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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뛰어넘은 삶, 이순신들에게 길을 묻다”‘이순신-돌산로’를 순례하며 의(義)를 만나다.
젊은 기자들 8기 특별취재반  |  yspa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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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4  11: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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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23년(940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해읍현을 여수현으로 변경하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순행할 때,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을 여수(麗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 26년(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여수에 통제사영을 설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수가 지리상으로 외딴 곳이어서 일본과 해전을 벌이는 데 불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순신은 본영은 그대로 남겨둔 채 한산도로 본진을 옮겨갔습니다.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여수 지역에서는 정철·정춘·정린·정대수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592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들은 재산을 털어 이순신의 휘하로 들어가 당항포로 진격하는 등 많은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 이들은 여수시 웅천동에 위치한 오충사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흥국사를 중심으로 한 의승수군(義僧水軍)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직 관료, 무과 출신, 유생, 농민 등이 의병(義兵)이 되어 의승(義僧)들과 연합하여 전라도 수군의 한 축이 되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의병’과 ‘의승’이라고 부르는데, 과연 의(義)란 무엇일까, 그것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충무공의 얼이 깃든 여수’라고 말하는데, ‘충무공의 얼’이 바로 의(義)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이순신-돌산로는 ‘의’만을 생각하며 걷기로 하였습니다.

- 젊은 기자들 8기 ‘이순신-돌산로’ 특별취재반 대표기자 정명규
 

   
▲ 이순신-돌산로. ‘여수꽃빵―(약 1.5km, 도보 약 25분)→장군도―(약 7.6km, 도보 약 115분)→무슬목―(약 1.5km, 도보 약 55분)→대미산―(약 12.4km, 도보 약 200분)→방답진’ 총거리 약 23km, 도보 6시간 45분. ⓒ이보겸

“나눔에서 기쁨을 찾는 여수 사람들, 여수꽃빵”

   
▲여수꽃빵. 노인 일자리가 희망입니다. 당신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기쁩니다. ⓒ박진

이순신-돌산로 순례를 떠나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무려 6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그 먼 길에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 줄 양식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수 하면 음식이 정말 맛있지만, ‘맛’을 넘어선 ‘멋’이 느껴지는 먹거리로 오늘은 ‘꽃빵’을 추천합니다.

동백꽃잎을 활용하여 우리밀로 만든 꽃빵은 한마디로, 맛있으면서도 건강한 먹거리입니다. 하지만 그런 맛을 뛰어넘어 꽃빵은 ‘어르신들의 행복한 일터’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멋진 음식이기도 합니다. 여수꽃빵은, 2015년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수꽃빵은 만 60세 이상 노인들의 건강한 노후 보장을 위하여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착한 기업입니다. 지금도 15분의 어르신들이 만드는 꽃빵은, 모양만 꽃이 아닙니다. ‘여수의 시화(市花)’인 동백꽃으로 만든 동백주, 동백청 등을 첨가해 만들었기에 한입 베어 물면 여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빵입니다. 대부분의 꽃들이 숨죽이고 있는 한겨울에 힘차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꽃은, 꽃말이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입니다. 우리는 어르신들을 사랑합니다!

“바위를 들어 성(城)을 쌓은 작은 이순신들, 장군도 수중석성”

   
▲장군도 수중석성. 여수 사람들은 장군도 수중석성을 ‘여수의 여의주’라고 부릅니다. ⓒ정명규

우리나라 유일의 해저석성이라고 평가되는 장군도 수중석성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0년 전인 1497년(연산군 3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수중에 쌓은 석성입니다.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한 이량 장군은, 왜구의 침범 해로로 이용되는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에 돌을 쌓아 수중제방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성의 역할을 한다 하여 수중성이라 불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썰물이 지면 축대가 수면 위로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와 마치 성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도 좌수영과 돌산을 잇는 해저 방어장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592년 1월 11일
늦게 동헌에 나가서 공무를 보았다. 이봉수가 선생원에 쓸 돌 뜨는 곳에 갔다가 와서 보고하기를, “이미 큰 돌 17덩어리에 구멍을 뚫었다.” 한다. 서문 밖의 해자가 네 발이나 무너졌다. 심사립과 담화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량이 만든 해저석성에서 영감을 받아 왜적을 막는 방어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커다란 바윗돌을 바다에 가라앉힌 뒤 쇠로 만든 고리를 이어서 만든 이 장치는 울돌목에도 설치되어, 일본 전함 133척 가운데 31척을 격침시키는 비밀 병기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바다 속에 저 수중석성을 쌓으며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여수 사람들이 수중석성을 ‘여수의 여의주’라고 부르는 까닭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 빠진 수중석성 주변에 모여 미역과 굴을 채취하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수중석성이 지금은 여수 사람들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습니다.

   
▲거북선 모형관. 장군도 인근에 여수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떠있는 거북선 모형관이 있습니다. ⓒ정명규

장군도 인근에는 거북선 모형관이 있습니다. 이순신광장에 있는 전라좌수영 거북선 모형에 비해 작고 오래 되었지만 내부에는 거북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구조, 조정원리에 대한 설명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자그마한 사당, 그리고 전쟁 상황을 재현한 전시물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다 위에 올라 거북선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이순신광장에 위치한 거북선에서 구경하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장군을 도와 왜적을 섬멸한 작은 이순신들, 무술목 전적지”

   
▲무슬목 전적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선 60여 척과 왜군 300여 명을 섬멸한 전승지인 무술목이 지금은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민서

돌산대교에서 8Km정도 떨어진 무술목 전적지는 돌산대교를 지나 한참 가다 보면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술목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유인하여 왜선 60여 척과 왜군 300여 명을 섬멸한 전승지입니다. 이곳은 무실목·무술목 등으로 불리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어서 순례를 떠나기 전에,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을 찾았습니다.

