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된 낡은 석면 슬레이트 축사 수백 채
“암으로 사망·현재 암 치료 받는 주민 10명 넘어”
산단오염물질·석면 장기간노출…건강영향조사 시급
정부·여수시·지역 정치권 ‘무관심’ 비판 목소리

▲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이 세계보건기구 지정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드론=심선오 기자)

여수의 한 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간 축사 분뇨 악취와 주변 공장에서 뿜어내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심각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국립환경과학원에 실태조사와 종합적인 환경오염 대책 마련을 촉구한 가운데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낡은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마을 주민 264명 중 33명이 유아, 초중고생이어서 부모들과 주민들의 불안과 걱정이 크다. 석면 슬레이트는 석면이 10~15% 포함된 대표적인 석면 고함량 건축 자재로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로 불리며 시민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1일과 6일 찾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은 집과 축사 거리가 수 미터에 불과하고 심지어 노후 석면 슬레이트 지붕 축사들과 집이 맞닿아 있다. 또한 석면 슬레이트 축사 여러 채는 노인들이 거주하는 양로원과 주민들이 모이는 마을복지회관과도 근접한 위치에 있다. 마을 곳곳의 반쯤 폭삭 주저앉은 석면 슬레이트 축사는 넝쿨과 나뭇잎에 덮여 있거나 일부 지붕은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롭고 잡초가 무성한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었다. 빈집들은 온통 넝쿨로 우거져 폐축사와 함께 스산함을 더하고 있다.

▲ 도성마을의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 모습.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집과 맞닿아 있다.(사진=마재일 기자)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2003년과 2012년 태풍 매미와 볼라벤의 피해로 상당수의 축사가 파괴됐지만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고령화, 축산물 수입 개방과 사료 값 인상에 따른 부도, 태풍 피해 등으로 축산을 포기해 현재 주민이 운영하는 축산 농가는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축사를 매입해 축산업을 이어가거나 폐축사로 남아 있다. 일부는 지붕을 개량했지만 석면 슬레이트 위에 지붕을 덧씌운 경우도 적지 않다.

여수시가 2013년 실시한 석면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지번이 있는 도성마을의 슬레이트 건축물은 95곳으로 1928~2010년 사이에 건축됐다. 상당수의 축사가 19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슬레이트 면적은 4만6794.7㎡이며, 축사 소유주들은 모두 지붕개량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같은 지번에 2~3개, 무허가 축사까지 더하면 석면 슬레이트 지붕 건축물은 수백 채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도성마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은 대부분 내구 연한 20~30년을 크게 넘어선 상태여서 주민들은 자연적인 풍화와 침식으로 부식된 슬레이트 석면 가루에 자연스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지붕이 노후화하면 석면 가루가 빗물을 타고 땅바닥에 고여 있다 바람에 비산하면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도 크다. 석면 피해는 호흡기를 통해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축사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것으로 나타나 주민들이 70~80년 이상을 석면을 마시고 살았단 얘기도 가능하다.

   
▲ 도성마을의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의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사진=마재일 기자)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공기 중의 미세한 석면 섬유가 폐 속에 축적될 수 있다. 길게는 1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석면폐증, 폐암, 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한다. 몸속에 쌓이면 현재로선 별다른 치료법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위험하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이나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건축자재 등 생활주변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사용됐던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은 석면 건축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야 한다. 하지만 비용 등을 이유로 석면 가루의 비산을 막는 땜질수준의 처방이나 아니면 아예 방치를 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여수시는 매년 국·도·시비(국50%, 도10%, 시40%)로 노후 슬레이트 주택 처리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침을 통해 슬레이트 처리지원사업 대상을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우선으로 국비를 지원하고 있어 1960~1970년대 지어진 폐축사나 공장 등은 지원대상에서 배제돼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여수시는 사유 재산인 슬레이트 지붕 건물에 대해 직권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법적권한이 없고, 석면 슬레이트 철거 작업에 따른 막대한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당장의 조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비가 지원된다해도 축사 소유주들이 대부분 영세해 추가 비용 부담의 여력이 어려운 상태여서 정부나 여수시의 특단의 지원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주민들은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와 동거를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다.

   
▲ 도성마을 모습.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집과 맞닿아 있다.(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의 방치된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사진=마재일 기자)

하지만 도성마을의 경우 석면 슬레이트 건축물이 집단으로 형성돼 있고, 당초 국가 폭력과 차별에 의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한센인 회복자 정착촌이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시해야 할 정부도 그동안 나 몰라라 했다는 무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한센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채 완치돼도 사회에 돌아갈 수 없는 등 국가가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제도화해 인권을 유린했기 때문이다. 2008년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과 한센인 생활지원 특별법(한센인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일부 물질적인 보상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센인 2세, 3세, 4세들은 여전히 ‘사회적 연좌제’ 같은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축사 분뇨 악취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1급 발암물질인 노후 석면 슬레이트에 수십 년간 노출돼 시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데도 여수시와 지역 국회의원, 도·시의원 등 지역 정치권이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여수·광양국가산단과 율촌산단 등 사방이 공장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공업지역이지만 단 한 번도 대기환경을 조사한 적이 없을 정도로 도성마을 주민들은 무관심과 외면을 당해 왔다.

주민들은 그동안 상당수의 주민들이 암으로 사망했고, 현재 갑상선암·대장암 등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는 주민들만 10여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 같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오염 실태뿐만 아니라 주민의 건강영향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석면 슬레이트에 수십 년간 노출된 만큼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과거 이곳에서 살다가 이사를 간 주민들까지 추적해 철저한 조사와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권에 대한 치명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와 전라남도, 여수시가 도성마을 주민들의 건강영향조사를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 도성마을의 방치된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사진=마재일 기자)
   
▲도성마을의 빈집.(사진=마재일 기자) 

한편, 도성마을은 1965년부터 1978년 2월까지 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도성래 선교사(미국명: Stanly C. Topple)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한센인들을 위해 만든 정착촌이다. 205명의 한센인 회복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 농장 형태의 농원을 만들었으며, 당시 정부는 축사 건축 비용 등을 지원했다.

도성마을의 축산농가는 한때 120여 곳에 이르렀지만 고령화, 축산물 수입 개방과 사료 값 인상에 따른 부도, 태풍 피해 등으로 축산을 포기해 현재 주민이 운영하는 축산농가는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축사를 매입해 축산업을 이어가거나 폐축사로 방치되고 있다. 여수시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돼지 18농가 7000두, 닭 2농가 3500두, 소 1농가 50두를 사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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