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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골목에서 근대유산이 살아 숨 쉰다오래된 건물과 트렌드, 그리고 여수관광<중-2>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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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30  08: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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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과 트렌드, 그리고 여수관광<중-2> 2km 거리가 통째 역사박물관으로 대구 전체 문화재의 48%가 중구에 모여 있다. 대구 중심지 역할 했지만 침체일로에 있던 원도심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여수는 그동안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음식, 바다 등 비교적 무궁한 활용이 가능한 관광 자원을 보유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다른 지자체에 선점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이제는 고유 콘텐츠와 다양한 특성이 곧 그 지역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에 <동부매일>은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명소와 관광지보다 여수의 역사와 정체성, 희소성 등을 간직한 ‘오래된 건물’과 ‘골목길’의 흔적을 찾아 의미를 되새겨보고 여행 트렌드와 어떻게 접목이 가능한지 사례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활용과 보존 방안도 모색해 본다.

지리적으로 대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중구는 대구 최대 번화가이자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대구 전체 문화재의 48%가 중구에 모여 있다. 하지만 여느 도시의 원도심처럼 다른 지역들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빠져 나갔다. 하지만 중구는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선교박물관과 청라언덕,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과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 부자들의 위엄을 느끼게 하는 골목길까지,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어 대구에게는 보물 같은 지역이다. 일본인이 살았던 근대건축물 등이 지금까지도 중구에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고, 해방시기가 적절했던 탓이다. 다른 대도시에 비해 개발 속도가 더뎠던 점도 있다.

근대골목투어라는 관광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이들 하나하나의 건축물과 거리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008년 시작된 근대골목투어는 이제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됐다. 근대골목투어는 5개의 코스와 맛투어, 야경투어, 스탬프투어 등 8개의 투어로 구성돼 있다. 인근에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과 염매시장이 있어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있다. 발길이 끊기고 침체됐던 중구를 되살리는 도심재생사업으로 다른 지역과는 색다른 활기를 띠며 모델이 되고 있다. 최근 근대문화골목에 100여년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세월의 흔적들을 더듬어봤다.

   
▲선교박물관. 선교사의 주택이었다. ⓒ 마재일 기자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선교·의료·교육 박물관’으로
고딕 양식 계산성당 인근엔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보존

지역 최초 서양식병원 제중원, 의료선교가 근대화 불 지펴
소설 ‘마당 깊은 집’ 속 건물인 정소아과의원 등 즐비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은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3.1만세운동길을 거쳐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뽕나무골목, 진골목에 이르는 1.64km의 길이다. 대구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청라언덕은 울창한 숲, 고풍스러운 건물, 선교사 묘역 등이 이국적인 풍취를 풍긴다. 가곡 ‘동무생각’의 가사에 등장한다.

청라언덕에는 현재 동산의료원(옛 제중원濟衆院)과 남문안예배당의 후신인 대구제일교회, 서양 선교사들이 1906~1907년 설립한 계성중·고교와 신명고교 등이 들어서 있다. 제중원은 대구 근대화의 불씨가 시작된 곳이다. 대한제국 3년인 1899년,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은 대구읍성 남쪽 계산동 약전골목 내 남문안예배당에 당시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서양의료기관인 ‘제중원’을 세운다. 제중원 설립을 계기로 대구에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약령시(藥令市 각종 약재를 교환, 매매하는 시장)를 비롯한 토착상권은 민족자본을 축적해나가면서 대구가 일본 제국주의에 부단히 저항할 수 있는 저력이 됐다.

대구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신축 건물) 뒤편에는 고풍스러운 2층 건물 세 채가 있다. 1910년에 지은 선교사 주택이다. 동산의료원 측은 1999년 개원 100주년을 맞아 이 건물들을 선교·의료·교육역사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선교박물관 ⓒ 마재일 기자 
   
▲의료박물관 ⓒ 마재일 기자 
   
▲선교박물관 ⓒ 마재일 기자  

선교박물관은 대구의 첫 여성 선교사인 마르타 스위처가 살았던 곳으로 1907년 철거된 대구읍성의 성돌을 주춧돌로 삼아 붉은 벽돌을 쌓고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서 유행했던 방갈로풍으로 지었는데, 한국인의 정서를 감안해 양식과 한식의 조화를 꾀한 특이한 건물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과정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정원에는 제중원 설립자인 존슨 박사가 미국 미주리 주에서 가져온 72그루의 사과나무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과나무의 2세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70년 정도 된다. 존슨 사과나무들은 대구·경북 전역으로 퍼져 나가 ‘대구 사과’의 기원이 됐다.

