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등에 도움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건 정신이 이상한 엄마라는 수군거림
발달장애인 부모 “몇 년 후에는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무거워”

지난해 2월 여수서 발달장애인 자녀 둔 엄마 아파트서 투신자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회적 지원 체계 부재로 발생된 예고된 인재”

지난해 1월 24일 대구시 수성구 한 식당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28세 류모(여)씨가 번개탄을 피워 놓고 자살했다. 류씨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할 만큼 했는데 지쳐서 그런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 달라. 장기는 다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또 “언니와 같이 죽으려 했는데 실패했다. 언니를 죽이고 싶은데 힘이 모자란다. 잘해 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류씨는 숨지기 전에도 언니와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나 주위는 물론 관할 지자체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3월 광주광역시에서는 발달장애아를 둔 30대 젊은 부부가 안방에서 “아들이 발달장애로 아빠, 엄마도 알아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혼자 남을 아이를 걱정해 함께 떠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연탄에 불을 피워놓고 가족 모두 동반 자살했다. 노트에는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의 심정과 극단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2013년 서울 관악구에서는 17세의 자폐성 장애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가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여수에서도 발달장애인을 둔 가정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2월 2일 새벽, 여수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어머니가 투신자살했다. 알코올 홀릭(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가정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1년 365일 명절도 없고 휴일도 없는 부모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결국 지역사회의 꼼꼼하지 못한 복지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이 발달장애인은 현재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사흘 후(5일)에 성명을 내어 “발달장애를 가진 자식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자식 돌봄에 생을 바쳐왔던 또 한 사람의 부모가 끝내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 자녀를 어디 보낼 곳이 없어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힌 채 돌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며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의 돌봄을 국가가 전적으로 24시간 책임져 달라고 요구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낮 시간 동안만이라도 가정을 벗어나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돌봄 안전망을 요구했을 뿐이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와 가족이 삶을 포기해야 정부의 발달장애인 돌봄 대책은 마련될 것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2014년 4월,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에 전국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조만간 구축될 것이라는 기쁨과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며 “법이 제정됐음에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최소한의 돌봄 서비스가 마련되지 못해 발생하는 연이은 자살 사건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 부재로 발생된 예고된 인재”라고 성토했다.

▲ 여수 돌산대교 야경.

돌산대교에서 자식이랑 뛰어내려 죽으려고 했지만 나만
죽고 자식만 살면 누가 돌보나 ‘비참’…부둥켜안고 울어

2014년 5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지난 3월 전남 최초로 ‘여수시 발달장애인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지만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해상케이블카와 화려한 밤바다 야경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지난 6월 어느 날 여수시 화장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아들 철수(18·가명·발달장애인 1급)의 손을 붙잡고 돌산대교로 향했다. 발달장애인을 둔 엄마로서의 삶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리 난간 위에 섰다. 하지만 자신은 죽고 철수만 살아남으면 철수는 누가 돌볼 것인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차마 뛰어내릴 수 없었다. 철수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여수시와 지역 장애인단체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철수를 담양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다. 여수에는 철수를 치료할 곳도, 보호해줄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지난달 21일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주철현 시장님! 우리 철수 정신병원에서 나와 여수에서 같이 살게 해 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도 했다.

주철현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후 우여곡절 끝에 잠시 만났지만 ‘방안을 찾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만 들어야 했다.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정신이 이상한 엄마라는 수군거림이었다. 자식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이런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이 비참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철수 엄마는 지난달 21일 울면서 촬영한 동영상을 본지로 보내 하소연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잘 데리고 있었는데 지난 3월부터 철수가 엄마를 힘들게 하네요. 아이가 집에 올 때가 되면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엄마만 보면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하거든요. 그럭저럭 몇 개월의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철수가 담양군 창평면의 한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죄책감에 살고 있습니다. 면회 가서 보면 보지 못할 정도로 땟국이 절절 흐르고, 팬티를 보니까 항문 주위가 다 헐었습니다. 약이 독한 때문인지 애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저번 주에 가니 집에 데려가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집에 오면 또다시 폭행을 할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덩치가 큰 철수를 엄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철수가 늘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독 폭력적인 시기가 있는데 그 기간만 일시 보호 해 줄 수 있는 시설이나 인력이 있으면 됩니다. 이럴 때 단기보호사라도 있었으면 철수가 멀리 있는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저희 같은 엄마 심정을 아십니까. 저희 같이 장애아동, 지적장애인 키우는 엄마들은 마음 놓고 놀러 한 번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이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시댁 식구들도, 친정 식구들도 데리고 오면 하루 종일 신경을 쓰고 봐야 하니까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구정이나 추석 등 명절 때는 늘 집에 있습니다.

요즘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죽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아이 손을 붙잡고 돌산대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만 죽고 아이가 살아나면 이 아이는 누가 돌봐야할지 그런 걱정에 죽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여수시에서 활동보조 50시간을 추가로 주긴 했지만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철수 같은 중증발달장애인들은 시설에서도 잘 받아 주지도 않습니다. 치료할 병원이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2~3주 정도 돌볼 단기보호 시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철수에게 맞는 치료시설을 찾기 위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혼자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차가 없어 철수를 데리고 다니려면 정말 너무 힘듭니다. 하루빨리 우리 철수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엄마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십시오.”

철수 가정의 절박한 위기를 이웃 주민은 이렇게 증언했다. 본인도 자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노모씨는 “어느 날 철수 엄마의 긴급한 도움 요청을 받고 집으로 갔더니 냉장고 음식이 주방 바닥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철수가 엄마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얼른 엄마와 분리시키고 철수를 진정시켰습니다.

철수가 엄마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폭력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는 활동보조 교사가 철수를 케어 하지만 저녁과 주말에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제가 가서 함께 엄마하고 있곤 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제 아들도 지적 장애 2급입니다. 혼자 두었을 때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아이입니다. 자폐성이 강한 아이라 감정이나 충동 조절이 어려워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철수 엄마의 경우 여러 경로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들은 자기 자식도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면서 남의 아이를 케어 한다고 했지만 그만큼 (철수 가정이)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남의 이야기를 하지만 몇 년 후에는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대책이 꼭 세워졌으면 합니다.”

철수는 현재 안정을 되찾아 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과잉행동 장애가 재발할 경우 대책이 여의치 않다. 이에 두 모자가 언제고 또다시 돌산대교 난간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발달장애인 가정의 심각성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여수시의 장애인 등록 현황(2016. 6. 30 현재)을 보면 1만8095명 중 발달장애인은 1406명(전체 7.8%)이다. 올해 여수시의 장애인 관련 예산은 28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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