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장이 망했는데, 서시장마저 망하게 할 수 없어요.

“옛날에는 여그가 여수에서 제일 큰 시장이었어. 지금은 서시장이 잘 나가지만, 그때는 별로였어. 그땐 좋았지. 사람이 막 버글버글 했었는디, 부모들 손잡고 오다 애들 잃어 울고불고 그랬어. 나 여기서 50년 다 되도록 장사했는디, 지금은 요로코로 자고 앉았어. 사람이 와야 장사를 하지. …새로 건물 지은 지가 한 4년 됐는디, 장사가 안 되니까 다 나가 버려갖고, 우리도 인자 이 달 말까지 비 줘야 해. 여기다 행복아파트를 짓는다나.”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시장인 동시장에서 만난 나이 드신 상인의 푸념이에요.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세워진 동시장(여수시 관문동 251-4)은 한때 여수의 중심 상권을 형성하기도 하였는데, 최근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지난 6월 85년 만에 영영 사라졌어요. 2013년도에 여수시에서는 사업비 2억6천만원을 들여 동시장 안에 있는 노후 장옥을 철거하고 바닥을 새로 포장하는 등 재래시장 환경정비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결국 문을 닫고 마네요.

▲ 동시장. 여수 동시장은 구도심 중심지인 관문동에 위치해 크게 번성했으나, 최근 구도심 쇠퇴로 상권이 위축되면서 결국 문을 닫았어요. 대낮인데도 시정에 손님은 없고 꼬리 내린 개만 있네요. Ⓒ 김태희

“동네시장 살리기 대책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입시가 눈앞에 있는데 작년부터 우리는 2년째 동네시장에 매달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근간인 농촌이 사라지면 도시가 사라지듯이, 대형마트에 채여 동네시장이 흔들리면 지역사회까지 흔들린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지요. 경기가 나빠지면 집안 분위기도 나빠지고 결국 친구들 주머니 사정도 나빠지는 걸, 눈으로 보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 전까지는 가지도 않던 시장에 가서 옷 사 입고 신발 사 신고, 주말이면 엄마를 졸라 마트 대신 시장을 가기도 했어요. 그러다 동네시장에 젊은이들이 찾아가는 근본적인 대책을 찾게 되었지요.

미로처럼 얽혀 있는 동네시장에 젊은이들의 접근성을 높이려면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동네시장사용설명서’를 만들고, 그 과정에 자유학기제에 있는 전국의 중학교 1학년들을 참여시키면서 동네시장을 매우 젊게 변화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게 되었어요. 광주광역시청이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시장 지도 안내는 물론 행정 업무도 처리한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 눈이 번쩍 뜨였거든요.

그래서 <중학생들이 만든 ‘동네시장사용설명서’ 전국 확대 방안>(기사 바로 가기)이라는 부제를 단 기사를 통해 교육부장관께 도움을 청하기도 했어요. 전국의 자유학기제 과정에 있는 중학교 1학년들이 동네시장사용설명서 작업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지역부터 한번 모범을 보이자면서 여수한영고등학교 컴퓨터 동아리 STEP(대표 김보성)과 손을 잡고 핸드폰 어플리케이션 ‘동네시장사용설명서-서시장 편’을 만들었어요. 두 달 동안 전력을 다 했지요.

그러고서 앱을 시청 홈페이지에 탑재하고 싶어서 <‘동네시장 앱’ 만든 고딩들 “여수시장님 좀 만나주세요”>라는 기사를 통해 시장과의 면담을 공개 요청하였어요. 실무자들에게 번번이 거절당했거든요.

▲ 시장님과의 대화. 주철현 여수시장님과 만났어요. 호방한 웃음으로 우리를 격려해 주시기는 하였지만…. Ⓒ 신수호

“만나는 주었으나 빈손이었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고요, 일단 여러분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앱을 개발했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시에서도 못 한 일인데, 여러분들이 단추를 연 거예요. ‘정말 이게 현실적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앱을 개발해서 활용해보니까 어째 구동은 잘 돼요?

-사실 저희가 앱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시청에서 완벽한 앱을 만들어 자유학기제 과정의 중학교 1학년들이 결합하여,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시장을 찾게 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주었으면 해요.
“앱을 작성하여 보급하고, 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라는 체험학습을 시장으로 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아마 학부모들이 반대할 것 같아요. (시장이) 안전하지 못 하다고 생각하고 비위생적인데 왜 거기 가서 음식 사먹냐고 분명히 이게 그런 사람들도 나올 거예요. …하지만 일단 보니까 앱이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학생들 자유학기제라든지 체험학습 코스로 이 앱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주철현 여수시장님은 “학생들이 만든 앱이 부족하다면 전문가들이 프로그램을 짜주고 내용은 여기서 채우게 하면 될 거 같다.”면서 담당 공무원들을 만나 보라고 하셨지요.

▲ 담당자들과의 대화. 담당 공무원들과 만났어요. 하지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얘기만 듣고 나왔지요. Ⓒ 박인화

자리를 옮겨 우리는 신지영 지역경제과장(현 중부민원출장소장), 김홍현 정보통신과 관제팀장님과 만났어요. 그런데 비전문가인 자기들보다는 “현장에서 앱을 개발하고 시청의 앱을 유지 보수해온 전문가에게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사장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과연 그분은 전문가이셨어요. “다른 시중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핵심을 짚었거든요. 특히 보안부분은 취약정도가 아니라, 시청 전산망을 사용하면 보안이 깨질 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꼭 자신들이 이걸 만들었는데 (시청이) 안 받아주었다고 뭐라 하지 말고.”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른들을 통해 준비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한 말씀도 덧붙이셨지요.