의료박물관과 교육역사박물관은 지붕을 제외하곤 선교박물관과 건축양식·구조가 유사하다. 의료·교육역사 박물관은 지붕까지 온전한 서양식이다. 챔니스 선교사의 주택인 의료박물관에는 1900년대 상아청진기, 1930년대 금바늘 주사기와 안과검사용 현미경을 비롯해 19, 20세기 동서양 의료기기가 소장돼 있어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귀신통’이라 불린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도 보관돼 있다. 존슨 박사의 부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1800년 미국에서 제작된 골동품이다. 1901년 부산항으로 들여와 낙동강을 통해 나룻배로 대구 사문진까지 운송한 뒤 목도로 집에 옮겼다.

   
선교박물관 내부. 선교사가 실제 사용하던 방 모습.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 ⓒ 마재일 기자 

   
▲국내 최초 고압 산소 치료기 ⓒ 마재일 기자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선교사 주택)에는 대구지역 3·1운동 관련 사료들과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의료박물관과 교육역사박물관 사이에는 ‘동무생각’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 노래는 이은상(1903∼1982) 작사, 박태준(1900~1986) 작곡으로 1922년 발표됐다. 대구가 고향인 박태준은 서양음악의 개척자로, ‘오빠 생각’, ‘기러기’, 최초의 창작 동요 ‘가을밤’ 등 많은 명작을 남겼다. 선교사 주택 한편에는 국내 최초 고압 산소 치료기가 있다. 연탄가스 중독사고 때마다 실제 치료에 사용됐다고 한다.

대구제일교회와 의료박물관 사이로 내려가면 1919년 3월 8일, 계성학교·신명학교·성서학당·대구고보 학생들이 청라언덕 솔밭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시내로 진출하는 도중에 거쳐 갔던 3·1운동길과 90계단이 나온다. 90계단 담벼락에는 대구 3·1운동, 서문시장 등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있다. 90계단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면 계산동성당이 나온다. 1902년 건립된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이상화 시인의 낭만주의 시로 대표되는 ‘나의 침실로’의 영감을 이곳에서 얻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90계단 

   
▲뽕나무 골목 

성당을 지나 왼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뽕나무골목이 나온다. ‘두사충杜師忠의 뽕나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을 따라왔다 고향에 가지 않고 두 아들을 데리고 대구에 정착한 중국 귀화인 두사충의 사연이 깃든 뽕나무다. 그는 귀화 후 현재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일대에서 뽕나무 재배와 양잠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이웃 처녀와의 러브 스토리도 남겼다. 그리고 그로 인해 뒷날 계산동엔 ‘뽕나무 골목’이 생겼다. 계산성당 바로 옆 식당 담벼락 벽화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옆으로 돌아가면 마주 보고 있는 이상화·서상돈 고택이 나온다. 일제가 강점한 식민지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읊은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1901~1943)는 이 집에서 1939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다. 2002년 이상화 고택이 지역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대구 시민들이 보존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서명과 모금 등 6년여 동안 매달린 끝에 고택을 새로 단장해 2008년 8월 문화재로 개관할 정도로 대구 시민들에게 이 고택은 특별하다. 바로 옆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고택과 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서상돈(1850~1913) 고택도 대구 시민들의 자랑거리다. 서상돈은 보부상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한 해에 3만 석을 거두는 거부로 자수성가한 민족자본가다. 그는 학교를 짓고 계몽서적과 신문을 발간하는 출판사를 설립하는 등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1907년 1월 일제가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고 제공한 차관을 국민이 대신 갚아 국권을 지키자는 취지의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했다. 운동은 비록 일제의 앞잡이인 일진회의 방해공작으로 중도에 좌절됐지만, 그해 4월 말까지 전국에서 4만여 명이 참여해 230여만 원을 모금하는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국민들이 일치단결하는 구심점이 됐다.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 마재일 기자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내부 ⓒ 마재일 기자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 마재일 기자 

   
▲문화관광해설사가 이상정장군 고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179개 약업사·한약방 등 즐비한 ‘약전골목’

약 700m 길이의 약전골목에는 한의원, 제탕·제환·제분업소, 약재상 등 179개의 점포가 좌우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약전골목의 기원은 1658년(조선 효종 9)부터 개장된 약령시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던 한약시장으로, 경상감영 내 객사 주변에서 개장되다가 1908년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이 한약시장은 우리나라는 물론 만주, 중국, 몽골, 아라비아,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로 한약재를 거래해 국제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자금과 연락의 거점이 돼서 지속적인 탄압을 받다가 1941년 강제로 폐쇄되기도 했다. 약전골목 안은 한약재 향기 덕분에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179개의 점포가 밀집한 약전골목 ⓒ 마재일 기자 

약전골목 입구에는 옛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제중원이 처음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1908년 남문안예배당을 헐고 고딕양식으로 새로 지은 이 교회의 종탑은 높이가 5층에 달한다. 인근에는 1914년 건립된 옛 교남 YMCA회관이 있다. 이 건물은 3·1운동 때는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장소로 쓰였고,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약전골목의 끝자락에는 좁다란 진골목이 있다. 골목 이름은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인 ‘질다’에서 따왔다. 조선시대 때부터 존재한 진골목은 그 시절 내로라하는 대구의 유지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 대구 토박이 달성 서씨 부자 서병국과 그의 형제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도 이 골목에 살았다. 특이 이 골목은 여성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골목에는 또 작가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에 등장하는 정소아과의원과 백록요정 등 유서 깊은 건물이 즐비하다. 2㎞ 남짓한 대구 근대골목 기행은 진골목에서 끝을 맺는다.

