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여수시장 후보들의 정책·공약에서 도시 비전에 대한 고민과 철학, 통찰이 보이지 않는다.

▲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당시 박람회장 야경 모습. (사진=손정권)

시장 후보들이 내놓아야 할 것은 도시 미래를 위한 큰 그림

지방선거는 후보 선택을 통해 시민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중요한 행사이다. 여수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적임자를 찾아야 하지만 이번 6월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감이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 앞으로 4년간 여수시민의 삶을 좌우할 시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임에도 시민의 관심도 저조한 편이다. 시민의 선거 무관심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후보들에게 있다.

특히 4년간 여수시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시장 후보들이 시민의 관심을 모을 이슈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 후보들이 각종 정책 공약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개별적·단편적 공약만으로 주목을 받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 발행인 마재일

지금까지 나온 시장 후보들의 정책·공약을 통해 대강의 방향성을 읽을 수는 있지만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줄 뿐 ‘도시 여수’에 대한 도시 계획적 공간 활용이나 비전에 대한 고민과 철학, 통찰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10년 혹은 20년, 50년, 100년 후를 담보할 여수의 도시 비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시민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는데 후보들의 정책·공약은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물론 아직 예열 단계임을 감안할 때 시정과 관련한 구상과 대안이 다소 설익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준비된 후보라면 이제부터라도 진짜 자기 실력을 증명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기 고유의 정책 ‘블루 오션’을 개척해야 시민들 표심을 자극할 수 있고 나아가 그에 기반해 주도권을 선점하는 게 선거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여수시장 후보들이 내놓아야 할 것은 여수시민의 삶을 바꾸고 여수의 지속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이다. 더 이상 ‘해양관광도시’나 ‘남해안 중심도시’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여수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철학과 여수의 미래상,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정책 수단을 제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를 두고 후보 간에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민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 높일 수 있다. 장밋빛 개발 계획이나 새로울 것 없는 선심성 복지 공약, 백화점 나열식 공약으로 시민을 현혹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시민 역시 지방선거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여수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리더는 누구인지, 지역발전과 시민 행복이라는 공의에 누가 가장 부합하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에 관심을 갖고 그 장단점을 제대로 평가하는 동시에 시민에게 필요한 공약을 후보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수의 미래를 한 걸음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지방선거가 되기 위해선 후보와 시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 여수시장 더불어민주당 권세도 후보(기호1), 자유한국당 심정우 후보(기호2), 무소속 권오봉 후보(기호6).

‘리더십의 부재’ 새로운 패러다임 가진 인물 필요

여수는 수년째 관광객이 1300만 명이 넘게 찾는 도시가 됐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 못지않게 커진 부작용으로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여수밤바다로 생겨난 낭만도시 타이틀 뒤에 숨은 그림자를 걷어내지 않으면 구호만 요란하고 내실 없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수MBC와 순천K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가장 시급한 현안은 관광객 증가에 따른 주민 불편이었다. 차기 시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또, 외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자식들 못지않게 대학 진학하는 자식들이 무작정 여수를 벗어나려는 데서 지역 대학의 위기를 실감한다. 여수보다 도시 규모가 작은 순천, 목포에 비해 부족한 대학수도 그렇거니와 지역 대학이 경쟁력이 있다면 떠나겠는가.

무엇보다 아파트는 늘어나는데 줄어드는 인구가 여수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여수시 인구는 1998년 3여 통합 당시 33만213명에서 2017년 말 28만6382명으로 20년간 4만3831명이 줄었다. 지역 지도자들은 20년 후에 인구가 이렇게 줄어드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제야 인구 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변명 따위를 늘어놓아선 안 된다. 무책임의 극치다. 급기야 여수는 지난해 인구감소, 고령화, 빈집증가, 공동체 붕괴 등의 현상을 겪고 있는 도시를 규정하는 ‘축소도시’로 분류되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리더십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싶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리더가 있지만 결국 여수시장에게 귀착될 수밖에 없다. 여수시장은 도시 정책의 설계부터 예산의 분배와 집행, 공무원 인사까지 생각보다 막강한 자리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대단한 중요한 자리다. 역대 시장들이 보낸 시간들을 거슬러 가보면 우리 도시에 필요한 더 바람직하고 더 절실한 시장의 자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낭만도시라는 화려함과 축소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시를 점점 더 양극화로 몰아가는 이즈음에 4년간, 길게는 12년 ‘여수호’를 잘 이끌 공약과 비전을 가진 시장 후보를 선출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전남 제1의 도시의 위상마저 잃을 위기에 처해 있는 여수의 위상을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대안과 청사진을 가진 시장 말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한 사람 바꾸니,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걸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 여수항 전경. (드론=심선오 영상부장)

