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으며 충무공을 찾아 나서다 13

“분한 마음 억누를 데가 없었다. 저녁에 마음이 매우 산란했다. 혼자 빈 활터 정자에 앉아 있으니 마음을 걷잡을 길 없고 걱정이 더욱 심해져서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만약 정승 유성룡이 돌아가셨다면 나랏일을 어찌 할까! 어찌 할까!”

갑오년(1594년) 7월 12일 일기이다. 유성룡에 대한 걱정이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 북봉연대 북봉연대(여수시 충무로 100-16)는 전라좌수영성의 북쪽, 현재는 종고산의 정상에 있는 봉화대 터이다. 봉화대는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있다. 장군께서는 이곳에서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리셨다. ⓒ정승화

당시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은 영의정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어 여수에 부임하게 된다. 오늘날로 치면 위관급 장교가 바로 장성으로 발탁되는 파격 인사였다. 당연히 반발이 따를 수밖에. …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을 알아보는 ‘유성룡의 안목’이 없었다면 암울했던 전황을 역전시키는 데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바야흐로 인사철이다. 장관 등 정부 요직을 인선하기 위해 날마다 시끄럽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장수로는 이순신과 권율이 있었고, 정치인으로는 유성룡과 이덕형이 있었다. 2017년을 전후하여, 우리에게 장수로는 누가 있고, 정치인으로는 누가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도 ‘이순신’이 필요하고, ‘유성룡의 안목’ 또한 절실하다.

여수충무고 학생동아리 이순신연구소 박인화, 홍지원, 송서연, 김윤식, 정승화, 서지희. 대표집필 정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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