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경쟁력 좌우하는 간판문화
개성 살린 간판은 도시의 얼굴

▲ 여수 부영3단지 앞 사거리.

도시는 다양하고 다원적인 구성요소들에 의해 그 형태가 결정되는 유기적 복합체이다. 특히 도시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관의 질을 형성하고 있는데 흔히 말하는 도시의 아름다움이란 주로 이러한 도시경관의 질에 대한 표현이다. 그래서 가로경관은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로경관을 보면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무질서함 그 자체이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넘쳐나고 좁은 인도까지 점령해 주차한 자동차, 노점상, 인접 가게의 상품 진열, 전봇대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난립하고 있다. 보행자는 보행자의 권리를 침해받는 실정이다. 더욱이 건물마다 빼곡이 부착된 돌출 간판과 가로수, 각종 전선까지, 혼란스러운 경관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도시계획 전문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는 “어떤 도시를 생각할 때 최초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가로다’라고 했다. 즉 가로 경관이 곧 도시 이미지라는 것이다.

가로 경관에는 도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건물과 가로수 나아가 자연적 요소와 문화역사를 포함한 인문적 요소 등 시민의 생활상 모두를 포괄한다. 건물 입면과 더불어 간판, 현수막까지도 도시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간판문화는 건물 입면을 옥외 광고판으로 만들며 가로 경관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 간판은 도시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공공재라는 인식이 요구되지만 소비중심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현재로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 여수 서교동 사거리 인근 건물.

간판의 주요 기능은 장소를 인지시키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글을 몰라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그 가게를 상징하는 기능을 가진다. 뭔가를 팔아야 하는 사람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편리한 언어인 셈이다.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간판을 통해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신들의 점포를 알리기 위해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경쟁한다. 소비 중심 사회로 달려가면서 먹고 사는 무한경쟁으로 직결되며 간판들은 난립이 되고 그 언어는 편리함을 넘어 도시 속 공해가 된지 오래다.

특히 상가 밀집지역에는 멋진 건축물도 아름다운 가로수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정면·측면은 물론이고 입간판까지 내걸어 건물을 죄다 가리는가 하면 죄 없는 가로수를 못살게 굴기도 한다. 알록달록 요란한 색상, 더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 번쩍번쩍 조명까지 더해 도시의 품위를 떨어뜨리기 일쑤다.

우리나라는 건축물이 아름다워도 무분별한 간판 때문에 건물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건물을 아름답게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다. 간판이 도시미관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여수 도심 곳곳의 영업점 간판도 무분별하다 못해 도시 미관을 현저하게 해치고 있다. 주요 사거리 건물에 덕지덕지 부착된 간판은 도시를 혼란스럽게 할 정도다.

여수시 서교동과 부영3단지 앞 사거리의 건물만 봐도 그렇다. 술집이 몰려 있는 거리는 간판의 크기가 대형화되고, 조명이 현란하다. 무조건 키우고, 현란하게 하는 것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큰 때문이다.

▲ 여수 학동 소방서 뒤 거리.

학동 소방서 뒤 밤 길거리는 상가마다 쏘아내는 간판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어지럽게 한다. 색색이 조명 역시 밝기를 최대한 밝혀 눈을 부시게 한다. 상인들은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불러 모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대체로 입소문과 미리 위치를 파악하고 가기 때문에 간판의 비중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도 반응도 있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들어선 돌산공원 인근 등 주요 관광지의 영업점 간판도 마찬가지다. 원색에다 조잡한 디자인으로 미관을 해치기 일쑤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웅천 신도심의 경우도 새로 지어진 건물에 디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색을 사용한 형광등간판(후렉스간판)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치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뿐 아니다. 공중뿐 아니라 보행로까지 차지해버린 각종 입간판들로 보행권은 침해받고, 자동차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국제해양관광시를 지향하는 여수 간판 문화의 현주소다. 물론 이런 현상은 여수만 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해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만큼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미관을 생각하는 간판을 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지자체들이 시범사업 등 무분별한 간판을 개선하자며 간판의 크기와 모양, 색깔 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법적인 규제가 아니라 지역 상인회와 자치단체간의 협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므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업주가 바뀌어 간판을 임의대로 하겠다고 하면 이를 막을 뾰족한 수도 없다. 특히 영세 상인들에게는 간판은 유일한 광고수단이고, 지나치게 규제를 할 경우 상가의 반발이 우려된다.

그러나 간판 정비는 분명 도시 미관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키는 사업 중 하나다. 개발사업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사업에 소요되는 시간도 짧은 장점을 지닌다.

간판은 공공재, 도시미관 고려한 간판문화 지향해야
장기 안목 갖고 가이드라인과 표준디자인 제정 필요

이에 간판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업주와 간판업계 등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수시가 의지를 가지고 나서야 한다. 전주시의 경우 옥외광고 특정구역을 정해 규격과 디자인, 색상등 규제기준을 강화하고, 제한하고 있다. 한옥마을과 최근 들어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도 대상이다.

여수시도 중앙로, 진남로, 박람회장 주진입로 등에 대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간판 개선 사업을 펼친 바 있다. 깔끔하게 정비된 간판 덕분에 거리 전체가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일괄적으로 정비를 하다 보니 예산과 편의를 위해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탓에 획일화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그 배경에는 디자인 철학과 도시 경관에 대한 이해와 정책의 부재가 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간판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인정되어야 가능한 일이고 영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간판을 의뢰하는 사람은 싸지만 크게 또 남들보다 눈에 띄는 화려한 것을 원하고, 간판업계는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제작을 해주는 실정이다.

▲ 여수 부영3단지 앞 상가.

그럼에도 도시의 품격과 주민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간판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개수, 크기, 위치, 색상, 네온사인 등의 제한은 엄격하게 해야 한다. 주민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공공미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들이 간판 크기와 색깔을 규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도 간판을 공공미술로 생각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할 때다. ‘간판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아름다운 도시는 불가능하다. 천편일률적인 새단장이 아닌, 개성을 살린 작고 예쁜 간판으로 도시를 경쾌하고 품위 있게 만들 수 있도록 수준 높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지역 상인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아이디어도 필요해 보인다.

결국 여수시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특정지역을 늘려가면서 체계적이고 현실가능한 가이드라인과 표준디자인을 만들어 새 간판에 대해서는 미관심의를 강화하고, 간판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등 관리 방안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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