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창 한영고 교장


찬바람에 문풍지가 울 때면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 세상 뜨신지 벌써 6년이 지났다. 생전에 아버지는 불가마가 당신 병 치료에 좋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마량 가는 길목의 불가마 방 옆에다가 문간방 하나를 얻어놓으셨다. 그곳을 어머니와 같이 자주 오가셨다. 헌데 거처하신 그 방이 어찌나 추웠던지 후덕한 집주인의 인심하고는 달리 벽에서는 냉기가 서릿발 같이 솟아 나왔다.

문틀 사이로 황소바람도 들어 왔으니 창호로 추위 단속을 해도 냉기가 가시질 않는 그런 방에서 아버지는 긴 이별의 짐을 싸고 계셨던 것이다. 부모님이 겨울동안을 거기에 계셨으니 토요일마다 아버지께 가는 발길이 천근이요, 힘없이 흔드시는 아버지의 손을 뒤로하고 오는 마음은 만근이라,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눈물 보이지 못하고 차안에서 운전대를 두들기며 얼마나 울었던지.

나는 지금도 도교육청을 가기 위해서 강진을 지나갈 때마다 야위신 몸으로 겨우 서서 손 흔드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서 목구멍에서 눈물이 나온다. 겨울에 문풍지만 떨어도 마음이 먼저 운다.
며칠 전에 시제가 있어서 하룻밤을 어머니 옆에서 잤다. 어머니는 아들하고 같이 잠을 잘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하시면서 “좋다, 좋다!”를 연발 하신다.
노구에 힘들고 고독하단 말씀이시다. 시골에서는 밤이 도시보다 더 일찍 깊어간다. 어머니 잠드신 얼굴위로 세월의 그늘이 길게 내린 것이 보인다.

내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곳도 이렇게 야위신 내 어머니의 몸을 통해서였구나. 굽으신 어머니 등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어머니 주무실 때에도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도 긴 겨울밤을 거의 뜬눈으로 돌아 누어서 신음하고…….

세월은 왜 이렇게 줄달음쳐 가는가? 나도 내 나이에 불현듯이 놀란다. 어느새 나도 초로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도 팔순이 되셨다.
언제 80십년의 세월이 온통 어머니의 허리로 한꺼번에 내려앉았는지 더 깊어진 허리에 몇 발짝의 행보에도 힘들어 하신다. 그러면서도 “나는 늙은이다. 너희들만 건강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하신다.

불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어머니의 건강을 비는 마음이 늘 기도의 내용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몸은 검불처럼 가벼워지시고 심음소리는 더 깊어지신다. 이 일을 어찌할까. 어찌하면 어머니 앞에 오는 늙음을 멈추게 해보랴. 내가 어쩌지 못하고 늘 하늘을 쳐다보는 의미를 하느님은 아실까?

“한 손에 가시 들고/ 다른 손에 막대기 들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기로 치렀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말 우탁이란 분의 시다. 백발이 오는 길을 뉘라서 막을 수 있으랴. 늙은 나이를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는 것을.

나는 가끔 시골집에 들려도 사랑채는 들어가기가 싫다. 아버지 마지막 누우신 자리라서 그런지, 까닭모를 원망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방도 어설프고 냉기가 꽉 찬 것 같아서 또 싫다. 언제나 계셨던 그 자리가 텅 비어서 그런가. 아버지 체온이 식어버린 자리여서 그런가. 꾸지람도, 반가움도 사라져버린 공간이어서 그런가. 사랑문 열면 아버지 계서야 하는데, 빈방의 주인 잃은 서책에서 곰팡이 냄새만 풍겨온다.

위당(爲堂)정인보 선생의 자모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무치게 아픈지 모르겠다. 볼 수 없는 아버지는 왜 더 그립고, 늙으신 어머니는 왜 늘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자모사는 40수로 된 연시조다. 어머니를 그리는 심정이 넘쳐흐르는 시조이다. 40수중에서 세수만 소개해 본다.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바리(놋쇠로 만든 밥그릇)의 따뜻한 밥은 자식 주시고, 당신께서 잡수시는 것은 찬밥이며 두둑히 자식들 옷을 다 해 입히시고, 당신께서는 겨울에도 엷은 옷을, 솜치마 그리 좋다시며 아끼시다가 결국 보공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보공은 사람이 죽은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을 말한다. 겨울에는 솜치마 좋다고 하시면서도 그것을 아끼시느라 입지 않으시더니, 끝내 그 솜치마는 돌아가신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김흥규의 현대시 해설에서)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돌아가셨어도 살아계신 듯하다. 안방에 불 비치면, 어머니 계신가하여 닫힌 창 바삐 열었다가 또 몇 번이나 울었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어버이 추운 산 속에 계시는데 내 어찌 따뜻한 이불 속에 있겠는가 한다.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밤중만 어머니의 그늘이 세 번이나 내린다고 한다. 아이가 잘 때에도 “어미의 이슬이 눈물로, 정성으로, 사랑으로 세 번이나 내린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그 은혜는 끝이 없고, 온 정성 다해도 갚을 길도 없다.

올 겨울이 더 추울지 모르겠다. 어머니 집에 보일러가 가끔 말썽을 부린다. 이참에 바꿔야 되나? 아버지 계실 때에는 해년마다 창호를 했는데 아버지 가신 뒤로는 창호가 해를 넘기기도 한다. 더 춥기 전에 어머니 방에 창호를 해드려야 하는데……. 유자도 따러 가야 하는데……. 문풍지 더 서럽게 울기 전에 창호를 해드려야 하는데…….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