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 높이는 박물관 건립과 지역 문화유산 되찾기] ① 지역 정체성 정립과 지방 분권과 자치에 부합…문화유산 되찾기 중요성 인식 절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살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취향과 목적에 따라 휴양지도 있겠지만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일본 도쿄, 미국 뉴욕은 버킷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도시들이다. 이들 도시만이 선사하는 고유의 매력과 가치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의 경쟁력이 산업기반에서 관광과 문화 분야로 확대돼 이제 ‘문화예술 브랜드’가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전국의 각 도시마다 특색을 살린 다양한 문화 인프라 구축과 콘텐츠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관광만 보더라도 고유성과 차별성이 없는 시설 중심의 관광 도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하고 있다. 고유한 역사문화 자원을 갖춘 도시가 그 매력과 가치를 얼마나 다양하게 어필하느냐가 방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이자 지역에 대한 가치를 높여 주는 박물관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박물관은 지역민들이 공유하는 공간, 자긍심을 갖는 공간, 공간 안에서 지역민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동체 강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지방분권과 자치 강화와도 부합한다. 분권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 경제, 역사 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기존의 국가 중심, 중앙 중심의 역사에서 지역과 지역민이 주인공이 되는 역사로 전환되면서 각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성 연구에 대한 학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물관은 지역의 역사연구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수는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가야, 조선시대 등의 유적과 유물이 적지 않다. 여수시 남면 안도와 돌산 송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토기와 석기 유물은 여수 도서지역이 경남 해안 지역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문화 중심지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수는 자칭 전남 제1의 도시라고 하면서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수천점이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정체성과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현지에 있어야 더 큰 가치를 발한다. 본지는 그동안 번번이 좌절됐던 박물관 건립과 지역 문화유산 되찾기에 대해 지역사회가 재논의를 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판단하고 현 실태를 짚어보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청동기 시대 무기 ‘비파형동검’과 ‘간돌검’ (국립중앙박물관, 사진=박물관 포털사이트 e-뮤지엄)

지역 출토 유물 7000여점 타향살이

최근 국보 제121호 경북 안동 ‘하회탈·병산탈’이 53년 만에 귀향했고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불좌상을 원래 있던 경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이슈화되면서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택지개발과 돌산 조개더미(貝塚), 고인돌(支石墓) 발굴 등을 통해 여수 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 7000여점이 타 지역에 보관되고 있어 지역의 문화유산을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된다.

여수 지역에는 진남관·흥국사·석보 등 국가지정문화재 19개(보물12, 사적3, 국보1, 명승지1, 천연기념물1, 민속문화재1), 거문도뱃노래·고락산성 등 도지정문화재 16개(유형문화재6, 지방기념물5, 무형문화재3, 민속자료2), 향일암·손죽도 이대원 사당 등 문화재자료 11개, 마래 제2터널·사도추도마을 옛 담장 등 등록문화재 8개가 있다.

등록문화재로는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 △여수 구 청년회관 △여수 마래 제2터널 △여수 사도·추도마을 옛 담장 △여수 성산교회(구 여수 애양원교회) △여수 애양원 역사박물관(구 여수 애양병원) △여수 율촌역 △여수 장천교회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여수시 문수청사 수장고와 여수민속전시관에는 향토민속자료 등 2300여점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여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7000여점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18일 여수시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파형동검 등 4점, 국립광주박물관에 돌도끼 등 6744점, 전남대 박물관에 돌칼 등 422점, 순천대박물관에 철환 등 51점,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승자총통 등 61점, 목포대박물관에 돌도끼 등 11점으로 총 7293점이다.

▲ 여수시 남면 안도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의 발굴 현장 모습 (사진=디지털여수문화대전)

남면 안도, 돌산 송도 조개더미

여수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안도의 유적과 함께 돌산 송도유적을 중심으로 40여 곳이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유적의 최대 집중분포지역이자 신석기 문화 연구의 최대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다.

여수시 남면 안도 조개더미에서는 신석기시대 무덤 4기, 주거지 2기 등 다수의 생활 흔적과 500여점의 덧무늬토기를 비롯한 토기류와 흑요석제 작살 등 다량의 석기류들이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흑요석은 화산지대에서 주로 출토되는 희귀한 돌로 일본에서 해상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돼 당시 문화교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 광주박물관이 발굴해 보관중이다.

이음낚시바늘, 석시(石匙), 조가비팔찌 등의 유물은 일본의 대마도와 큐슈 일대에서도 발굴되고 있어 신석기 시대에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고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이곳에서는 조가비팔찌가 다수 발굴됐는데 조가비팔찌를 착용한 인골은 경남 통영 상노대도 산등(山登) 조개더미에서 보고된 바 있다. 특히 팔목에 5개의 조가비팔찌를 착용한 사례는 국내 최초이다. 신석기시대 팔찌의 착용은 성인식 문화와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같은 풍습은 일본의 큐슈 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큐슈 지역의 경우는 10개 이상의 팔찌를 패용한 인골이 합장된 예가 다수 보고되고 있으며 이들이 착용한 팔찌는 대부분 투박조개를 갈아 만들었다. 3호 인골이 착용한 팔찌도 투박조개인 것으로 밝혀졌다.

