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으며 충무공을 찾아 나서다 8

“중종의 비 장경왕후 윤씨의 제삿날이어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승군 100명이 돌을 주웠다.”

임진년(1592년) 3월 초2일 일기다. 일기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중에 승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왜군과의 싸움을 위해 축성 공사에 참여한 승군들의 기록을 보니 괜히 호국불교가 아니었구나 싶다.

▲ 흥국사 여수시 흥국사길 160에 위치한 흥국사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국난을 물리친 의승군의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박인화

조선이 건국한 지 200년 만에 닥친 전쟁 임진왜란으로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하고, 조정의 신료들도 그 임금이란 것을 모신다고 함께 도주한다. 조선 관군은 왜군에게 연전연패한다.

그때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선 이들이 의병과 승병들이었다. 선비들은 붓 대신 칼을 들었고, 스님들은 목탁 대신 칼을 들었고, 백성들은 호미와 낫을 들었다. 그렇게 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그때 의병이나 승병들처럼 백성들은 촛불을 켰고,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왔다. 그런데 걱정이다. 현재의 정치 지형상 협치는 필수라고 한다. 하지만 협치의 대상은 국민이다. 이를 명심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우리도 5년 뒤면 선거권이 있다.

여수충무고 학생동아리 ‘이순신연구소’ 박인화, 홍지원, 송서연, 김윤식, 정승화, 서지희. 대표집필 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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