   
▲계산성당 ⓒ 마재일 기자 

   
 
정소아과 의원
1937년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대구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대구 갑부 서병직의 저택이었다. 1947년 정필수 원장이 매입해 정소아과 건물로 사용했다. 정소아과는 한국전쟁 전후의 대구를 담은 소설 ‘마당 깊은 집’에도 등장할 정도로 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던 병원이었다. 정소아과 건물은 변형이 거의 없어 일제강점기의 상류층 주거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근대 건축물이다.
 

   
▲미도다방 ⓒ 대구시 

미도다방
과거 TK(대구·경북) 정치인과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으로 현재는 방문객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전통다방이다. 미도다방은 사라져가는 전통다방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서 많은 장년층들과 예술가들이 방문한다. 한때는 유학자들이 많이 방문해 ‘양반다방’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관광객들도 전통다방을 경험해 보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남겨져 있다. 요즈음 보기 드문 이 시대의 사랑방이다.

현진건 등 대구 문인 소개 ‘대구문학관·향촌문화관’
중구 향촌동 옛 상업은행 건물에 들어선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 문학관에는 이상화와 이장희, 현진건 등 대구 작가를 기리는 ‘명예의 전당’과 ‘대구 문학 기록보관소’ 등이 있다. 기록보관소에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이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1960년까지 대구와 경북지역의 문인들을 소개해 지역의 문단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또 시민들이 문학을 가까이 느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영상관, 체험관, 동화구연방, 문학서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을 갖췄다. 1950년대 낭만과 예술혼이 숨 쉬던 향촌동 거리를 재현한 향촌문화관은 시인 구상이 단골로 머문 화월여관, 화가 이중섭이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백록다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 마재일 기자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 마재일 기자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 마재일 기자 

대구근대역사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건물로, 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쓰이다가 2011년에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대구시는 르네상스 양식을 차용해 지어진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돼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 내에는 근대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이 있다.

공구골목 북성로
공구골목으로 유명한 대구 북성로는 400여채의 근대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며 새롭게 재생했다. 이곳은 일제강기 대구읍성을 허물고 쌀창고와 백화점 들어선 번화가로 조성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전국 최대의 공구상 골목으로 바뀐 기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시간과 공간연구소, 대구사회적기업센터와 중구청이 결성한 리노베이션위원회가 주도해 이 일대 근대건축물 입주를 신청한 이들과 설계를 맡을 16명의 건축사가 손을 잡고 진행한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를 통해 재탄생했다. 건물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개보수하면 공사비용의 범위 80%안에서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했다.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협력해 도시재생과 사회적 기업을 위한 투자를 함께 유치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었다. 80년 이상 된 ‘삼덕상회’ 건물은 개·보수를 거쳐 처음으로 시범을 보인 건물이다. 다다미식 방과 이국적인 디자인이 가미돼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근대건물을 이용한 카페, 음식점들이 공구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인이 거주했던 ‘삼덕상회’. 80년 이상 됐다. ⓒ 대구시 
   
▲창고를 활용한 대구 북성로 공구골목의‘소금창고’ⓒ 대구시 

근대골목 기획자 권상구, 윤순영 중구청장 적극 지원
근대문화골목 재탄생을 주도한 이는 민간인이었다. 권상구(42) 시간과 공간연구소 이사는 중구의 꼬불꼬불 골목길의 숨은 역사를 끄집어내 대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과거 대구의 모든 돈과 쌀이 모여 최고의 부의 거리, 번화가였던 공구거리 북성로에 스토리를 입힌 이도 권 이사다. 그는 대구의 골목을 재발견하는 데 열정과 전문성을 발휘했다. 약전골목 향촌동골목 진골목 등 대구의 골목이 가진 가치를 ‘골목은 살아있다’, ‘대구신택리지’ ‘대구식후경’ 같은 책자에 담았다. 이와 함께 근대골목 디자인개선사업과 대구거리축제 등으로 대구의 골목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근대역사골목투어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됐고, 권 이사는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상 대상’을 받았다. 물론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도 컸다. 근대골목투어를 대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북성로 복원 사업 등을 제안한 현 윤순영 중구청장(63·여·3선)의 강한 의지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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