이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지영 지역경제과장님은 우리에게 “정보고등학교 선생님과 연락을 해서 교육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공부부터 하라고 하셨어요. 입시를 앞둔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제안이었지요. 물론 “수고했다.”는 등 다른 말씀도 많이 하셨고, 이런저런 여지도 보여 주셨지만,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부족하니까 도와 달라고 했지만, 부족하니까 어렵다는 거였어요.

▲ 상인회장님과의 대화. 시청을 다녀온 뒤 울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 서시장이었어요. Ⓒ 이현승

“동네시장을 살리는 방법이 없을까요?”

여수시청을 다녀온 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했어요. 그간 수고해 온 컴퓨터 동아리 STEP 친구들에게 한없이 미안했지요. 정말 울고 싶었어요. 교육부장관은 침묵으로 우리를 가르치더니 여수시장님은 전문가의 입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셨지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서시장이었어요. 이강순 회장님(여수 서시장 상인회장)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여수시청 담당자들이 고3인 우리더러 앱 개발 관리를 다 맡아야만 지원해 주겠다고 하셔서, 불가피하게 프로젝트를 큰 성과 없이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사실 지난 2년 동안 서시장 상인분들을 많이 성가시게 했거든요.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셨어요.

-동네시장 문제는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농촌의 고령화 문제와 닮았어요. 동네시장 활성화의 근본적인 방안은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생각이 잘못되었나요?
“아니야. 그것은 당연한 소리지. 우리 상인회에서도 다각적으로 노력을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우리 상인회에서도 젊은 층이 오기 위한 방법을 찾아봤는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재래시장을 보면 먹거리로 특화거리를 만든 것을 제외하고는 다 일회성으로 끝나더라고. 가까운 광주 대인시장도 음악가, 화가들이 오면 반짝 사람들이 밀려오고, 하지만 그뿐이었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대형마트가 들어오지 않아야 된다고 봐. 그러면 우리 재래시장에도 희망은 있다고. 우리 여수만 해도 대형마트가 3개가 들어와 지역경제의 한 축을 허물어뜨리고 있는데,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들어온다고 해서 얼마나 난리가 났어.”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지역경제에 발전이 된다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기사 쓸 일 있으면 이 말 꼭 써 줘.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여수경제에 주는 보탬이 하나도 없어. 저 사람들 당일 매출도 은행도 이용 안 해. 그 사람들은 현금 수송차로 본사로 바로 보내. 지역경제에 보탬이 없어요. 그렇다고 여수 입점할 때 여수시하고 전라남도하고 맺었던 상생부문에서 하나라도 지켰냐, 그것도 아니라 이거지.”

-그러면 여수시에서는 왜 저러고 있나요? 거리 현수막에서 지역경제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던데요?
“그게 우리나라 법의 맹점인데 자유민주주의에서 못 들어오게 강제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지. 시장들이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방법을 쓰든지 못 들어오게 하는 지자체들도 있는데, 여수는 그렇지 않더라고. 여수시가 여수시민들을 위해서 일한다면 어디서 접근을 해야겠는가, 첫째도 둘째도 대형마트 입점 반대야.

-그런데도 또 편리함에 취해서 찬성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에요.
“만약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시장 60퍼센트 정도가 폐업할 거야. 먹고살 길이 끊기면 이 사람들 여기 있겠어? 살길을 찾아서 뜨기 마련이야. 그런데 그런 걸 시민들은 전혀 생각 않고 시청 공무원들도 생각 안 해요. 공무원들이 2천명이 넘어도 90퍼센트는 대형마트를 쓴단 말이지. 시청에서 ‘한 달에 한 번 장보기 운동’ 하는데 립서비스일 뿐이야.

▲ 상인들의 눈물.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을 조이게 하더니, 드디어 ‘대형마트 입점불허’가 되었네요. 만세! Ⓒ 김윤식

이마트의 대형 창고형 할인점인 ‘이마트 트레이더스’ 입점이 백지화되었다네요. 여수시가 이마트의 웅천택지지구 내 대규모 판매시설인 창고형 할인매장에 대한 건축허가 민원을 불허했거든요. “지역민의 이익 보호를 위해 공익상 건축행위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하네요.

“잘 한 거야. 그러라고, 그런 결정 하라고, 뽑아 놓은 게 민선시장이지. 법대로 한다면서 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던 임명시장과는, 그래야 다른 거지. 법 핑계 대고 서민들 울리는 시장은, 시장도 아니야.”(서시장 상인)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상인 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요. 동시장이 문을 닫았는데, 서시장마저 문을 닫게 할 수는 없잖아요.

▲ 젊은기자들 경제팀. 서시장마저 대형마트라는 저 ‘큰 것’에 먹히고 나면, 여수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기사 작성 : 〈젊은기자들 경제팀〉 김윤식, 김태희, 박인화, 신수호, 이현승 기자

◆ 덧붙이는 글
내년에 우리는 대학생이 됩니다. 대학에 가서 동네시장 살리는 방법을 미친 듯이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많이 모자라서 ‘민폐’만 끼쳤지만,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동네시장이 젊어지지 않으면 동네시장에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거든요. 지난 6월, 85년이나 된 동시장이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고 많이 슬펐습니다. (경제팀장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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