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도시개발에도 철학 담겨야<하>

지속가능하고 후손들을 위한 도시가 되려면 도시의 자원과 근본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브레이크 없이 가다가는 자칫 언젠가는 이익만 노리는 하이에나만 살기 좋은 도시로 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마재일 대표기자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주도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원주민들 상당수가 돈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외지 자본에 팔았다. 이제 홍콩이나 하와이 원주민들처럼 섬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로 전락하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에 “광풍처럼 번지는 개발 바람을 이제라도 멈추게 해야 한다. 이쯤해서 쉬고 가야한다”는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막자는 각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양적 관광 성장의 그늘을 경험한 제주도는 이미 관광 정책 흐름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여수시의 관광산업의 부정적 측면이 아직까지 제주도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핵심은 이를 어떻게 잘 대비하느냐는 것이다. 제주도도 결국 소수의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까지 온 것이다.

◇ 개발 이익 잔치의 주인공은 지역 주민

아무리 좋은 개발도 그 열매가 특정인과 기업에만 쏠린다면 그 개발은 좋은 개발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지역의 자원을 가지고 자본가만 이익을 챙긴다면 이것은 극단적인 말로 내적 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

지역개발에 투자하는 대자본가나 이를 유치하는 지방정부 모두가 한목소리로 내는 소리가 있다.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난다.” 이런 좋은 소리만 하면서 환경 파괴 등 무리한 개발과 특혜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고용이 없는 성장이 보편화되고, 기업들은 자신들이 쓰는 물건은 자기들의 자회사에서 공급받고, 공사도 역시 자신들의 회사에 주거나 하청을 주더라도 하청업체의 이익은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낮은 공사비로 계약을 하는 사례가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대형 사업의 인·허가를 내주면서 ‘특혜가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나 시간이 갈수록 개발의 이익에 대한 잔칫상에는 초대받는 이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그들밖에 없는 잔칫상이 된 사례를 우리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본다.

개발의 이익은 고작 몇 사람에게만 가는데 개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사회가 안으면서 고통을 받고, 벌어들이는 돈은 그대로인데 토지와 주택가격, 물가 등은 오르는 현실에 언제까지 개발과 성장의 찬미를 계속 외쳐대야 하는 걸까.

◇ 도시개발 속도 조절 필요

이제는 이익의 공평한 분배와 개발에 대한 속도 조절 고민이 필요하다. 여수가 발전하고 좋아지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개발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개발에 있어서 천천히,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자문해 봐야 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시장(市長)일까, 시장(市場)일까?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데, 과연 시민은 주인답게 도시 변화에 관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 시대의 절대 강자라 불리는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자본과 권력을 선출직들이 적절히 악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와이 사례에 비춰 외부 자본에 의한 땅값 폭등, 대규모 건축물 등으로 가득 차게 될 자본가 의중만을 고려한 도시지역 난개발 상황, 개발의 과실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원주민으로 내몰리는 상황 등은 자본집약적인 개발지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한 현실이 될 우려가 크다.

자본의 공습은 국제해양관광도시를 위한 개발을 지속하는 한 당연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요구에 순응하는 행정 행태 또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시민 모두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시민이나 행정은 현 시점에서 외부자본 위주의 여수개발이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지, 그렇게 가고 있다면 누구를 위해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아울러 여수개발의 나아가는 방향이 옳은지 여부도 따져 봐야 한다.

특히 행정은 여수의 역사성이나 인문적 특성보다는 과다한 투자가 요구되는 유락·관광 중심적이고 물질적이며, 돈 되는 시설물 건축 또는 그를 이용한 연관사업 중심의 개발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그런 개발기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곰곰이 반문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향토자본이나 시민우호자본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관광중심으로 개발하기만 하면 모두가 부자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행정의 허황된 논리도 점검이 필요하다.

▲ 여수 거북선대교에서 바라본 여수항.

◇ 이익만 노리는 하이에나만 살기 좋은 도시?

발전은 개발이라는 역동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만 ‘바람직한 개발 방향’은 그것에 대한 비판과 그 응답과정에서 정립된다. 정책의 실체는 분명 개발지상주의와 다름없으면서도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개발이 이 도시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반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종합개발계획이니 국제해양관광도시니 지역주민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정치적 설계일 뿐이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것은 아닌,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방(異邦)의 느낌이 드는 씁쓸함. 정작 주민들을 소외되는 개발성장주의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서 여수는 외지 자본가들에게 만만한 도시가 돼 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는 우리 도시.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사람들은 개발이 경제성장을 가져오고, 그게 만족을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만족을 주던 것들이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물론 개발도 필요하고, 경제성장도 이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유형의 개발이지, 여수의 자연을 파괴하고, 특혜로 얼룩진 그런 유형의 개발이 아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도,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모한 개발로 우리 자연이 훼손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우리들의 생활여건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하고 후손들을 위한 도시가 되려면 도시의 자원과 근본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브레이크 없이 가다가는 자칫 언젠가는 이익만 노리는 하이에나만 살기 좋은 도시로 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시장의 도시 철학 중요

물론 도시개발의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면 관광객들의 관광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일까,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일까. 물론 관광의 질도 높이고 시민 삶의 질도 높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시장의 도시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도시개발의 방향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에 따른 성장의 가속이 선출직 정치인과 공무원들, 특히 단체장의 신성한 임무인 양 간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시장은 4년짜리 비정규직 계약 공무원이다. 시장이 이 도시를 대하는 철학이 중요한 이유다. 잘못하면 4년 동안 이 도시는 갈가리 찢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철학이 없는 개발은 시민의 근심을 늘게 한다. 정부와 행정이 추진하는 개발의 광풍 앞에 선 힘없는 주민들은 신음과 울분을 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선 시장들은 시민생활 밀착 책임행정을 강조하면서도 특혜 의혹 등이 불거지면 “행정 절차상 적법하게 추진돼 문제가 없으며, 특혜가 아닌 혜택”이라고 교묘히 발뺌하곤 한다. 행정은 이런 화법을 가장 즐겨 쓴다. 행정의 거짓말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한다. 선거용 치적 부풀리기나 허황된 사업 내용 홍보 같은 건 애교에 속한다. 행정은 각종 어용 위원회, 어용 토론자를 동원한 청문회, 객관성을 빙자한 어용 용역 발주 같은 방식으로 시민들을 기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행정이 개인의 특수한 이익을 마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의 이익인 양 위장해 확대 전파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행정이 과거의 개발지상주의를 답습해서는 안 되며 일부 이해 관계자들의 개발이익을 위한 난개발에 동조해서는 더욱 곤란하다. 이는 우리들이 가꿔 나가야 도시의 방향을 잃게 하며, 성찰의 기회마저 앗아갈 소지가 충분하다.

우려되는 것은 여수시가 양적인 팽창 위주의 정책을 제고하지 않는 이상 지역 내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공동체 해체, 난개발 등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市場) 메커니즘에만 맡겨놔도 잘 굴러간다면 행정이 왜 필요할까. 이제 ‘개발이 곧 발전’이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에는 외형을 키우는 개발방식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 하지만 이제는 산업과 주거, 교통, 환경 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여수시 ‘2030년 여수도시기본계획’에서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이미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개발 과정에서 개발자나 사업주는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환경훼손·오염, 교통체증, 부동산 상승 등 개발에 따른 비용은 시민들이 떠안고 있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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