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회복자 정착촌인 도성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간 축사 분뇨 악취와 석면 슬레이트, 주변 공장에서 뿜어내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심각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111년 만의 최악 폭염이 절정에 달한 지난 1일 오후 3시30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가축 분뇨 특유의 악취로 숨이 턱 막혀 왔다. 마을복지회관 복도까지 악취가 진동했으며, 집안까지 스며드는 악취로 숨 쉬는 그 자체가 고통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폭염에도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고 산다. 차라리 감옥에서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악취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날 정도였다.

여기에다 인근 국가산단에서 날아오는 매캐한 악취도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또한 마을 바로 옆에는 손양원목사기념관이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악취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온 마을을 뒤덮고 있는 악취에 주민들은 수십 년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마을의 모습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 가축이 사는 축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폐가와 무너진 축사가 여기저기 흉물로 방치돼 있었다. 일부 축사 지붕은 폭삭 주저앉았고 녹슨 사료저장용사일로는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흉물스럽게 노출돼 있었다. 축사 슬레이트 지붕은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롭고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으며, 텅 빈 축사 안에는 녹이 슨 축산 도구들과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폐축사 옆에는 건축·축산 자재가 마구 버려져 있었고 축사 창문을 막아놓은 낡은 가림막은 뜯겨 나가 바람에 나풀거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넝쿨이 뒤덮고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여수 한센인 정착촌 주민들, 수십 년간 악취·석면 피해 호소 ‘조사·대책 촉구’
정부·여수시 무관심 속 최근 첫 현장 점검…용역 실시 등 종합 대책 마련키로

집과 축사의 거리는 수 미터에 불과했으며, 집과 축사가 맞닿아 있거나 심지어 분뇨가 집 벽을 따라 흐르는 집도 있었다. 1976년 5월 첫 입주가 시작됐다는 도성마을의 축산업은 축사가 대부분 개방형인데다 분뇨의 자연건조, 분뇨처리시설로 유입되는 이동경로에 쌓인 분뇨로 인해 악취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민들은 마을과 불과 1.9km정도 떨어진 산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인한 악취와 축사 분뇨 악취가 섞여 날씨가 흐리거나 저녁~새벽이면 더 지독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축사 거의 대부분의 지붕이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라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축사를 머리에 이고 지내는 셈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참다못한 주민들은 최근 수십 년간 축사 분뇨 악취와 석면 슬레이트, 주변 공장에서 뿜어내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심각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국립환경과학원에 실태조사와 종합적인 환경오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여수시민이면서도 고생과 차별, 천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을 털어내기로 한 것이다. 일부 주민은 청와대 등에도 편지를 보내 이 마을이 처한 상황과 한센인 정착촌 주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호소했다.
 

▲마재일 기자가 주민이 거주하는 집 벽 옆에 고여 있는 축산 분뇨를 삽으로 젓고 있다. (사진=김민준)
▲도성마을 전경.(드론=심선오 기자)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위치.

주민들은 “하루 종일 나는 악취 때문에 문을 열어 놓고 살 수가 없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며 “수십 년을 참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주민들은 “폐축사 악취, 슬레이트 석면 먼지 피해, 대기오염이 심각한 실정이다”며 “한센병으로 고통과 고립으로 살아왔던 부모세대는 70-80대 고령으로 마을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지금은 오염된 환경과 마을이 폐허가 되다시피 해 한센인 2·3세대들이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수국가산단과 광양국가산단, 율촌산단 등 사방이 공장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지만 단 한 번도 마을의 대기환경을 조사한 적이 없다. 그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이를 책임질 정부와 여수시는 철저히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해 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들은 “이주시켜 주든지, 아니면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전남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7월 23일 여수시와 합동으로 도성마을을 방문해 환경오염 실태에 대한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정부기관에서 직접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은 한센인 회복자 정착촌이 생겨난 이래 처음이다.

▲도성마을의 폐축사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도성마을의 폐축사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보건환경연구원은 마을의 환경오염 실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국립환경과학원을 비롯해 전남도, 여수시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이동식 대기오염측정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환경과학원에 대기환경 조사를 의뢰해 오염원 추적에 나설 계획이다. 이어 전남도 등과 용역 착수를 협의해 전반적인 실태 파악과 후속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전남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환경과학원에 대기오염 측정을 의뢰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동안 왜 이렇게 방치되고 있었는지 의아했다”고 말했다.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도성마을은 1965년부터 1978년 2월까지 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도성래 선교사(미국명: Stanly C. Topple)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한센인들을 위해 만든 정착촌이다. 205명의 한센인 회복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 농장 형태의 농원을 만들었으며, 당시 정부는 축사 건축 비용 등을 지원했다.

도성마을의 축산농가는 한때 120여 곳에 이르렀지만 고령화, 축산물 수입 개방과 사료 값 인상에 따른 부도, 태풍 피해 등으로 축산을 포기해 현재 주민이 운영하는 축산농가는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축사를 매입해 축산업을 이어가거나 폐축사로 방치되고 있다. 여수시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돼지 18농가 7000두, 닭 2농가 3500두, 소 1농가 50두를 사육하고 있다.

도성마을에는 한센인 72명과 한센인 2·3·4세 등 주민 26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실제 거주자는 239명 정도다.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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