여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섬여행학교 강동준 대표.

섬 여행의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는 섬여행학교 강동준(36) 대표는 “지금의 관광은 마을과 주민 삶과는 별개로, 섬을 망치는 것은 물론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이 소외되거나 시혜의 대상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런 관광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섬여행학교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섬여행학교는 지난 2010년 전남대 섬 생태관광연구센터에서 섬의 주민공동체와 여행객 그리고 행정의 중간에서 올바른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만든 브랜드 이름이다. 일반 패키지여행을 지양하고 공정여행, 교육여행, 여행자센터 등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한 길잡이를 자처했다. 섬여행에 학교라는 말을 붙인 것도 ‘섬 여행을 통해 배우자’는 의미가 담겼다.

광주에서 첫 문을 연 ‘섬여행학교’는 그동안 전남 지역의 다양한 섬의 주민공동체를 만들고 이들 공동체를 여행객과 연결해 주는 일을 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365개의 섬이 있어 접근성이나 기회적인 측면이 큰 여수에 둥지를 틀었다. 섬여행학교는 ‘섬을 걷자, 섬에서 배우자, 섬에서 나누자’라는 슬로건으로 섬 생태의 가치를 지키며 섬의 지속가능한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섬을 여행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각각의 섬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색 있는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콘텐츠(여행상품)로 개발하는 한편, 나아가 섬 가꾸기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과 그 안의 사람들, 자연과 그 안의 생물들, 그리고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섬 여행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패키지나 깃발부대 여행, 메이저급 여행사의 랜드 업체 같은 기존의 먹고 마시는 획일적인 패턴의 관광은 없다. 대신 섬의 자연과 환경을 배려하고, 지역과 문화를 존중하며, 사람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생태적인 여행을 지향한다.

섬 주인은 행정·관광객·여객선사가 아니다
개발 등 경제 논리에 휘둘리며 주민 갈등,
공동체 정신 파괴…지속가능한 섬 고민 절실

섬여행 전문가는 현재의 여수 섬 관광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강 대표는 “‘섬 여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섬 여행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오도 비렁길의 경우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도보관광이 여행문화로 자리 잡을 때 조성됐는데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와 맞물려 비교적 손쉽게 활성화 되다보니 행정이나 마을 주민들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함구미에서 서쪽으로 안도 둘레길까지 이어지는 비렁길 5개 코스는 1박2일, 2박3일, 3박4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데도 콘텐츠 미흡 등으로 여전히 경관 위주의 관광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수년 전에 조성돼 한해 수십만 명이 다녀가는 데도 이에 비하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크지 않다”고 했다.

금오도의 관광 패턴의 변화를 보면 요즘은 단체 관광객이 대형버스를 타고 섬에 들어간다. 마을을 경유하지 않는 비렁길만 걷고 섬을 빠져 나간다. 육지에서 준비해 간 음식은 비렁길을 걸은 후 버스 뒤편에서 먹는다. 심지어 가스레인지를 싣고 다니기도 한다. 육지 관광의 패턴이 섬 관광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관광객들이 각종 쓰레기와 소음, 공해 등으로 섬의 환경을 파괴하는데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굳이 금오도가 아니더라도 갈 곳이 많지만 그들로 인해 망가진 섬의 상처는 고스란히 섬과 주민들에게 남게 된다.

강 대표는 “섬 관광은 육지 관광과는 다르게 차별화된 관점으로 행정, 주민, 여객선사 등 유관 기관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데 따로따로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섬 전체가 관광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마을별로 제각각이다. 그러다보니 마을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비렁길 정반대 편에 있는 대유·소유마을의 경우 관광객들이 거의 오지 않아 주민들의 소외감과 박탈감이 크다. 시가 폐교를 활용한 야영장을 만들어 지난해 12월 마을 주민들에게 위탁 운영을 맡겼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수개월 째 운영이 안 되고 있다. 다른 지자체 벤치마킹을 다녀오는 등 열정과 의욕이 넘치던 주민들은 현재 의욕과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안타까운 것은 변화하는 섬의 중심이 돼 공동체 회복에 나섰던 주민들이 비관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마을·주민공동체 복원, 어촌체험마을, 농·어촌 휴양마을, 관광객과 주민들의 수익 창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업에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마을 유지급 인사나 경제 논리에 빠른 일부 주민, 외지 사람들이 사실상 독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수익 사업 모델들이 지역 특성을 무시한 채 진행되면서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무시되고 있다. 개발을 통한 경제 논리에 매몰돼 이웃 간, 주일간 공동체 정신이 파괴되는 실정이다. 일부 섬은 주민들 스스로 해결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마을 주일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변화에 따른 막연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평화롭던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는 “섬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바닷일과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관광서비스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에게 수익이 몰리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동체 정신이 파괴되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섬이 갖는 특수성이 무시됐다. 마을은 주민들 삶의 터전으로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관광객들은 이는 전혀 무시하고 섬을 마치 내가 주인인양 대상으로 인식해 자꾸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섬의 불편을 참지 못한다. 주민과 관광객, 행정이 섬을 대하는 관점과 인식이 다른데서 문제점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 추도 돌담길.

