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물과 트렌드, 그리고 여수관광<중-5>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시간 여행의 장소’

여수는 그동안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음식, 바다 등 비교적 무궁한 활용이 가능한 관광 자원을 보유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다른 지자체에 선점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이제는 고유 콘텐츠와 다양한 특성이 곧 그 지역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관광 패턴을 유지하거나 대규모 관광 시설을 짓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광 자원의 다양화와 차별화이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관광 콘텐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알려져 있지 않은 숨어 있는 여수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수가 이순신과 거북선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 선점을 당하거나 크게 차별화된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 가치를 드러내지 않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묻혀 있는 역사문화유산 자원이 적지 않다. 숨은 보석(콘텐츠)들을 발굴해 얼마만큼 다양하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 내놓느냐도 관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 등 근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 중 하나로, 뼈아픈 일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군산. 군산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근대 유산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본다.

▲ 근대건축관에 설치된 작품 ‘민족의 함성’. 윤봉길, 김구, 홍범도, 유관순 등 독립과 관련 있는 인물 5000명의 얼굴을 새긴 조형물이다. ⓒ 심선오 사진기자

호남·충청에서 생산된 쌀, 일본 반출 시설인
항구-시내 연결한 ‘해망굴’, 뜬다리 ‘부잔교’
개항이후 일제 식민지 수탈 흔적 고스란히

옛 군산세관·나가사키 18은행·조선은행 등
아픔 간직한 건축물, 현재 미술관 등 활용

채만식 소설 ‘탁류’ 속 궁핍했던 조선인과 달리
부귀의 상징 ‘히로쓰 가옥’ 등 170여 채 산재
국내 유일 일본 사찰 ‘동국사’엔 조동종 사죄문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급하게 경사진 강 언덕 비탈에 게딱지같은 초가집이며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군산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1902~1950) 선생의 대표작 ‘탁류’에서 1930년대 군산은 이렇게 묘사된다.

일제강점기의 군산은 일본인의 도시였다. 군산항을 통해 호남과 충청의 쌀이 일본으로 강제로 수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거주도 늘었다. 강점기 때 군산 인구 중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 5대 5가 될 정도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해방 직전에는 일본인 거주자들이 늘어 군산 인구 11만 명 가운데 일본인이 6만 명을 차지했을 정도다. 광복한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군산 곳곳에는 일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세관, 은행, 상사 등 군산항 부둣가에 늘어선 근대 건물들은 일제 말기에서 바로 건너온 듯 강한 이국적 정취를 풍긴다. 원도심 곳곳에는 변화의 바람에서 비켜난 일본식 주택들이 들어앉아 있다. 물이 빠져나간 항구의 개펄에 얹혀 덩그러니 밑바닥을 드러낸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지난 23일 찾은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와 원도심의 풍경이다. 군산의 골목길을 걸으면 빛바랜 근대의 기억들이 일상으로 하나둘 불려 나온다.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 중 하나로, 뼈아픈 일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군산시는 지역 내 일제 잔재물을 보존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건축물을 고집스레 지켜내 근대문화유산으로 활용한 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활용됐던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 장미동·월명동·신흥동지역에 아픔의 상흔(傷痕)들이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을 활용해 근대문화도시조성사업을 진행했다.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근대건축관, 일본 18은행 건물은 근대미술관으로 재탄생하는 등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시간 여행의 장소’로 탈바꿈됐다.

▲ 옛 군산세관. 1908년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서양식 단충건물로 서울역사, 한국은행 건물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현재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다. ⓒ 심선오 사진기자

◇ 일제 침략과 수탈 가속화한 식민지 근대화

군산의 근대는 1899년 개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50여 가구, 500여 명이 사는 한적한 어촌이었던 군산은 개항과 함께 지금의 장미동을 비롯한 원도심에 일본 프랑스 등 57만2000㎡의 각국 공동 조계지(외국이 직접 관리하며 행정권과 치외 법권을 가지는 지역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경제적 침략 기지)가 설정되면서 근대도시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항만과 도로, 철도가 건설되고 근대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선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 대한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가속화하는 식민지 근대화였다.

