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전 검찰총장/고려대 교수


매운탕집이 있다. 나이가 들어 흰 머리가 가득한 그 집 주인은 손님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서 전혀 기가 죽는 법이 없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 자주 그 집을 찾게 된다.

우선, 그 집에 가면 메뉴를 내가 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인 영감님이 “오늘 이것이 좋습니다.”하고 내놓으면 그것이 곧 메뉴가 된다.
쏘가리탕, 빠가사리탕, 매기탕, 어느 여름날에는 피리탕을 끓여줄 때도 있다. 하여간 메뉴는 계절마다, 또 그 날의 사정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르다.

인상 좋아 보이는 그 집 주인은 여느 식당주인과는 달리, 돈 벌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싱싱한 물고기가 없으면 고기가 없다면서 밥공기에 그냥 집에서 먹는 밑반찬만 내 준다.

다른 고기라도 달라고 하면, 맛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참 희한한 사람이다. 그런데 도무지 돈을 벌 것 같지 않은 이곳 식당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손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재료만 쓴다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집을 자주 가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하루 전에 미리 전화를 해서 어떤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다음 날 영락없이 그 매운탕을 식탁위에 올려놓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하도 신기해서 나는 어느 날 주인에게 물었다.
“필요한 고기들을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잡아요?”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기들은 종류대로 노는 물이 따로 있어요. 피리는 피리가 노는 물이 있고, 쏘가리는 쏘가리가 노는 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대로 그 고기가 노는 물을 찾아가서 잡기만 하면 됩니다.”

하긴, 내가 어렸을 때, 시골마을 앞에서 낚시를 할 때도, 이곳은 감성돔 포인트, 저곳은 노래미 포인트, 이렇게 장소마다 잡히는 고기종류가 달랐으니 노인의 그 말은 맞다. 그리고 그 노인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아침에 고기를 잡고 며칠 후에 그 장소에 다시 가서 그물을 펼치면 다른 종류의 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영락없이 똑같은 종류의 고기가 다시 잡힙니다.”

고기도 노는 물이 따로 있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사관이 범인을 찾으려면, 범인이 놀만한 물을 먼저 수소문한다. 매운탕집의 노인이 매기를 잡으려면 매기가 노는 물을 찾아가듯이 수사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이기는 하지만, 한번쯤 내 자신이 어느 물에서 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내가 지금 맑은 물에서 놀고 있는지, 흙탕물에서 놀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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