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공영주차장 조성 때문에 30년 일군 삶터를 잃게 생겼다.

수산시장 주변 주차장 조성 사업은 사전에 주민 의견 수렴이나 절차도 없이 관료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결정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후진적인 행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익을 위한답시고 소수의 희생이 강요당하고 있다.

▲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부지 인근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가 지난해 1월 15일 여수수산시장 화재로 인한 수산시장과 교동시장 등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이 주민 반발과 보상 협의 등에 난항을 겪으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시는 남산동 1165번지 일원에 부지 3196㎡, 건물면적 2500㎡(지상 3층), 주차면수 100면 규모로 총사업비 50억 원(보상비 25억·공사비 25억, 행자부 특별교부세 15억·전남도 특별교부금 6억·시비 29억)을 들여 공영주차장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편입 토지는 국유지와 시유지, 사유지 포함해 총40필지이며 건물은 15동이다.

시는 지난해 7월까지 토지 보상 및 매입을 완료하고 10월 실시설계, 올 1월 공사에 착공해 연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초 37억 원이던 주차장 신축 예산은 보상비 추가로 총사업비가 50억 원으로 늘었고, 이달까지 완료할 계획이었던 공사는 보상 진행이 20~30% 수준에 머무는 등 지연되고 있다. 시는 현재 토지·건물 소유주들과 2차 보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 주차장 조성 결정은 지난해 1월 20일 당시 행정자치부 차관이 여수수산시장 화재 피해 현장을 찾아 피해상인 지원과 인근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공영주차장 건립에 긍정적 검토를 약속한 데 따른 것이었다. 수산시장과 인근 교동시장에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 찾지만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수산시장과 교동시장 상인들은 수년 전부터 시에 주차장 건립을 건의해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난해 3월 주민설명회에서 주차장 편입 토지·건물 소유주들에게 주차장 조성 사실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 부지를 결정한데다, 조망권과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강력 반발했다. 주민들은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 행정이라며 주차장 조성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여수시는 국비 확보를 위해 급하게 사업부지가 결정되다보니 미처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이 후 1년이 흘렀지만 주차장 신축 사업은 별 진척이 없는 상태이며, 주차장 부지에 자신의 집과 땅이 편입되는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남산동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송태기·황강덕 부부. 송태기씨는 “부부가 쎄빠지게 벌어서 어렵사리 집 짓고 자식 셋 시집·장가 보냈는데 어이없게 삶터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힘도, 백도 없는 서민은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이냐.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억울한데 앞으로 어찌 살란 말이냐”

“부부가 쎄빠지게 벌어서 어렵사리 집 짓고 자식 셋 시집·장가 보냈는데 어이없게 삶터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힘도, 백도 없는 서민은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이냐. 너무 억울하다.”

여수시 남산동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송태기(68)·황강덕(65) 부부는 30년을 일궈 놓은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살던 집(건물 128m² 약38평, 1층 방앗간·2층 가정집)이 주차장 부지에 편입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송태기씨는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잖느냐. 주인한테 의견도 묻지 않고 시가 결정했으니 나가라는 것부터가 불합리하다. 여수시가 느닷없이 주차장 건립한다고 해서 억지로 쫓겨날 판인데, 영업을 할 수 있는 대체 장소를 마련해 주든지 아니면 폐업보상을 해달라고 정상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는 폐업보상 관련 규정이 없어 안 된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씨는 이어 “주인 동의도 없이 집이 주차장 부지에 편입됐다는 말에 처음에는 너무 기가 막혔지만 공익을 위한 일이니만큼 시에 최대한 협조하려고 했다”며 “이곳을 떠나면 30년 간 쌓아온 단골과 상권을 잃는 것으로 한마디로 삶터를 잃는 것인데, 폐업 보상도 안 된다고 하면 길거리에 나앉으라는 것 밖에 더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장에서 먼 곳으로 이전하면 수십 년간 거래하던 단골들이 오겠느냐. 그래서 장사를 못할 바에야 폐업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방앗간 인근에는 크고 작은 김치 가게와 식당, 전통시장이 있어 단골 거래처가 많다.