부둣가에 자리한 옛 군산세관, 옛 나가사키 18은행(현 근대미술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건축관) 등에서 수탈의 흔적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옛 군산세관은 제1차 군산항 건설공사기간(1905~1910년) 중인 1908년(대한제국 순종 2)에 지어졌다. 화강암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회색 지붕과 아치형 창문을 설치한 서양식 단층 건물이다. 세관은 한국은행 본점, 서울역사와 유일하게 건축양식이 똑같은 국내에 현존하는 3대 서양 고전주의 건축물이다. 프랑스 또는 독일인이 설계했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자재를 수입해 건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부터 세관 사료 등을 전시하며 근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관 건립은 관세 수입을 올려 궁핍한 대한제국 재정에 숨통을 틔우려는 목적에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제에 철저히 이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일제가 세관 건립을 핑계로 프랑스인을 앞세워 대한제국으로부터 8만6000원을 받아낸 뒤 부두 등 자국에 필요한 항만시설까지 건설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항만에 이어 그해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국 최초의 포장도로와 1912년 군산~익산 철도를 개통했다. 자국에 부족한 쌀을 효율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을 착착 구축해 나간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는 연간 200만여 석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 옛 나가사키 18은행(현 근대미술관).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1907년 개설하고 1914년 건립된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이며, 근대미술관으로 개관해 기증된 미술작품과 지역작가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 옛 나가사키 18은행(현 근대미술관).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1907년 개설하고 1914년 건립된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이며, 근대미술관으로 개관해 기증된 미술작품과 지역작가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일본으로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1907년 설립한 은행이 옛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이다. 이 은행의 주요 업무는 일본인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대출금으로 우리 농부들에게 토지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했다. 돈을 갚지 못하는 한국인 농부의 토지는 일본인에게 속속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1910년 24곳이었던 전북 지역 일본인 농장은 1920년 58곳, 1925년에는 87곳으로 늘어났다. 이 중 1000정보(1정보는 9917㎡) 이상이 9곳, 100정보 이상은 39곳에 달했다. 현재 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가사키 은행 앞에는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일본 자국으로 반출한 쌀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다. 현재 다목적 소극장 및 기획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미(藏米)공연장’이다. 일제의 쌀 수탈 거점항이었던 군산에는 이런 창고가 많았다. ‘장미(藏米)’라는 동네 이름도 이 때문에 붙여졌다. 장미(藏米)갤러리는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활용되었던 적산가옥인데, 군산시는 이곳을 갤러리로 개관해 1층은 문화예술체험교육, 2층은 지역작가의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다.

미즈카페로 개관한 옛 미즈상사는 일제강점기에는 은행으로, 해방 이후는 검역소로 사용됐다. 1층과 2층에 각각 카페테리아와 북카페 등 휴식공간이 들어서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격동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 장미공연장(옛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쌀 창고).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하는 쌀을 보관했던 창고로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근대건축물이다. 77석의 다목적 소극장으로 조성해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공연, 발표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 장미갤러리(적산가옥). 해방 이후에는 위락시설로 사용된 근대건축물로 1층은 문화예술 체험 교육장, 2층은 갤러리로 조성해 지역 문화예술인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 미즈커피(옛 미즈상사). 1930년대 무역회사와 상업시설로 활용된 근대건축물이다. 1층은 카페테리아, 2층은 북카페로 조성해 시민과 방문객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1922년 세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역시 일본인에게 특혜를 주고 조선인을 착취했던 금융기관이었다. 붉은 벽돌의 2층 외벽에 아래위층을 수직으로 잇는 6개의 길쭉한 창문을 설치한 이 건물은 당시 경성 이외 지역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 꼽혔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석공들이 완성한 근대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채만식 선생의 ‘탁류’에도 등장한다.

현재 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1층은 ‘근대 군산을 말하다’란 콘셉트로 근대 군산이야기 상영, 원도심 바닥지도위에서 정보탐색, 조선은행의 역사적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군산항 개항에서 광복까지 생활상과 조선은행의 재생 과정 및 공법이 공개되고 있다.

