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직원·승무원·민원담당 공무원·사회복지사 등 민원·고객 응대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자살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전북 전주시의 한 이동통신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했던 여고생이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저수지에 투신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 해당 이동통신회사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던 A(17)양은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 저수지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A양은 지난 2014년에도 과도한 실적압박으로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례가 있는 SAVE팀에서 최근까지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해지방어부서’로 불리는 SAVE팀은 고객센터 내에서도 가장 인격적 모독을 많이 당하는 부서로 알려졌다.

전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A양은 전화 상담을 하다 고객의 폭언에 못 견뎌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친구들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한 적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양은 회사로부터 고객 응대 실적까지 강요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타 직원과 판매 실적을 비교당하며 근무가 끝나고 남아서 별도로 공부까지 하고 퇴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미성년자였던 A양은 하루 8시간 근무를 초과할 수 없음에도 이른바 ‘콜 수’라 불리는 고객응대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후 6시를 훌쩍 넘겨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 같은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A양은 저수지에 투신하기 사흘 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나 회사 그만두면 안 돼”라며 가족들에게 울먹인 것으로 전해졌다.
 

▲ 여수시 콜센터 근무 모습.

실제로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고객에도 친절해야 하는 전화상담원, 무리한 요구에도 사과부터 해야 하는 백화점직원 등 ‘감정노동’이 근로자의 수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윤진하 연세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연구팀이 2011년 시행된 ‘제3차 근로환경조사’에 참여한 20세 이상 65세 미만 임금근로자 1만3066명을 대상으로 근로행태에 따른 수면장애 여부를 비교한 결과 화가 난 고객 응대를 많이 할수록 수면장애 위험이 최대 6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가 난 고객을 가끔 응대하는 근로자는 거의 응대를 안 하는 근로자와 비교해 수면장애 위험이 남성에서 1.45배, 여성에서 1.48배 높아졌다. 항상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하는 근로자의 수면장애 위험은 더 증가했는데 남성에서 5.46배, 여성에서 5.59배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에 감정을 항상 감추고 일하는 근로자 역시 그렇지 않은 근로자보다 수면장애 위험이 남성에서 1.78배, 여성에서 1.63배 높았다.

감정노동자 피해는 안내·접수 종사자,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 콜센터 상담직원, 백화점 직원 등 판매직, 승무원, 간호사, 은행 창구 종사자, 종교, 복지 등 광범위하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압구정의 아파트 경비원 자살, 대형마트 갑질이 대표적 사례다. 여수시 콜센터도 불만을 나타내는 민원부터 심지어 욕을 하거나 센터로 찾아와 고성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들인 감정노동자는 업무수행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 받는다.

직업상 상대방에게 본인의 인격을 판매하며,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 등을 감내하는 감정노동으로 생긴 스트레스는 심할 경우 정신질환과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어,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 노출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7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민원담당 공무원, 사회복지사, 우편집배원 등 공직자들도 사실상 이들 감정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악성 민원인의 갑질 행태, 시민을 위한 무한 봉사자라는 굴레에 묶여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여수시도 민원인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 해결 방안 모색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와 구로구, 경기도, 광주광역시의 경우 지난해 감정노동자 보호와 관련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전주시 등은 제정을 앞두고 있다. 10여개의 민간 기업도 수당이나 휴일 등 감정노동에 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광주시의회 등 감정 노동자 보호 조례 제정

2016년 1월 전국 최초로 감정노동 조례를 제정한 서울시는 감정노동 종사자들을 위해 권리보호센터를 신설하고 간접·특수고용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감정노동자는 직접 피해구제도 도와주고 있다.

광주시의회는 지난해 7월 광주시 본청 및 산하기관의 감정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광주광역시 감정 노동자 보호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안은 감정노동자의 정의와 적용범위, 가이드라인, 감정노동자보호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례안에 따르면 사업장은 광주시와 그 소속 기관, 시 산하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 사무 위탁기관, 시의 지원을 받는 각종 시설로 규정했다. 조례는 감정노동자, 사용자, 계약 사용자, 감정 노동자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광주시장은 감정노동의 정신적 스트레스의 예방 및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3년마다 감정노동종사자 근로환경 개선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시장은 개선계획을 효율적으로 수립·추진하기 위해 감정노동종사자의 고용현황 및 근로환경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개선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감정 노동자의 보호와 사용자, 계약사용자, 고객의 의무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공표해야 하며 감정노동자보호지원센터도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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