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도성마을의 한 주민이 수십 년간 축사 분뇨 악취와 석면 슬레이트, 주변 공장의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비가 오면 분뇨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도 참고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에도 항의 한 번 못하고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 주민들이 있다. 태풍 피해로 축사 대부분이 파손돼 생계 위협을 받았지만 누구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은 마을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절망하는 주민들이 있다. 그러나 하찮고 냄새나고 더러운 마을이지만 삶의 터전이라서 살아간다는 주민들이 있다.

▲ 여수 도성마을의 한 주민이 수십 년간 축사 분뇨 악취와 석면 슬레이트, 주변 공장의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청와대에 청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은 1965년부터 1978년 2월까지 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도성래 선교사(미국명: Stanly C. Topple)가 한센인들을 위해 만든 정착촌이다. 205명의 한센인 회복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 농장 형태의 농원을 만들었으며, 당시 정부는 축사 건축 비용 등을 지원했다.

도성마을의 축산농가는 한때 120여 곳에 이르렀지만 고령화, 축산물 수입 개방과 사료 값 인상에 따른 부도, 태풍 피해 등으로 축산을 포기해 현재 주민이 운영하는 축산농가는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축사를 매입해 축산업을 이어가거나 폐축사로 방치되고 있다.

문제는 주민들이 수십 년간 분뇨 악취와 노후 석면 슬레이트, 주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역사회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국민이라면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에 실태조사와 환경오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마을의 한 주민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을 통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고 나섰다.

▲ 폐축사와 붙어 있는 집.(사진=마재일 기자)

청원글에는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겪은 애환과 고통이 깊게 묻어난다. 한센인 2세이기도 한 주민 A씨는 “우리가 사는 마을은 한센인회복자정착촌으로, 정부의 정책 아래 강제 격리된 채 한센인들의 생계를 위해 축산업을 시작했다. 허허벌판 같던 마을이 하나둘 집과 축사가 지어지며 밤낮없이 일을 하며 생계를 위해 일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A씨는 지난 7월 30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 마을을 살려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게재했다.

그는 “한센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뚱이로 마을에 들어와서 결혼하신 부모님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두 분의 손으로 이루셨다”며 “집은 가난했지만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과 동생들 때문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여수·순천 시내로 옷 사러 가자고 해도 부모님을 돕지 않으면 밤늦게 들어오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고 했다.

A씨는 고등학교 시절 아프고 슬픈 기억을 떠올렸다. 친한 친구가 “니 옷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 날 이후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와 거리를 두고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 마을의 한센인 3세들이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마재일 기자가 주민이 거주하는 집 벽 옆에 고여 있는 축산 분뇨를 삽으로 젓자 악취가 진동했다. (사진=김민준)
   
▲ 축사와 맞닿아 있는 집에서 거주하는 주민이 악취를 막으려고 가림막을 설치한 모습. 이 집 벽을 따라 고인 분뇨 악취가 진동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조용히 있으라’ 70년 간 들었던 소리

A씨는 한센인 마을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도성마을은 70-80년대에 들어선 축사 모습 그대로이며,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축사에 빙 둘러 싸여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집과 축사 거리가 수 미터에 불과하고 심지어 노후 석면 슬레이트 지붕 축사들과 집이 맞닿아 있었다. 주민이 사는 집 벽을 따라 설치된 배수로에는 검은 분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여기저기 슬레이트로 지어진 빈 축사들에, 태풍 매미와 볼라벤으로 반파된 축사와 축분 냄새가 마을을 뒤덮고 있어 도시에 사는 분들은 경악에 마지않는 그런 마을이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 마을을 보면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마을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이런 마을에 사람이 사는지 의문을 표할 것이다. 도성마을을 처음 방문한 대다수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들은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그러나 하찮고 냄새나고 더러운 마을이지만 우리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라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A씨는 “(마을 인근에는)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관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한마디로 냄새나는 동네,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는 동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에도 항의 한 번 못하는 동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닌 것 같은 동네, 70-80년대 정부 정책으로 축산업을 시작했지만 태풍 피해에도 누구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은 동네, IMF시절 힘들게 버티던 축산 농가들이 줄줄이 도산해 외부인에게 마을의 토지가 넘어가는 걸 보면서도 도울 힘이 없어 바라만 봐야했던 이곳이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성마을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마을 밖에서는 규제 때문에 하지 못하는 축산을 외부인들이 마을 토지를 구매해 들어와 옛날 축사에 지붕만 약간 손질해 축산업을 하다 보니 이로 인한 주민의 피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자기 땅이라며 다른 사람들의 불편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 어떤 규제도 할 수 없고, 비가 오면 축사의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는 그런 불결한 환경 속에서 오늘도 살아간다고 했다.

A씨는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요?”라고 반문하면서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한 우리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자조했다. 특히 그들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절망했다. 그는 “우리가 목소리를 낸다면 또 이야기 하겠지요. ‘조용히 있으라’고 말입니다. 이는 지난 70년 간 들었던 소리입니다”라고 했다. 더욱이 “여수시의 어떤 분들은 이런 편지를 아무리 많이 보내도 누구하나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한테 보내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고 말했다.

▲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그는 “석면 슬레이트에 둘러싸여 집과 축사의 구분도 없이 냄새 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2018년 도성마을의 모습”이라면서 “손으로 코 막고 눈살 찌푸리지 말고, 꼭 한번 마을 전체를 돌아보고 당신이라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또 한센인이라고 천대 받고 손가락질 받던 이 마을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마을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A씨는 그러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땅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그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소리쳐도 들려오는 것은 대답 없는 메아리이며, 귀찮다는 시선이며 부정적인 말 뿐이다”며 “우리도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의 소리가 부당하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외치고 싶다. 제발, 우리의 소리를 들어 달라. 이 땅에서 소외당하는 여수 애양원 도성마을을 돌아봐 달라. 오늘도 기대하고 내일도 기대한다”고 글을 맺었다.

이와 관련 전남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달 23일 여수시와 합동으로 도성마을을 방문해 환경오염 실태에 대한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연구원은 마을의 환경오염 실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국립환경과학원을 비롯해 전남도, 여수시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이동식 대기오염측정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환경과학원에 대기환경 조사를 의뢰해 오염원 추적에 나설 계획이다. 이어 전남도 등과 용역 착수를 협의해 전반적인 실태 파악과 후속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분뇨 악취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1급 발암물질인 노후 석면 슬레이트에 수십 년간 노출돼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수시, 지역 국회의원, 도·시의원 등 지역 정치권이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15일 현재 청원 참여 인원이 9명을 기록하고 있어 청와대 공식답변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 중 30일 이내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건에 한해 공식 답변을 내놓고 있다. 청원 마감은 오는 29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