▲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건축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기관이었으며 1922년 준공된 옛 조선은행을 보수, 복원해 근대건축 모형 및 은행 관련 자료 등의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건축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기관이었으며 1922년 준공된 옛 조선은행을 보수, 복원해 근대건축 모형 및 은행 관련 자료 등의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건축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기관이었으며 1922년 준공된 옛 조선은행을 보수, 복원해 근대건축 모형 및 은행 관련 자료 등의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일제는 쌀을 더 많이 빼앗기 위해 투기에도 손을 뻗쳤다. ‘미두장(米豆場)’이 그것이다. 미두장은 미래 일정한 시점에 쌀을 사고파는 권리를 거래하는 곳으로, 이 과정에서 시세차익을 놓고 노름이 벌어져 재산을 탕진하는 한국인이 속출했다. 미두장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맞은편에 있었는데 해방 이후 원불교 교당으로 사용하다가 1951년 불에 타 없어졌다. 지금은 한국선박중개소 군산지점이 들어서 있다.

1926년 물자를 신속하게 나르기 위해 군산항과 시내를 연결한 길이 131m의 반원형 터널 ‘해망굴’은 6·25전쟁 때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이 지휘소로 사용돼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현재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행인만 통과가 가능하다.

군산 바다가 보이는 내항에는 ‘뜬다리’가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큰 배들이 부두에 정박할 수 없자 수위에 따라 높이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잔교, 일명 뜬다리를 1926~1933년 사이에 진행된 제3차 축항 공사를 통해 설치했다. 당시 3000톤급 기선을 6척이나 댈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통해 하루 화차 150량 분량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부잔교는 현재 3기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과거 옥구현에 속한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군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로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쌀이 있었다. 군산항은 우리나라의 농산물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뼈아픈 통로였던 것이다.

▲ 해망굴. 일제강점기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 1926년 완공한 토목시설물이다. ⓒ 군산시
▲ 부잔교(뜬다리). 군산내항이 해상교역물류의 중심지임을 염두한 일본이 1899년 개항 이후 수출입 화물작업을 위해 수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부잔료(뜬다리)를 만들었다. ⓒ 마재일 기자

◇ 일본 불교 조동종 과거 잘못 사죄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는 일본인을 영주로, 한국인을 소작인이나 도시 빈민으로 만들었다. 1924년 말 전북 농민의 3분의 2가 넘는 13만7000여 명이 소작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산의 한국인 대다수가 산비탈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남자는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고, 여자는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거나 정미소에서 쌀을 가려내는 미선공으로 일했다. 당시 군산의 미선공이 2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언덕 비탈에 의지하여 오막살이들이 생선 비늘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중에서도 산상 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데 명님이네가 도통 오 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 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한테 이 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 채만식 선생은 ‘탁류’에서 당시 군산에 사는 한국인들의 가난한 생활상을 이같이 묘사했다.

▲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과 이들의 농촌수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 마재일 기자
▲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과 이들의 농촌수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 마재일 기자

원도심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부의 자취가 즐비하다. 신흥동 일본식 주택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목점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이 집은 ‘ㄱ’자 모양으로 붙은 2층 건물 두 채 사이에 석등과 분재, 바닥돌 등 자연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일본식 정원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취를 자아낸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다. 현재 170여 채의 일본식 주택이 원도심에 남아 있다.

일제가 한국인들을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 자국의 불교 대표 종파인 조동종을 동원해 세운 사찰 동국사는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건물로 에도시대 건축 양식이다.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6월 일본 조동종 승려 우찌다 스님이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본 조동종은 수 많은 양민(良民)이 전쟁에 내몰리고, 가녀린 소녀들이 성노예로 끌려간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와 달리 1992년 우리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뒤 용서를 구했다. 절 한편에 조동종 주지가 발표한 ‘참사문’(懺謝文·사죄와 용서의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군산의 근대가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미래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버렸는데, 우리 조동종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특히 잔잔한 표정으로 동국사 대웅전을 바라보는 소녀상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관광객들이 소녀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고 있다.

▲ 국내 유일의 일본 사찰 동국사. 동국사는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건물로 에도시대 건축 양식이다. 절 한편에 일본 조동종 한 주지가 발표한 ‘참사문’(懺謝文·사죄와 용서의 글)과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 마재일 기자

◇ 임피역사·고우당·채만식 등 관광자원 활용

진포는 군산의 옛 지명이다. 내항에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말 1380년(우왕 6년)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해 왜적을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전투 현장이었던 내항 일대에 육해공군의 퇴역장비 13종 16대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45년 미국에서 건조돼 1959년 우리나라에 인수된 해군 퇴역함정 위봉함은 4200톤 규모의 축구 경기장 절반(3천288㎡·995평)만한 규모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총 6층으로 구성된 위봉함 내부는 1층에 고려시대 최무선 장군의 업적과 화포 개발과정 등이 담긴 이른바 ‘고려역사 속으로 떠나는 역사여행 공간’과 2층 해군병영 생활상의 체험코너와 해양 및 전쟁유물 전시코너, 3·4·5·6층은 공연무대와 포토존, 쉼터, 조타실, 전탐실, 함교 등 함정의 원형이 유지돼 있다.

