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여수시민협 이사장

▲ 이현종 여수시민협 이사장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임원중에 늘 순박한 얼굴로 여수의 교통문제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차를 운전할 때는 차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걸어다닐 때는 걸어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비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자동차보다는 걸어다니는 사람을 우선에 두고 관찰하거나 제안을 하였다.

육교가 세워지면 보행자 사고가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 고민했고, 그곳에 장애인들을 위해서 무엇을 설치해야하는지를 고민했고, 건널목을 어떻게 설치해야 보행자가 더 안전한지를 고민했고, 신호등이 생기면 그 위치가 적합한지를 따져 물었다.

그는 달변가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위해서 가끔은 말을 더듬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성이 묻어나기 때문에 다들 가만히 들어준다. 그리고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가 무심히 보고 넘긴 것들인데 늘 걸어다니는 노인들,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예측하고 문제제기를 할 때는 가슴을 뛰게 한다.

엊그제 어느 일간지에 “지식인은 질문에 해답을 주는 사람이고, 지성인은 그 해답을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김병익, ‘지성과 반지성’ 재론, 2017.8.4. 한겨레신문)이라고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분해놓은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그는 바로 지성인이다.

그런 그가 작년 이맘때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가 머리띠를 두른 것을 처음 보았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청 앞 로터리에서 현수막을 걸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남해화학은 하청업체 노동자를 짓밟고 노예취급하고 단체협약이행하지 않은 유진기업을 방치하지 말라”라고 쓰여져 있었다.

내막인즉 남해화학이 비료의 원료공급과 포장을 협력업체를 두고 매년 수의계약 또는 입찰 등의 방식으로 맡겨왔다. 쉽게 말해 하청을 맡긴다. 그런데 2015년 8월말 하청업체가 코아시스템에서 유진PLS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속 노동자들은 포괄적 고용승계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회사가 유진기업으로 바뀌면서 노동조건이 사뭇 달라졌단다. 유진기업은 코아시스템과 같은 조건의 고용승계를 약속하는 단체협약서를 작성하고도 등급에 따른 급수조정, 연차료 등의 몇 가지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띠를 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차별까지 한다고 한다.

▲ 여수고용노동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여수산단 남해화학 비정규직 전남대책위원회.

그런 그가 올해 7월 무더위 속에 또 머리띠를 둘렀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동자는 주로 일근만 시킨단다. 그러다 이번에는 절반가량을 자택에서 대기토록 하였단다. 또 정상적인 협의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휴직 명령을 하루 전날에 통보했단다.

그런데 그들은 임금을 최저시급(남해화학 정규직의 30~40% 수준) 기준으로 받고 있어서 야근없이는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란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이라 원청사의 눈치가 보여 파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울컥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래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유진PLS의 대표가 남해화학의 노무팀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노무담당자의 역할이 무엇인가? 인터넷을 뒤적거려보니 “노무사는 근로자와 사업자(사용자) 간의 분쟁을 예방하고 조정해, 궁극적으로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 임금차별, 부당해고, 차별대우, 임금체불 같은 노동 사건을 대신 해결해주기도 하고, 사업주를 대신해 근로자와의 문제를 중재하는 역할도 합니다.”라고 나와 있다.

내 상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 차별, 부당해고 등을 대신 해결해주는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회사를 세워서 소속 노동자들을 더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는 꼴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전태일이 그래서 피울음 울며 분신하지 않았던가? 머릿속에 든 지식을 바르게 쓰면 정의의 펜이 되지만, 잘못 쓰면 불의의 칼날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유진PLS는 하청을 받으면서 타기업에 비해 10원 차이로 두 번이나 낙찰을 받았다니 회사에 근무했던 경력을 발판 삼아 원청과 꿍꿍이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아니 갈 수 있으랴? 이런 점들에 대해 남해화학도 답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둘째, 대기업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피를 짜서 잔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결산 보고서를 살펴보니 원청인 남해화학도 100억대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다른 중화학공업에 비해서 높은 편은 아니지만 농민들이 사용하는 비료를 주생산품목으로 하는 공기업이라는 사정을 고려하면 결코 낮은 액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잔치가 원청의 30~40%밖에 안되는 하청노동자들의 피를 짜서 얻어낸 흑자라고 생각하니 어찌 불쾌해지지 않겠는가? 이 또한 남해화학은 답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 적폐다. 이런 적폐를 보고만 있다면 원청사장도 시장도 국회의원도 여수고용노동지청장도 적폐의 동조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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