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사람이요 사람이 곧 글’이란 말이 있다. 나는 말로 하라고 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내 애기를 할 수 있지만, 글을 쓰라고 하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기에 강요(?)에 가까운 글쓰기를 선뜻 승낙하고 말았다.



막상 신문에 실을 글을 쓰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이 일주일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괜한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그래서 부담 없는 주제로 평소 마음 속에 간직한고 있었던 내용들을 글로 옮겨보기로 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품어왔던 꿈의 상당부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욕심낼 이유도 없다. 단지 지금 이 시간에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꿈을 향해 뛰어가는 후배들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을 뿐이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서 험난한 길을 헤쳐나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하면서 초년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러한 삶의 곡절을 겪었던 선배가 가슴에 쌓아두었던 많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건네주어 그들이 실패를 이겨내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전달 과정에서 다소 서툰 글이 있을지라도 독자제위께서 너그럽게 이해 해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릴 뿐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 장등 부락이다. 그곳은 뒤편으로 봉화산이 우뚝솟아 있고, 오른편으로 고흥 팔영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으며 앞으로 보이는 바다는 조용한 호수처럼 언제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참으로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그곳에는 버스 길조차 없었고 대처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뱃길이었다. 그래서 뱃고동 소리 길게 울리는 여객선을 타고, 나 보아라고 도시로 향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꿈이고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나는 그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배를 타고 여수에 나올 때도 뱃고동은 어김없이 울어댔다. 그래서 지금도 바다를 보거나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나는 항상 고향 생각에 목이 멘다.



지난 세월 되돌아보면 열심히 뛰어온 세월이다. 한눈팔지 않고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뛰어온 세월이다. 나름대로 꿈꾸었던 많은 것들을 어느 정도 이룬 지금, 고향에 대한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영국 작가 조지 무어의 소설 ‘케리드 川(천)’을 읽으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서 그것을 발견한다.’는 구절이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세가 되던 해에 서울로 왔다. 그 때는 내 인생의 아침이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내 인생의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내가 검찰총장까지 지냈으니 내가 참으로 운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성공은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나의 성공은 내 작은 노력에 내 어머니의 휘어진 등과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과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주던 고향에 대한 진한 향수가 함께 만들어 낸 합작품임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은 고향이 키운다고 했다. 고향의 물이 키우고, 고향의 산이 키운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가정이 키우고 학교가 키우고, 그러고도 모자라는 것은 밥이 키운다고 했다. 그래서 산수 좋은 곳에 인물이 많이 나는 법이다.



그래서 산수가 수려한 내 고향 여수에 훌륭한 인재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내가 고향에서 받은 것을 지금부터 내 지역의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기 때문이다.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이요,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란 옛 시가 있다. 잡혀 온 말이나 쫓겨 온 새도 고향 쪽으로만 머리를 두고, 깃 또한 튼다는 말이다. 이 시(詩)도 분명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말과 새를 빗대 자신의 애달픈 심경을 표현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향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집. 넓은 세상을 알기위해 잠시 떠났다가, 넓은 세상을 안 다음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 그래서 지금도 고향 가는 길은 항상 가슴 설레는 일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 갈증이 심해진다. 그래서 고향은 내게 언제나 마르지 않는 그리움의 옹달샘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고향의 풍경은 가슴속에 샘물처럼 오래도록 고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향은 또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 모래성을 쌓으며 바닷가에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마음속에 빛바랜 앨범으로 내 가슴 속에 남아있고, 대나무 끝에 줄 매달아 낚시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정지된 그 모습 그대로 아직 추억의 앨범 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는 것은 배우지만 고향에 보답하는 덕목은 배우지 못한다. 나뿐 아니라 고향을 떠난 누구나 고향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내가 태어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고향. 너무도 가난해서 마음까지도 척박했던 유년시절을 겪은 나 같은 사람에게 고향은 이렇게 항상 애달프게 다가오는 존재이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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