꽃섬으로 알려진 여수시 화정면 하화도의 경우 수용력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주민과 향우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할머니 혼자 거주하고 있는 추도도 마찬가지다. 강 대표는 “이미 수용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섬에 쏟아 붓고 있다.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는 데 경제 논리에만 매몰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사실 행정과 여객선사는 관광객이 많이 올수록 지역경제와 사업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주민들 입장보다는 방문객 입장에 가깝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비렁길 유명세에 가려 실제 금오도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했다. 경관에만 초점을 맞춘 무분별한 홍보가 금오도를 다양하게 여행할 확장성을 막았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앞으로가 더 문제다. 개발 논리에 지배당하면서 난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섬 주민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기인한다.

지속가능한 섬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광객을 마구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주민과 행정 모두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중간 지원 조직 등을 통한 주민 교육도 꾸준하게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섬 관광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교육 등을 통해 인식시키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을 공유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각종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을 리더와 주민들이 틀어져 실패한 사례를 많이 봐 왔다. 리더는 주민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 조바심을 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마을별로 착한 경쟁과 외지인들과의 협력 사업도 필요하다. 법률이나 회계, 운영 등 섬 주민들이 이를 모두 하기에는 사실 벅차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과 주민, 중간조직을 잇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여수 진남관 인근에 있는 섬여행학교 사무실.

마을 공동체 복원·고유문화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치 공유 위한 다양한 콘텐츠 발굴 활성화 필요

섬여행학교는 섬 환경과 주민과의 교감을 중요시한다. 섬 마을에 가면 맨 먼저 “마을에 놀러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을 어르신한테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외지인들이 주민들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그는 “섬의 주인은 행정이나 관광객, 여객선사가 아닌 주민들이다. 섬 여행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섬여행은 불편하고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감수하지 않고 육지 여행처럼 편리함을 요구하는 게 문제”라며 “이는 대한민국 여행패턴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마을 공동체 복원이나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치 공유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발굴과 활성화를 제시했다. 효도관광이나 체육대회 등 주민 화합을 위한 일회성 행사도 필요하지만 당제, 매구, 파시(고기가 한창 많이 잡히는 때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 섬장터) 등 섬 고유문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복원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시를 통해 여행객들이 섬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에 대해 시장을 보게 하는 것이다.

“섬 지역에 적합한 농특산물 재배를 통한 수익구조 다양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종국에는 ‘수십 만 명이 왔다 갔다더라’는 수치상의 평가만 남을 수밖에 없는데 이 수치는 행정 입장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주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강 대표는 “방문객과 행정의 관점이 아닌 섬 주민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섬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오도 관광의 경우 처음부터 어떤 섬으로 가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목표가 명확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성장통도 빨리 찾아왔다. 이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다음 대안이 제시돼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진단했다. 금오도에 벌써 안식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금오도뿐만 아니라 하화도, 추도 등 다른 섬들도 해당된다.

여수밤바다, 인문학적·생태학적 접근 소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 되어 간다

여수시의 원도심·청년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섬여행학교 남은진(31) 매니저는 “원도심 활성화의 종착역이 궁금하다. 전국 모든 지자체의 화두가 된 도시 재생이 대부분 비슷비슷해 차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여수를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첫마디가 ‘통영 같다’, ‘통영에도 거북선 있는데 여기에도 거북선이 있네’ 등등 여수가 도시 이미지 선점 면에서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매니저는 “통영은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 유치환, 전혁림 등 문학과 음악 등 예술 자원이 풍부하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가 이를 도시 마케팅에 잘 활용한 것 같다”고 했다. 통영시는 통영 하면 떠오르는 ‘바다와 예향의 도시’ 이미지를 선점하는데 성공했다. 전국에 벽화 붐을 일으킨 동피랑의 경우 주민들이 주도해 성공한 선진 사례로 꼽히고 있다.

섬여행학교 남은진 매니저.

남 매니저는 “세계적인 행사인 엑스포를 개최한 전국 유일의 소도시임에도 여수가 가지고 있는 고유 자원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여수밤바다’라는 키워드가 있다. 하지만 인문학적, 생태학적 접근에 소홀하다보니 여유와 낭만보다는 먹고 마시는 노는, 부산 해운대 느낌이 강해지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가 되어 간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민간이나 시민단체 등 중간 고리 역할이 중요한데 청년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아쉽다고도 했다. 그는 “창업, 전통시장과 원도심 활성화에 청년 자원을 활용할만한 여수시만의 차별화된 소통 공간이나 정책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강동준 대표와 남은진 매니저는 “품격이 있는 관광 도시, 가슴 속에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여수에 정착하기 전 광주에서 5년 간 섬여행학교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섬여행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온 강동준 대표와 남은진 매니저. 두 청년의 여수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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