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및 정확한 기준 없어 실효성 논란
대형마트 지역자본 역외유출 지역사회 무방비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필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유통대기업이 대규모 점포를 신규 입점할 때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돼 있는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상권영향평가서는 대규모점포 등의 신규 출점, 점포 소재지 변경, 매장면적을 10% 이상 확장, 업태(대형마트·백화점·전문점·쇼핑센터·복합쇼핑몰)를 변경할 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문서다. 상권영향평가서에는 사업개요와 상권영향 분석 범위, 인구통계 현황, 전통시장, 전통상점가, 소매점 등 기존 사업자 현황 및 종합적 분석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상권영향평가서를 개점 당사자인 유통 대기업 스스로 작성하도록 돼 있고, 지역협력계획서 또한 법적 근거 및 정확한 기준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상태이다.

▲ 여수 웅천지구에 들어설 이마트 트레이더스 건축 조감도.

실제 유통대기업들의 상권영향평가서가 자신들의 입맛대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 정의당 김제남 전 국회의원이 전국 17개 광역시도 및 기초자치단체로부터 제출받은 30여개 상권영향평가서를 분석한 결과 유통대기업이 제출한 상권영향평가서는 주변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긍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상권영향평가서는 반드시 반영돼야 하는 전통상점가를 누락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지자체장은 상권영향평가서 및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받아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또는 관련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해 보완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거나 심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협의회로 전락했다.

김 전 의원은 “엉터리 상권영향평가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작성 주체를 유통대기업이 아닌 지자체나 제3의 전문기관으로 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상권영향평가서에 지역 상권의 매출과 고용감소 등의 종합적 분석이 반드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 제출 기한에 대해서도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은 대규모 점포를 등록할 때 관할 지자체장에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개장 60일 전에 제출해 유통상생발전협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지자체는 평가서와 계획서가 미진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사유를 명시해 보완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이 다 지어진 상태에서 영업 시작 전에 서류를 제출하게 돼 있는 것이어서 문제점이 제기돼도 사실상 등록을 거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국회의원은 지난 9월 23일 대규모 점포의 입점 평가를 사전에 받도록 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 의원은 “대규모 쇼핑몰이 건축을 마치고 영업시작 전에 상권영향평가서 등을 제출하다보니 이를 검토하는 자치단체장이 점포 등록을 거부할 수 없다”며 “영업시작 전이 아닌 건축허가 신청 전, 혹은 건축신고 전에 모든 서류검토를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

▲ 여수 교동 오거리와 진남로 상가.(자료사진)

◇ 고용 효과, 일자리 잃은 대체 신규일자리 창출로 보기 힘들어

최근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도 발표돼 여수시에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추진하고 있는 이마트타운은 창고형 할인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체험형 가전·생활 전문매장, 식음료센터 등을 갖춘 초대형 복합매장이다.

하지만 이마트타운으로 인해 실업자 5000명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대규모 점포가 들어설 때면 해당 지자체가 곧잘 쓰는 고용 창출 효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연제구도 같은 논리를 폈다.

부경대 글로벌물류연구소는 지난달 10일 중소상공인살리기연합회 의뢰를 받아 이마트가 지난 7월과 9월 제출한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이마트타운 연산점이 입점하면 지역상인의 연간 매출이 1조3747억 원 줄고 상인과 종업원을 포함해 실업자 5000명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연제구에 제출한 상권영향평가서 등에서 이마트타운 연산점이 들어서면 △소비의 외부 유출 제한 △집객 효과 높아져 주변 상권 활성화 △550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글로벌물류연구소는 ▷이윤과 납품대금 외부 유출로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할 수 없음 △고객들이 주변 상권에서 소비할 가능성 없음 △매출 30% 감소로 종사자의 20%인 5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마트타운 입점 허가 주체인 연제구가 긍정적으로 보는 고용 효과에 대해 일자리를 잃은 주민을 대체해 신규일자리 창출로 보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550명 고용 등 지역 협력으로 얻는 효과는 2만7000명에 이르는 도소매 종사자의 연간 수익 705억 원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고 했다. 법적으로 당연히 이행해야 할 ‘영업 제한 시간 및 의무 휴업일 준수’ 등을 지역 협력으로 제시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대기업과 중소상공인들 간의 이해관계가 맞서는 구도로 설정해 중립적인 지점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여수 최대 전통시장인 서시장.(자료사진)

◇ 지역경제 활성화 외부의 힘에 의존해선 안 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여수는 관광객이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지만 일부 원도심을 제외하고는 지역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한 상태에 있다. 더욱이 아파트와 펜션 등은 늘고 있지만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동안 지역발전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은 지역에 외부 자금을 얼마나 끌어들이는가에 따라 발전 정도를 평가해 왔다. 그러나 지역이 제대로 발전되지 못하는 문제는 지역 내에 돈이 제대로 유입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기업, 소비자, 공공기관 등 지역의 경제 주체들이 지역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않고 외부의 힘에 의존한 탓이 크다.

외생적 개발로 인한 경제성장은 그 성장의 여파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외부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내 자원 조달 비중이 높고, 투자가 지역 내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고용과 소득이 지역 안에서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그리고 현재도 여수시가 주력하는 방식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거나 외부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외부의 힘에 의존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방식은 효과가 신통치 않을 뿐 아니라, 지역의 돈을 끌어 모아 외부로 유출시키면서 지역경제를 갈수록 어렵게 만든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여수시의 행정이 관광에 거의 올인하다시피한 결과 다른 지자체보다 관광객이 훨씬 더 많이 찾고 있지만 1300만 명 수치가 실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행정과 지역민들의 기대와는 괴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대형마트처럼 본사를 수도권에 둔 대기업이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아래에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많은 부분이 지역으로 귀속되지 못하고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무방비 상태로 지켜보고 있다.

이에 대형마트 등이 지역의 돈을 외부로 유출시키면서 지역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자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제 지역경제 활성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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