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헌 의원-주철현 시장, 공원 해제와 활용 방안 놓고 일촉즉발 설전

여수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인민재판’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특히 시의원의 질의에 ‘인민재판하는 것이냐’고 말한 시장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제177회 여수시의회 정례회에서 강재헌 의원과 주철현 여수시장이 화장동의 ‘황새등골공원’ 관련 시정 질의·답변 과정에서 강 의원의 계속된 질의에 주 시장이 “시비 거는 겁니까”, “인민재판하는 겁니까”라고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드러낸 것.

이 발언에 대해 의회 안팎에서는 부적절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인민재판’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말한다. 주로 반공주의자, 자본주의자, 반동주의자에 대한 처벌, 그리고 헌법이나 법률, 공산당 강령을 위반한 범법자에 대한 처벌이었다. 법관이 아니라 대중이 검사, 배심이 돼 심리·처결하는데 공포정치의 대표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민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할 때 극우 보수 세력이 언론과 헌재 등을 겨냥해 자주 썼던 말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인민재판으로 남한의 지주, 종교인, 군경 가족 등 12만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수는 1948년 10월 19일 14연대의 좌익 계열의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여수·순천사건(여순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여순사건은 8일 만에 진압됐지만 반란군의 총격과 공개 처형, 교전 등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진압군의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등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70년이 지났지만 지역에는 여전히 가해자와 피해자 간 상처의 골이 깊고 지역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는 등 여순사건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 대의 기관인 의회 공개 석상에서, 더욱이 생중계로 시정 질의·답변 과정이 방영돼 시민이 보고 있는데 시의원의 질의를 ‘인민재판과 시비 거는 것’으로 대응한 시장의 발언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 여수시의회 강재헌 의원과 주철현 여수시장이 지난 15일 제177회 여수시의회 정례회 본회의장에서 고성을 주고 받으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강 의원 “탁상·불통행정” vs 주 시장 “법령·절차대로” 격론
시의원들 “멘붕이었다. 부적절했다. 의회 경시한 발언이었다”

강재헌 의원과 주철현 시장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고성을 주고받으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강 의원은 주 시장을 상대로 화장동 ‘황새등골 공원(이하 공원)’에 대한 시정 질문을 했다. 강 의원은 “지난 회기 5분 발언 이후 같은 사안으로 시정 질문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전혀 검토되지 않아 또 하게 됐다”며 “여수시가 공원을 용도 폐지해 주차장으로 조성하려는 것은 시민을 위한 행정이 아닌 탁상행정”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강 의원은 앞서 지난 5월 15일 제176회 임시회 개회식 5분 발언에서 “여수시가 정옥기 의원이 지난 4월 열린 제175회 정례회 시정 질문을 통해 ‘주차장이 아닌 공원으로 원상회복해 달라’고 한 요구를 무시한데다 지역구 의원인 자신과 상의도 없이 주차장으로 용도 전환하는 것을 일체 받아들일 수 없어 심히 유감”이라고 했다.

강 의원은 그러면서 “이것이 소통행정 맞느냐, 머잖아 불통행정이 우려 된다. 그러려면 도시계획을 왜 하느냐”고 주 시장을 몰아세웠다.

답변에 나선 주철현 시장은 “1977년 어린이 공원으로 지정된 황새등골공원(1476.5㎡)은 장기간 공원으로 조성되지 않아 시 양묘장으로 사용 됐으며, 주변에 대규모 선사유적공원과 성산공원이 잘 조성돼 있기 때문에 소공원으로 존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공원 해제 했다”고 답변했다.

주 시장은 이와 함께 “공원 해제 시 주민 의견을 청취 했으며 지난해 11월 8일 도시 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2월 1일 공원 해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보충질의에서 “지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고 일부 의견 수렴과정도 잘못됐다”며 “공원을 시 마음대로 용도 폐기 했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또 “최근 주변 주민들 의견 취합 결과 585명이 공원으로 조성되길 바라고 있었다”며 서명부를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주 시장은 이에 대해 “법령과 절차에 따라 진행했는데 마치 잘못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열악한 지역에 우선 투자하는 것이 시 전체를 바라보는 시장과 공무원의 역할이다”며 “공원이 많은 여천지역에 또 공원을 또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민 전체에게 여론조사로 의견을 물어 보겠다”고 말했다.

시민 전체 여론 조사에 대해 강 의원은 “지역 공원은 그 지역 주민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돌산 진모지구나 해상케이블카 등도 문제가 없는지 여론조사를 해 보자”고 맞받아쳤다.

이 과정에서 주 시장은 “만약 강 의원 말대로 종합복지관 부지로 정했으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주 시장은 그러면서 “타당하지 않다고 한마디 하면 됐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시비 거는 겁니까. 인민재판하는 겁니까”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를 보다 못한 박정채 의장을 대리한 이선효 부의장이 의장석에 일어나 “그만 하시죠”, “마무리 해 달라”며 양측을 만류했으나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채 한동안 설전이 계속됐다.

▲ 여수시 화장동 황새등골공원.

강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시장이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러면 대화가 안 된다. 과정에서 오해 등이 있을 수 있는데 곡해하거나 해석을 잘못하면 안 된다”며 “조금이라도 사리사욕 있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의원직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주 시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수렴하겠다”면서도 “(같은 주제를)3번이나 공개리에 말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선효 부의장은 “지역구 사업에 대해서는 주민설명회나 시의원하고 상의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시의원은 “시의원은 여수시 행정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라는 지역 주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라고 할 수 있는데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적절하지 않았으며 볼썽사나웠다”고 비판했다. B시의원은 “그야말로 멘붕(멘탈붕괴 :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뜻의 속어)이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해서 의회에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이는 의회를 경시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주 시장과 강 의원의 이날 고성 섞인 설전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으며, 시의원들과 여수시 간부들, 여수시민협에서 나온 의정지기단, 방청객 등이 지켜봤다. 여수시민협 박성주 사무처장은 “생중계로 시민이 보는데 공개 석상에서 시의원의 질의를 시비로 받아들이고 인민재판이라고 한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주 시장은 지난해에도 의회 경시성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송하진 의원이 지난해 9월 제171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웅천 한화 꿈에그린 아파트가 애초 7층 제한에서 29층으로 도시관리계획이 변경된 과정과 분양가에 지반 공사비를 포함한 경위 등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답변에서 “국회가 아닌 지방의회 자리에서는 면책 특권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 있다. 시민단체는 “(주 시장의 발언은)시민의 뜻에 따라 뽑힌 시의원직을 존중하지 못하고 민의 대변을 위한 시의원들의 소신 발언을 강압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박정채 의장 폐회사서 “서로 존중하며 발언 신중해 달라”

박 의장은 지난 19일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177회 정례회 폐회사를 통해 “본회의장에서의 발언은 방청인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시청을 하고 있으니 의원이나 집행부가 서로를 존중해 주면서 발언에 신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장은 “여수시가 주요한 정책이나 사업을 결정하기 전에 의회와도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 후 추진해 줄 것을 수차례 요구해 왔다”며 여수시의 분발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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