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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게 ‘우리 교육’의 길을 묻다<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충무공 유적을 찾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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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2  17: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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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1595년) 7월 1일 일기다. “인종의 제삿날이어서 업무를 보지 않았다. 혼자 수루에 기대어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만한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마음이 산란했다. 종일토록 누웠다 앉았다 뒤척였다.” 그래서였을까. “새벽에 목수 10명을 거제로 보내 배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병신년(1596년) 2월 6일 일기다.

   
▲ 선소. 선소는 여수시 시전동 708 (선소마을길)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 속 굴강은 거북선을 건조하고 대피시키던 곳이다. ⓒ홍지원

선소는 먼 바다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별이 어려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다. 장군은 이곳 선소에서 거북선을 만들며 나라를 걱정했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 같은 인재’와 ‘나라를 바로잡을 만한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음에 걱정만 하지 않고, ‘목수 10명을 거제로 보내 배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수군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돼 주었다.

이것이 백년을 내다보는 교육이고, 이렇게 길러진 이들이 나라를 건진 ‘주춧돌 같은 인물’이 된 것이다. 아직도 선소에 가면, 굴강을 뒤로 하고 먼 바다로 나가 왜적을 무찌르던 ‘역사의 교사’ 이순신이 우리를 맞아 주신다.

여수충무고 학생동아리 이순신연구소 박인화, 홍지원, 송서연, 김윤식, 정승화, 서지희. 대표집필 홍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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