▲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부지에 편입되는 방앗간 건물. (사진=마재일 기자)

송씨는 “눈물을 머금고 방앗간 이주 장소를 찾고 찾았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다. 이만한 공간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부부는 발바닥이 닳도록 현 방앗간과 비슷한 규모의 장소를 구하러 다녔지만 실패했다. 인접한 전통시장에 공간이 있다해도 겨우 7~8평 정도로 턱없이 좁았다. 특히 주택가 주변은 언감생심이었다. 주민들이 참기름, 들기름, 검은콩, 멸치 등을 짜거나 빻을 때 나는 냄새와 소음, 미세먼지 등으로 방앗간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건강에 민감한 요즘 방앗간에서 식품을 고온으로 조리할 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이 불연소하면서 생기는 발암물질 발생 우려도 입주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는 “방앗간에서 배출하는 연기가 미세먼지 농도 수치를 높인다며 다들 꺼려한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그나마 이해를 해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송씨는 “현재 보상비로는 외상값 정리하고 부부가 살 작은 집하나 마련하면 손에 남는 것이 없다. 방앗간에 있는 기계 값만 8000여만 원이 넘는다. 영업을 못하면 고물 취급 받아 헐값에 넘겨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장사도 못하는데 결국 건물만 없어져 버리는 것 아니냐.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장애를 가지고도 주변 도움 없이 70평생을 아내와 열심히 방앗간을 운영해 자식 셋을 키워 시집·장가를 보냈다”면서 “앞으로도 자식들에게 부담 안 되는 부모가 되도록 힘닿을 때까지 노력해 살 것이다”고 말했다. 6년 전에 지은 현재 건물은 부부가 눈물과 땀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부부는 요즘 막막한 앞날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부인 황강덕씨는 “주차장을 만들려면 사전에 주민들과 협의해 동의를 얻은 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미 결정해놓고 나가라고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영업 이익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원주민은 정든 집과 가게를 버리고 떠나라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토로했다.
 

▲ 남산동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송태기·황강덕 부부. 부인 황강덕씨는 “주차장을 만들려면 사전에 주민들과 협의해 동의를 얻은 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미 결정해놓고 나가라고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영업 이익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원주민은 정든 집과 가게를 버리고 떠나라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토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 남산동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송태기·황강덕 부부. 부인 황강덕씨는 “주차장을 만들려면 사전에 주민들과 협의해 동의를 얻은 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미 결정해놓고 나가라고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영업 이익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원주민은 정든 집과 가게를 버리고 떠나라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토로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는 방앗간 부부의 대체 부지와 폐업 보상 요구에 대해 “인근에 적합한 토지가 없어 이주정착금을 포함해 보상비를 산정했으며 폐업 보상은 검토했으나 규정에 해당하지 않아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3차 보상 협의도 실패할 경우 수용재결 된다”고 덧붙였다.

시가 내세운 현행법의 폐업보상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6조에 따라 도축장 등 악취 등이 심해 혐오감을 주는 영업시설 등만 해당한다. 시는 토지와 건물, 지장물, 주거이전비, 이주정착금, 이사비, 영업보상(휴업 4개월)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부부는 현행법이 비현실적이며 사실상 강제로 쫓겨나는 명백한 폐업에 대해서는 폐업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이주대책으로 택지조성 가능 지역이나 행복주택에 입주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부부는 여수시 시민옴부즈만에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기각 통보를 받았다. 시민옴부즈만은 행정기관 등의 위법한 처분이나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피해를 본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민원조사관이다. 시민옴부즈만은 송씨 부부의 대체부지 마련 또는 폐업보상 요구에 대해 여수시가 현금보상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전국적으로 방앗간 폐업보상 사례가 없다며 기각했다. 송씨는 “옴부즈만에 기대를 걸었지만 여수시하고 똑같은 답변을 해와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에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으로 내쫓기듯 이전해야 하는 주민을 위한 현실적인 보상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십 년을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을 느닷없이 수용을 당해 쫓겨나듯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주민들의 처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부지 위치. (사진=마재일 기자)
   
