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으며 충무공을 찾아 나서다 ③

▲ 방답진 선소.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987-16에 위치해 있다.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 기지 중 하나인 방답진은 배를 만들던 곳이다. 현재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전선을 보호하거나 적이 침입한 곳으로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깊게 판 굴강만이 남아 있다. ⓒ박인화

임진년(1592년) 2월 4일 일기다. “동헌에 나가 일을 마친 뒤 북쪽 봉우리 봉화대 쌓은 곳으로 올라갔다. 축대 자리가 매우 좋아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이봉수가 부지런히 일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축대 자리를 보면서 열심히 일했을 부하를 떠올리며 대견스러워 하는 인간적인 장군의 모습이 보인다.

최근에 들어 ‘과로사’ 소식을 자주 접한다. 워킹맘부터 지하철 기관사, 방역공무원, 집배원까지. 성별이나 직업을 불문하고 과중한 노동으로 죽어간다. 죽을 만큼 일해야 하는 사회도 원망스럽지만, 죽을 만큼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무섭기까지 한다.

죽을 만큼 일해야 하는 것이 어디 어른들뿐인가. 학생들도 정말 죽을 만큼 일하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래 가지고 미래가 보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암담하다.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가 있다면, 청소년들에게는 수학포기와 영어포기와 공부포기의 3포가 있다. 하지만 대선에 나선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에게 선거권이 없어서일까?

(여수충무고 학생동아리 ‘이순신연구소’ 박인화, 홍지원, 송서연, 김윤식, 정승화, 서지희. 대표집필 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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