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전 검찰총장/고려대 교수


12월. 이제 거리 곳곳에서는 화려한 네온들이 불을 밝히면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이렇게 올 한 해도 간다.

이맘때면 누구나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고 아쉬움을 갖게 되지만,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새해를 기대하며 새로운 꿈을 가꾸게 된다.
그 꿈이란 결국 그것이 크든 작든 성취라는 말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성취, 직장에서의 성취, 사업에서의 성취 등….

이렇게 우리는 항상 성취라는 것을 염원하며 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새롭고 더 거창한 꿈을 준비하기에 마음은 항상 분주하기만 하다.

무엇을 이루어야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최고로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행복하지만은 않은 모습에서, 성공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직위나 명예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도 자신이 지키고 있는 자리가 비록 작은 자리이지만, 그것이 성공의 자리라고 느껴지면 그것이 가치 있는 성공이 아닐까.
우리는 무심결에 성공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그리고 가까이 하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고 나는 믿는다.

주위에는 성공했다는 사람보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더러는 수많은 ‘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강한 척, 있는 척, 아는 척, 심지어 모르는 척도 하면서 살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의식적으로‘척’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약한 사람이 더 강한 척 해야 하고, 없는 사람이 더 있는 척 해야 하고, 모르는 사람이 더 아는 척 해야 할 때도 분명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힘든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냥 내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 그래서 세상을 향해 “그래서 어쩔 건데?” 하고 당당하게 물을 수 있는 것이 내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샤꾸의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나이 들면서 나는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의 대처 방법을 아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남들 앞에서 강해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인정하고, 그 약점을 가능한 한 내 장점으로 바꿔 보자고 생각한 뒤에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냥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거다.
존 템플턴의 ‘열정’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다. 어떤 여인이 무시무시한 큰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여인을 따라온다. 여인은 계곡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막다른 곳에 다다르게 된다. 마침내 괴물이 코앞에까지 왔다. 여인은 괴물에게 말한다.
“야, 괴물아 도대체 나한테 뭘 어쩌려는 거야?”
괴물이 대답한다.
“그건 너한테 달렸지. 이건 네가 꾸는 꿈이니까.”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기쁘고 슬픈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렇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괴물은 이룰 수 없는 나의 꿈이며 이 괴물은 결국 내 마음이 만든 것들이다. 새해에는 괴물을 만드는 내 마음을 먼저 다스려 괴물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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