▲ 진포해양공원.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되는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내항에 대한민국 해군함선 등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13종 16대) 등을 전시한 테마공원이다. ⓒ 마재일 기자
▲ 진포해양공원.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되는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내항에 대한민국 해군함선 등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13종 16대) 등을 전시한 테마공원이다. ⓒ 마재일 기자

고우당은 일제강점기 월명동에 조성된 일본식 가옥을 복원한 체험형 게스트하우스이다. 고우당 게스트하우스는 숙박시설과 카페테리어, 주점, 식당, 특산품 판매점 등 총 10채의 일본식 가옥으로, 21실의 다다미방으로 구성돼 있다.

임피역은 전라도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닌 역이다. 1912년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 중 하나로, 서양 간이역과 일본 가옥 양식을 결합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 문화재 208호로 등록돼 있다. 건축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확량의 75%나 되는 소작료에 반발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섰던 옥구농민항쟁의 기억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임피역 내부에는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이 조형물로 재현돼 있고, 밖에는 시실리 광장, 연못, 오포, 열차체험교실, 전통우물 등이 조성돼 추억과 낭만의 명소로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임피역. 일제강점기 전라도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닌 역이다. ⓒ 군산시
▲ 이영춘 가옥.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별장으로 서구식, 일본식, 한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의 가옥이다. ⓒ 군산시

개정동 군산간호대에 있는 이영춘 가옥은 일제시대 최대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이었다. 그는 약탈 수준의 고리대금업으로 땅을 그러모아 한때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을 소유했었다. 서구식, 일본식, 한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으로 해방 이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2003년 전북유형문화재 200호로 지정됐다.

금강변에 정박한 배를 형상화한 채만식 문학관은 채만식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곳이다. 군산에는 채만식 선생의 묘와 문학비, 소설비 등이 세워져 있다. 채만식 선생의 대표작 ‘탁류’는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자 군산을 무대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이성당은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이성당은 히로세 야스타로라는 일본인이 ‘이즈모야’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영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이즈모야가 사라진 자리에 한국인 이석우씨가 자리를 잡은 이후 현재까지 집안 대대로 가업을 물려받고 있다. 빵을 사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줄을 길게 늘어서 사야할 정도다. 이성당은 단팥빵과 야채빵이 유명하다.

▲ 이성당.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 심선오 사진기자

◇ 근대역사박물관, 방문객 연간 100만 명 육박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해 보여주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테마 관광명소가 됐다. 지난해 전국 등록 공립박물관 203개 중 5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되는 등 개관 7년 만에 연간 1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박물관은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4248㎡ 규모로 지난 2011년 9월 개관했다.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체험관,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됐으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과 사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1930년대 시간여행’ 주제로 선보이는 ‘근대생활관’은 군산항 개항 당시 건설됐던 내항의 부잔교, 인력거차방, 영명학교, 군산극장, 고무신 가게 등 1930년대 군산에 실존했던 건물 11채가 복원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해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관,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 마재일 기자

◇ 영화·드라마 50여편 촬영지

군산은 ‘장군의 아들’, ‘모래시계’, ‘친절한 금자씨’,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근대 풍경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촬영된 영화나 드라마만 해도 50여 편에 이른다. 군산시가 ‘영화 속 그곳을 찾아라!’라는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주제로 한 여행 코스를 개발해 선전할 정도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다. 199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시한부 삶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 분)과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 분)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 초원사진관. 1998년 개봉한 영화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로 군산의 대표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 마재일 기자
▲ 군산 항쟁관. 군산은 일제강점기 1919년 서울파고다공원의 3.1독립만세운동 나흘 뒤인 3월 5일 한강 이남 최초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 마재일 기자
▲ 군산 항쟁관. 군산은 일제강점기 1919년 서울파고다공원의 3.1독립만세운동 나흘 뒤인 3월 5일 한강 이남 최초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 마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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