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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은 도시를 창의적으로 재생시키는 인큐베이터오래된 건물과 트렌드, 그리고 여수관광<상-2>이제 여수도 오래된 건물 중 개별 건축 자산의 건축적·역사적·희소적·수요적 가치를 발견해 보존·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시점이 됐다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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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1  09: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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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교동 골목길. 전라좌수영성의 흔적과 오래된 건물 등이 섞여 있는, 한 때 여수 최고의 번화가였던 여수시 교동 골목길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밀려난 뒷골목이 됐다. (사진=마재일 기자)

오래된 건물, 도시 정체성 살리는 보석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 등이 차곡히 쌓이면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여수의 정체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원도심이다. 도시의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은 도시경쟁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계기로 관광도시로 확실하게 도약하고 있는 여수의 외형적인 모습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쇠퇴한 원도심을 살린다며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결과 새로운 시설과 건물이 들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지어지는 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상업화와 개발논리에 밀려 옛 모습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는 여수시 종화동 해양공원 일대의 모습은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오동도로 가는 도로가 뚫리고 주변의 화려한 야간조명과 포차 등으로 인파가 북적이면서 상가의 임대료도 대폭 올랐다.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도시가 돼 가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도 공존한다. 이는 곧 여수의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도 원도심의 가치를 높여 여수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자원과 시간 및 공간적인 가치, 여수시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계획은 배제돼 왔으며 여전히 낙후된 건물을 철거한 후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해안은 콘크리트를 부어 구조물을 만드는 개발논리를 따르고 있다. 여수 원도심의 가치와 정체성의 명확한 개념과 방향을 정해 활성화 계획을 수립, 추진한 것이 아니어서 중구난방식이다. 그렇다고 여수 원도심의 가치와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의가 내려진 적이 없다.

한때는 번영, 또 한때는 쇠락의 상징이었던 원도심에는 보석이 많다. 특히 그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많이 띠고 있는 원도심의 건축 자산은 어느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희소성, 견고성, 전통성 등을 갖춘 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건축 자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너무 부족했다. 그저 남루한 건물로만, 개발하기 좋은 재료로만, 낡아서 철거해야 할 애물단지로만 취급했다.

   
▲ 여수시 교동에 있는 해방 후 약국으로 사용되던 일본식 건물 ‘임약국’.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에도 역사와 스토리, 희소성을 가진 가치 있는 오래된 건물이 곳곳에 있다. 전라좌수영성의 흔적과 오래된 건물 등이 섞여 있는, 한 때 여수 최고의 번화가였던 여수시 교동 골목길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밀려난 뒷골목이 됐다. 그러나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낡은 전당포, 여인숙 간판, 남도여관, 여수향교, 해방 후 약국으로 사용되던 일본식 건물 임약국, 이순신 장군도 드셨다는 큰 샘(大井) 등 언제든지 발길을 돌리면 과거의 시간과 맞닥뜨릴 수 있는 곳이다. 도시가 다양한 구성 요소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유기체와 같은 이유다.

이제 여수도 오래된 건물 중 개별 건축 자산의 건축적·역사적·희소적·수요적 가치를 발견해 보존·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시점이 됐다. 그것에다가 역사적 이야기를 발굴하고 만들어 내면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건축물은 때론 그 어떤 유산보다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당대 건축양식은 물론이고 거주하던 인물의 특징과 생활상, 지리적·역사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데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건축물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의 오래된 건물은 높은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급속한 상업화로 개발논리에 밀리거나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탓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도시계획 전문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는 자신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좋은 도시의 4가지 요건으로 △용도복합 △작은 블록 △오래된 건물 △집중을 강조했다. 이 책은 도시 계획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역저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제이콥스에 따르면 도시에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야 다양성도 커지고 도시의 활력도 높아진다.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오래된 건물을 없애는 추세지만, 오래된 건물이야말로 도시를 창의적으로 재생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수익이 다양하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비중의 오래된 건물을 비롯해 햇수와 상태가 각기 다른 여러 건물이 지구에 섞여 있어야 한다. 꽤 촘촘하게 섞여 있을수록 좋다.

버려진 공간이 새로운 콘텐츠로 거듭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생태·환경 등을 고려해 다양한 경관과 자원을 만들어 원주민 정착률을 높인다는 취지로 진행되는 도시 재생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지 않는 대신 고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낙후 지역 건물을 무조건 허물어 고층 아파트를 짓는 기존의 ‘뉴타운 개발’ 방식과는 다르다.

이 중 오래된 창고나 병원·공장 등을 개조해 카페 등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공간 재생 움직임이 활기를 띠면서 그 도시의 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건물 역사가 오롯이 드러날 수 있도록 건축물과 그 공간을 재생하는 데 집중한다.

재생 건축은 말 그대로 부수고 없애는 개발논리 대신 오래된 건물을 현재 용도에 맞게 고쳐 쓰는 것, 다시 말해 과거 흔적을 역사적 유산으로 재생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서양은 벌써 100년 이상, 일본만 해도 이미 60년 전부터 도시 재생과 연결한 연구가 활발하다. 가동을 멈춘 화력발전소에 들어선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버려진 화물 운송 철도가 놓인 고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뉴욕 하이라인 파크가 대표적이다.