▲ 여수시 남면 안도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토기 (국립광주박물관, 사진=디지털여수문화대전)

발굴된 합장묘는 팔짱을 끼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장제(葬制) 문화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안도에서 발굴된 옥으로 만든 둥근귀고리는 현재 국내에서 9점만 확인될 정도로 희소성이 크다. 이를 착용한 주인공은 당시 집단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귀고리는 중국 요령지방의 홍산문화층에서 주로 발견 되는 유물로 일찍이 6000~7000년 전부터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 교류를 했음을 보여준다.

여수시 돌산읍 송도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굴된 덧무늬토기 등은 6000년 전의 유물이다. 송도 유적지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터도 발굴돼 순천시 주암고인돌공원에 복원돼 있다.

청동기시대 무기 비파형동검, 한나라 화폐 오수전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비파형동검은 고조선 청동기시대 무기로 국보급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악기인 비파를 닮아 ‘비파형동검’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중국 동북 지방에서 주로 출토되는 까닭에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라고도 한다.

2010년 여수시 월내동 여수산단 확장부지 내에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 중 최대 크기인 길이 43.4㎝짜리 동검이 발굴됐다.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길이 35.7㎝짜리 동검도 함께 발굴됐다. 변방인 한반도 최남단에서 가장 큰 비파형 동검이 나온 것은 당시 이 일대에 왕을 능가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남한 청동기문화의 중심지인 여수반도 일대에서 그동안 출토된 비파형동검만 16점에 달한다. 특히 여수시 적량동 고인돌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비파형동검이 가장 많이 출토된 곳이다. 모두 7점이 출토됐으며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여수 거문도에서 발굴된 한나라 화폐 오수전 (사진=디지털여수문화대전)

1977년 여수시 거문도에서 출토된 중국 한(漢)나라 화폐 오수전은 중국의 한나라 문화가 우리나라의 남쪽까지 미친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오수전은 출현시기가 명확해 우리나라의 청동기 후기의 중요한 유물로서 이 시기 연대 결정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오수전은 그 주변에서 오래된 목선(木船)과 부재(部材)로 보이는 나무 조각들과 함께 수습된 것으로 보아 난파선(難破船)에 적재된 화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문도 출토 오수전의 발행 연대는 2000여 년 전이다.

처음에 광주시립박물관에 신고된 것은 모두 980점이었으나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336점만 보관하고 있어 나머지는 유출되거나 분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수전은 대부분 녹이 슬고 부식으로 손상된 것들이 많지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상당수에 이른다. 해로(海路)를 통한 중국문화 또는 대륙문화의 유입을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금속화폐는 철기문화의 유입과 궤를 같이 한다. 오수전의 출토지역은 대부분 중국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북부지방에 집중되며 한반도 중부 이남은 10여 곳에서 1009점이 발견됐는데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의 오수전 11점과 여수의 980점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소량으로 1~3점에 불과하다.

금속화폐는 상품거래 수단의 교역 매개물, 위세품, 분묘 부장품, 의례용 등 여러 기능과 용도로 사용됐으나 출토량도 소량이고 또 당시가 화폐경제 사회가 아니어서 화폐로서 유통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위세품으로 역할이 컸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여수에서 980점이 발견된 것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초기 단계이긴 하지마는 화폐를 사용해 당시 중국과 활발한 교역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수지방이 고대의 중요한 무역로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 백제 시대의 유물 ‘목이 긴 항아리’ (국립광주박물관, 사진=박물관 포털사이트 e-뮤지엄)

백제·가야 유물, 학계 주목

여수지역의 토기는 다양한 형태로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삼국시대의 토기는 여수지역의 정치 세력과 경제권, 문화권을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는데 그 대상이 마한, 백제, 아라가야, 소가야, 대가야, 심지어는 일본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백제 후기의 산성인 고락산성에서는 다양한 토기와 함께 기와가 많이 발견된다.

지난 2008년 죽림택지지구개발 당시 발굴된 가야계 유물은 여수가 백제 이전 가야의 땅이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조선 침략의 근거로 삼았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허구성을 확인해 줄 유물들이 여수를 중심으로 발굴되고 있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의 남부 지역인 가야 지방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근 200년간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 여수 죽림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가야계 석곽묘.

여수시 화장동 유적은 지난 1995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면서 알려졌다. 이후 1996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뤄져 비파형동검은 물론 가야계 토기 등이 발굴됐다. 돌산 죽포리 지역에서도 소가야계 묘제와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여수 미평동과 고락산성에서는 대가야계 유물이 확인된다. 특히 미평동 토기의 경우 백제토기와 대가야계 토기의 융합현상도 보여 역사적 연속성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밖에도 국가사적 제523호 여수석보(麗水 石堡)에서는 3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청자편, 백자편 등 600여점의 유물이 출토돼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웅천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는 청동기 및 삼국시대 돌도끼, 화살촉, 토기류 등 77점의 유물이 발굴돼 역시 국립광주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조선시대 임란 당시 유물인 승자총통(勝字銃筒)은 국립광주박물관과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도움=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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