‘여우와 같은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 겸비해야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 저서에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꼽았다. 열정은 지역에 대한 사명감, 뭔가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말한다. 시장이 지닌 내재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다. 여당 후보가 시장이 되면 중앙정부에 여수의 몫을 거침없이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무소속 후보가 시장이 되면 마찬가지로 당당히 여수의 플랜을 내놓고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겸비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한 지도자의 덕목 ‘여우와 같은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이 필요하다. 여수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장이 가져야 할 책임감이라고 해두자.

사회는 복잡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집단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시장은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는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신이 아닌 이상 시장이 종합행정의 그 모든 분야를 일일이 관장할 수는 없지만 책임은 져야 하는 게 그 자리이기 때문이다.
 

▲ 여수 웅천택지지구. (드론=심선오 영상부장)

시장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자리

여수시장은 임기 4년뿐만 아니라 8년, 12년, 20년, 50년 후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비전을 구체화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소속 정당이 같든 다르든, 시정 철학이 다소 다르더라도 후임자도 계속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안목과 역량이 필요하다. 비전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이런 비전이 여수시장에게 있어야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뛰어넘어 도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끌어낼 수가 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 흔적을 지우고 정책 단절로 갈등과 행정·예산을 낭비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돈 몇 푼 내어 놓는다고 도시계획을 마구 바꾸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여론에 영합해 인기 시책만 좇는 대신 옳은 일을 꿋꿋하게 밀어붙이는 신념과 소신은 시장으로서 품격을 보여주는 덕목이다. 여론을 마냥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사안을 구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비스트하려고 시장이 되려는 것은 아니잖나.

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 아름다운 도시들은 각자의 특성과 본연의 역사적 품위, 독특한 미적 감각을 갖고 있다. 이런 도시를 만드는 밑바탕은 시장이 지닌 조예(造詣)에서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예술이든, 교육이든, 경제든, 행정이든, 소통이든.

그래서 시장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시장은 주민들에게 행정서비스만 제공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판단력이 좋아야 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지식산업이 본류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업마인드가 접목된 글로벌 경쟁력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향도(造詣]) 역할을 해야 한다. 

▲ 여수 여서·문수 지구. (드론=심선오 영상부장)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사돈네 팔촌까지 학연·지연·혈연 인맥을 총 결집시켜 당선된 사람들이라서 변화와 혁신에 둔감한 면이 있다. 소통과 통섭을 잘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경우도 많다.

오로지 당선만 되고 보자며 취한 말과 행동이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다. 일례로 각 시장 후보 캠프마다 돕는 이들이 넘친다. 능력 있는 참모들이 미래 여수의 청사진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을 보면 솔직히 미덥지 않다. 일부선 당선 후 논공행상을 노린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시장 후보들은 당선되면 챙겨 주겠다는 ‘뒷감당’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측근들에게 ‘헌신’을 명확히 주문할 일이다. 시장이 된 후에 많은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인사 잡음과 친인척, 측근 비리에 발목이 잡히면 자신이 가진 비전과 역량을 제대로 펼치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시장이 펼치는 모든 행정 밑바탕에는 ‘여수적 가치’가 전제돼야 한다. 여수 정체성이자 여수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래서 시장은 여수의 역사적·공간적 가치를 알아야 한다. 여수의 골목과 동네, 여수 사람들의 과거의 아픔, 바다의 물결을 내 숨결처럼 느낄 때 시장은 비로소 자격을 갖춘다.

이제 10일 남짓 뒤엔 여수는 민선 7기 시장을 맞는다. 이번 선거는 후보에게도, 시민에게도 기회다. 여수는 우리가 자리 잡고 살아가야할 터전이다. 이 터전을 제대로 지킬 적임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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