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으며 충무공을 찾아 나서다 ①

모든 사람은 ‘사회적 개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인이란 말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며 만난 이순신도 그러했다. 조선시대가 제시한 사회적 가치는 ‘효’였고 효의 확장으로서의 ‘충’이었다. 이순신은 한 집안의 아들로서 효를 온몸으로 실천했고, 더 큰 집안인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도 던진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내밀한 삶의 기록인 ‘일기’를 통해 만난 이순신의 삶에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진정성에 우리는 전율했다.

▲ 여수충무고등학교 ‘충무공 교육관’. 충무공 교육관은 여수충무고등학교(전남 여수시 미평7길 16) 본관 건물 1층 현관에 있다 ⓒ박인화

여수충무고등학교는 이순신의 시호를 빌려 감히 ‘충무’라는 이름으로 교명을 지었다. 하지만 부끄럽다. ‘충무’가 살아 있는 곳은 현관에 유리로 둘러싸인 ‘충무공 교육관’밖에 없다. 그러고는 여느 학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자율 동아리를 만들고, <난중일기>를 읽었다. 그러고서 우리는 이충무공을 만나러 충무공 유적지를 찾아 떠나려 한다. 거기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 나라가 나아갈 길을 묻고 싶다. 이 어지러운 시대에 이순신의 충무 정신을 우리 사회에 복원해 내고 싶다.

여수충무고등학교 자율동아리 ‘이순신 연구소’ 연구소장 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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