▲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부지. (사진=마재일 기자)

“시장 상인들 때문에 왜 우리가 희생을 해야 하나”

일부 주민들은 상생을 언급하며 동네 인근 시장 상인들에 대해 불만과 서운함을 나타냈다. 한 주민은 “사실 시장 상인들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나가는 것 아니잖느냐. 장애 가진 사람은 내쫓기고 성한 사람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이 이 동네에 주차해 놓은 차량들 때문에 수십 년간 피해만 보고 살았다. 더욱이 자기들 때문에 정든 곳을 떠나는 것인데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 사람이 죽으면 위로하면서 슬픔을 나누고 조의금을 내거나 자식이 결혼하면 축의금을 주며 축하해 주지 않나. 국민들이 수산시장 상인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성금을 냈겠나. 같은 국민이니까 안타까워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이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주민은 “주민들이 막무가내로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여수시도 법에 근거해 주민들이 최대한 보상을 많이 받게끔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방앗간 부부의 경우는 순전히 자기들 힘으로 돈 벌어서 건물 짓고 자식 셋 시집장가 보낼 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 느닷없이 나가라고 하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한 주민은 “시장 상인들은 성금으로 피해시설을 복구하고 여기에 주차장까지 생기면 영업에 많은 이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쫓겨나거나 불편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은 뭐냐”고 말했다.

▲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부지 인근 도로. 평소 주차난을 겪는 곳이다. (사진=마재일 기자)

공익 위해 소수의 일방적인 희생 안돼
결국 갈등 푸는 실마리는 소통과 상생

과거 수십 년간 빠른 속도로 압축적 경제성장, 압축적 근대화를 이뤄온 우리나라는 여유 없이 달려오다 보니 법제도 정비가 늦어지면서 현실과의 괴리와 정책 역량의 부족으로 불필요한 공공적 갈등이 유발되는 사례가 많았다.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기제와 경험이 없어 불신이 확대되고 종종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도로, 공공주택, 주차장 등의 공익사업 진행 과정에서 다수를 위해 필요한 거니까 당연히 소수가 희생해야지 하면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다보니 갈등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보상 등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님비’(NIMBY)로 몰아가며 해당 주민을 고립을 시키는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꼭 필요한 공공시설이지만 자기 동네에 들어오는 것은 싫어하는 현상을 ‘님비’라고 한다. 공익보단 소수 집단의 이익을 앞세울 때 집단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에는 화장장이나 하수처리장, 쓰레기 소각장처럼 유해성 시비를 낳는 시설이 님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요양원 등 복지시설, 공공시설 등도 님비의 대상이 되는 추세다.

그러나 단순히 보상을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시민의 주거권과 생존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져 갈등이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공익사업이 다수를 위해선 좋겠지만 특정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당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공익에 맞서는 개인과 집단을 무조건 이기주의로 몰아서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피해를 주민 입장에서는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권위주의 체제가 시민을 억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과거시대와는 작별이 필요하며, 개인과 집단이 당연히 누려할 ‘권리’가 ‘님비’로 치부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공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되며 님비로 몰아 고립시켜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산시장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은 사전에 주민 의견 수렴이나 절차도 없이 관료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결정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후진적인 행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익을 위한답시고 소수의 희생이 강요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절차법 선진화 등 갈등 해결 방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시민의 권리 의식이 그만큼 향상됐기 때문에 법제도도 시민 수준에 맞춰 따라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님비’나 ‘갈등’이 발생 전에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데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해결 실마리는 소통과 상생의 협력에서 찾을 수 있다. 여수시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