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의원 “시, 청소년 노동인권 정책 소극적” 질타
박정채 의장 “지역 청소년 보호에 초점 맞춰야” 지적
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노력” 뒤늦게 자료 배포

▲ 여수시의회 김재영 의원.
지난해 10월 제정된 ‘여수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가 유명무실하는 지적이다. 여수시는 조례를 제정한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교육이나 사업을 위한 시행계획조차 수립하지 않아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수시의회 김재영 의원은 지난 3일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175회 임시회 시정질문을 통해 주철현 여수시장을 상대로 여수지역 청소년 노동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는데도 여수시의 청소년 노동인권 정책은 뒷짐을 지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 비인격적인 대우에 성희롱까지

김 의원은 이날 지난 2015년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가 조사한 여수지역 청소년들의 노동인권의 현주소와 상담 사례를 공개했다.

여수지역 특성화고 3학년 전체 학생의 63%에 해당하는 8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르바이트 경험자는 49%에 달했다. 그 중 40%가 식당에서 서빙이나 설거지를 했다. 이어 편의점(24.8%)과 청소년을 고용할 수 없는 피시방도 5%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에 응한 학생들 중 단 9%만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하는 등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다양하게 인권 침해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실태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 작성은 26%에 그쳤는데 그 이유가 사업주들이 최저시급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절반이 넘는 54%의 학생들은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했다.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15~24세 청소년 근로자 가운데 26.3%는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여수지역 청소년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말해준다.

김 의원에 따르면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이라는 미명하에 하청업체 소속으로 배 위에서 일하다가 사망해도, 야간 노동 중 폭설에 무너진 지붕에 깔려 사망해도, 동료들의 폭행에 시달리다 자살해도 그저 운 나쁜 개인의 일로 치부됐다.

또, 특성화고 재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주와 손님들로부터 ‘노는 아이’ 취급을 당하며 폭언과 무시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심지어 성희롱을 경험한 여학생도 있었다. 대타 근무를 강요하거나 휴게시간을 지키지 않고 술‧담배 심부름까지, 업무가 아닌 일을 시키는 등 불법 행위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의 노동 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은 “아르바이트는 이제 청소년들에게 단순 용돈벌이나 경험 쌓기가 아니며, 적지 않은 학생들 가정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형편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그러나 “대다수 청소년들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과 각종 수당도 받지 못하고 부당대우를 당하는 등 노동인권의 최저지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올 1월에는 여수국가산단 내 한 협력업체에서 졸업을 앞두고 일하던 고3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청소년노동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김 의원은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청소년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특히 여수지역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문제의 심각성이 이미 수차례 언론에 보도됐는데도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 여수시의회 김재영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주철현 여수시장에게 시정질문을 하고 있다.

◇ “시장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김 의원은 이날 주철현 시장을 향해 “조례 제정을 찬성한 여수시가 7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사업계획조차 수립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방학 때면 학생들이 편의점과 식당 등 새벽부터 어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일을 하고 있는지 통계도 없고, 어떤 상황에서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여수시가 이번 시정질문에 보낸 답변서를 보고 너무 실망해서 7개월 동안 뭘 했는지 여수시장의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다”고 반문했다.

답변에 나선 주철현 시장은 “여수시만의 문제가 아닌, 일반적 문제인 데 여수시 차원에서 별도의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운영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주 시장은 “김 의원의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여수시가 모든 사업을 다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여수고용노동지청과 만나 협의한 결과 노동부 고유 업무라서 열심히 처리하겠다는 응답을 받았다”고 노동부에 공을 떠넘겼다. 시는 답변 자료에서도 청소년의 노동인권 보호와 노동환경 개선, 청소년고용사업장 근로감독의 책임과 권한은 고용노동지청의 고유 업무로 규정돼 있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의견이 팽팽하자 박정채 의장이 나서서 “다들 접근법이 좀 그렇다”며 “시장은, 우리 지역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노동청에서 해야 한다, 교육청에서 해야 한다고 아니고 시민인 우리 아이들을 우리 시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충 질의에 나선 박성미 의원도 “청소년 생존권 문제는 예방 차원에서 교육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며 “목포시가 예산 6000만 원을 편성했는데, 여수시는 청소년 조례를 먼저 만들고도 다른 지자체를 뒤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11일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여수지역 인권·노동·교육시민사회단체가 ‘여수시 청소년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 시행을 통한 청소년노동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민단체, 조례 시행·대책 마련 촉구

이와 관련해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전교조 여수지회 등은 11일 오전 여수시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례가 제정됐지만 여수시는 청소년 노동 인권 보호 대책 마련에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최근 시의회 시정 질의 답변에서 주철현 시장은 ‘청소년 노동 인권 보호와 노동환경 개선 등의 책임과 권한은 고용노동지청의 고유업무이고, 순천에 설치된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가 청소년 노동 인권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고 답했다”며 “이는 여수시가 청소년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제정한 조례를 시행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조례 시행과 청소년 노동 인권 보호 대책 마련, 4월 중 청소년 노동 인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개최 등을 요구하고 오는 14일까지 답변을 요구했다.

김재영 의원이 발의한 여수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는 여수시 청소년의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균형 있는 성장과 발전을 도울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 청소년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시장의 책무 ▲ 청소년노동인권 교육, 강사 양성을 비롯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계획 수립 ▲ 청소년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회 구성 및 운영 ▲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 3년마다 실시 ▲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 및 구제체계 구축 ▲ 청소년 친화사업장 선정 및 홍보 ▲ 여수시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설치 등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조례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여수시와 교육청, 노동청이 함께 청소년 노동실태에 대한 조사 진행은 물론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담기구 즉각 설치를 주장했다.

◇ 여수시, 교육과 상담 시스템 구축 지원

여수시는 비판이 일자 뒤늦게 보도자료를 배포해 지역 청소년들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교육과 상담 시스템 구축 지원 등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는 11일 타 지역의 우수한 사례를 도입해 청소년들에게 노동 관련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고용노동지청과 교육지원청, 민간단체 등과도 협력을 통해 청소년 노동인권 사각지대를 발굴·해소해 나가겠다고 했다.

또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와 지역 내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수련시설에서 노동인권 프로그램을 진행해 청소년 보호활동가와 청소년 고용주가 이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지청과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업무협업을 통해 바람직한 보호모델 구축도 검토키로 했다.

한편, 여수시 청소년 인구(만19세 미만)는 올해 1월말 기준 5만3065명으로, 여수시 인구수 대비 18.4%를 차지하고 있다. 재학 중인 학생은 91개교 3만4508명으로 청소년 인구의 6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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