건물 재생 개념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한 건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와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서울 합정점, 제주 한림점이 인기를 끌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대림창고는 1970년대 초 정미소로 지어진 건물인데 최근 20여 년 동안 창고로 사용되다 2011년부터 패션쇼와 전시, 촬영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실내외의 낡은 벽과 철문, 대림창고라는 오래된 간판까지 그대로 유지한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전시 공간과 함께 카페를 운영해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2014년 12월 문을 연 카페 앤트러사이트 제주 한림점은 지은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전분공장을 수리해서 운영하고 있다. (사진=앤트러사이트 사이트)

2009년 오픈한 서울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은 70년대 신발공장을 재생해 컨베이어벨트를 인테리어에 활용하고 녹슨 철문까지 테이블로 사용했다. 2014년 12월 문을 연 카페 앤트러사이트 한림점은 지은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전분공장을 수리해서 운영하는데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중산간 도로를 따라 예전 감귤을 저장하던 돌창고는 카페와 공방으로 변신, 관광객으로부터 호응이 크다.

인천의 아카이브 카페 ‘빙고’는 1920년대 얼음 창고를 재생해 공간의 장소성·역사성을 그대로 살렸다.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은 오래된 양곡창고를 미디어아트미술관, 문화카페, 책공방 북아트센터, 책박물관 등으로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 1926년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수탈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던 양곡창고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지역과 함께 한 오래된 건물의 가치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2013년 개관 이후 12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고서점의 경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도서 1만여점을 포함 총 10만여권이 비치돼 학술분야 등의 전문가들도 찾는다.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은 오래된 양곡창고를 미디어아트미술관, 문화카페, 책공방 북아트센터, 책박물관 등으로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 1926년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수탈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던 양곡창고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지역과 함께 한 오래된 건물의 가치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완주군청 홈페이지)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은 오래된 양곡창고를 미디어아트미술관, 문화카페, 책공방 북아트센터, 책박물관 등으로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 1926년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수탈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던 양곡창고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지역과 함께 한 오래된 건물의 가치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완주군청 홈페이지)

장소와 소품 등은 모두 다르지만 원래 공간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 세월의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명소로 떠오르면서 주변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 사례는 로트렌드(Raw Trend)와 브라운핸즈(Brown Hands)라는 트렌드의 영향이 크다. 로트렌드는 ‘익히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낡고 허름한 공간들을 새롭게 꾸미는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로트렌드 확산으로 최근 그런 공간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재활용을 넘어선 가치 창출, 즉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가치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 묘미를 최대한 살린 공간으로 인해 주변까지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오래된 당구장을 새로 고치지 않고 갤러리로 쓰거나 망가진 물탱크를 인테리어로 활용하거나 폐선 또는 버려진 문짝 같은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건물 내부를 꾸민다. 낡은 학교 책상을 카페 가구로 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폐허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뉴욕의 소호나 베이징의 798예술거리가 로트렌드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꼽힌다.

브라운핸즈는 흙과 나무 같은 자연 소재, 그리고 은은하게 때 묻은 오래된 시간을 살려내 제품이나 건물 등에 스토리를 더해 활용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부산 초량동의 옛 백제병원 건물은 공간 자체의 역사성과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브라운핸즈 백제’라는 카페로 변신해 핫플레이스가 됐다. 세월을 거치며 증축된 미로 같은 공간 구조와 오래된 목조 창틀, 타일 문양의 바닥 등이 고색창연하면서도 이색적이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백제병원은 1922년 부산 최초의 서양식 개인병원으로 근대 건축물(등록문화재 제647호)이다. 10년 남짓 병원으로 쓰이다가 일본군 장교숙소와 중국 식당, 광복 후 치안대 사무실, 한국전쟁 후 예식장, 탁구장 등으로 사용되다 1972년에 화재가 난 뒤 상가 건물이 됐다. 201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 줄곧 비어 있었다. 이곳을 카페로 오픈한 디자인 회사인 브라운핸즈는 국제시장 6공구 낡은 상가의 한 공간도 카페로 꾸며 오픈해 부산의 라이프스타일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부산 ‘브라운핸즈 백제’ 카페. 부산 초량동의 옛 백제병원 건물은 공간 자체의 역사성과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브라운핸즈 백제’라는 카페로 변신해 핫플레이스가 됐다. 세월을 거치며 증축된 미로 같은 공간 구조와 오래된 목조 창틀, 타일 문양의 바닥 등이 고색창연하면서도 이색적이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브라운핸즈 사이트)
   
▲버스 차고지를 카페로 탄생시킨 창원(마산)의 ‘브라운핸즈’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안전제일’이라는 글씨가 그대로 적혀 있고, 버스차고지 시절의 흔적인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문구도 그대로다. 정비사가 차량 아래 들어가 작업하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앤트러사이트 사이트)

버스 차고지를 카페로 탄생시킨 창원(마산)의 ‘브라운핸즈’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안전제일’이라는 글씨가 그대로 적혀 있고, 버스차고지 시절의 흔적인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문구도 그대로다. 정비사가 차량 아래 들어가 작업하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쌀과 제지창고로 이용되던 70년 정도 된 건물을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의 ‘비욘드 가라지(beyond garage)’는 플리마켓, 결혼식장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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