- 무슬목이 맞나요, 무술목이 맞나요?
“조선 군대가 왜군을 섬멸한 해가 무술년이어서 전적을 기리고자 무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왜군의 피로 붉게 물든 냇물이 피내로 되었다고 ‘무서운 목’이라는 뜻으로 무술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아무튼, 이순신 장군은 무술목의 쏙 들어간 지형을 이용하여 꾀를 내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조선 군인들은 왜군들에게 무술목은 육지가 없고 탁 트인 곳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 도망가는 왜군들이 길이 막혀 많이 죽었다고 해요. 이런 사실로 보아 ‘무실목, 무슬목’보다는 ‘무술목’이라고 부르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무술목에서는 어떻게 그런 대승을 거두었나요?
“무술목은 동쪽과 서쪽에 바다를 두고 육지의 길이가 고작 100m 정도의 좁은 길목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무술목은 조수간만의 차가 아주 심했다고 해요. 썰물 때면 바다 밑의 암반이 드러나 사람들이 걸어서 양쪽 지역을 오갈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이순신은 이곳에서 왜군을 무찔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마을 주민을 동원해 베를 거두어 무술목의 잘록한 부분을 뒤덮어, 멀리서 보면 물길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영문도 모르고 무술목으로 들어온 왜선 60여 척은 좌초되었고 왜군 300여 명도 함께 섬멸되었지요.”

   
▲여수해양수산과학관. ‘젊은 이순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순신-돌산로’를 함께 순례하는 학생들입니다. ⓒ정명규

무술목 해변을 둘러본 뒤에 근처에 있는 해양수산과학관에 가 보았습니다. 전시수족관에는 우리 지역 해양에 살고 있는 100여 종, 약 5천 마리의 어류를 만날 수 있고, 체험수족관에 가면 직접 물고기도 만질 수도 있습니다. 까치상어도 볼 수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니모도 볼 수 있고, 로봇 물고기도 볼 수 있습니다. 무술목을 찾으면 꼭 들르시기 바랍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나라를 구한 작은 이순신들, 대미산 월암산성”

   
▲대미산 월암산성.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대미산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월암산성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수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습니다. ⓒ정명규

대미산에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 왔던 백제의 산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보수도 제대로 안 하고 방치되어 있지만 월암산성(月巖山城)을 둘러싼 옹벽들과 산성 내의 울창한 숲을 보면 백제의 변방이었던 돌산의 백제산성의 위용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대미산 월암산성은 오른쪽 천마산과 더불어 남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 경로를 살피고 방어하는 거점산성이었습니다. 돌산 무술목에 우뚝 솟아 있는 대미산은 서쪽에 있는 천마산과 함께 여수에서 돌산으로 들어오는 좁은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우리 선조들의 슬기로움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대미산에는 왜군이, 소미산에는 조선군이 서로 대치한 적이 있습니다. 대미산을 탈환하고자 고심하던 이순신 장군은, 꿈에 백발노인의 계시를 받습니다. 대미산 정상이 보이지 않을 때 공격하라는 계시였습니다. 어느 날 장군이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안개가 대미산 정상에만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이때라고 판단한 이순신 장군은 침묵의 공격 명령을 내리고 왜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 은밀히 접근하여 일거에 격파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설화에는 민중의 소망이 녹아 있는데, 이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돌산갓김치. 무술목 삼거리상회에서 돌산갓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들었습니다. 돌산에 가면 맛보아야 하는 음식이 돌산갓김치입니다. ⓒ장민서

돌산갓김치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도 나올 만큼 여수의 대표 먹거리입니다. 돌산갓김치에 쌀밥 한 그릇이면 그냥 그만입니다. 다른 지역에도 물론 갓김치가 있지만, 돌산갓이 유명한 이유는 따뜻한 남단의 기후와 알칼리성 토지에서 해풍을 맞으며 자라, 특유의 향이 강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어서라고 합니다.
삼거리상회 이학수 사장님은 갓김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 돌산갓이 다른 지역의 갓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다른 갓은 막 담가야 맛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식감이 떨어져. 근데 이 돌산갓은 익으면 익을수록 와삭와삭 씹히는 식감이 그만이야. 맛도 좋아지고. 그게 차이야”
- 왜 돌산갓이 맛있어요?
“해풍이 좋은데 토양까지 딱이야.”
- 돌산갓은 어느 때가 제일 맛있어요?
“철마다.”
- 철마다?
“예에~, 철마다! (웃음) 하지만 월동한 게 제일 맛나다고 봐야제. 그니께 초봄.”

돌산갓이 맛있는 진짜 이유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켜낸 여수 사람들이 키워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그 맛은 바로 여수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싸워온 우리 선조들의 삶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우리나라를 지킬 젊은 이순신들, 방답진”

   
▲방답진 성곽. 모두 허물어지고 작게나마 남은 방답진 성곽 옆에 안내판이 초라하게 서 있습니다. ⓒ정명규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수군기지 중 하나인 방답진(防踏鎭)은 돌산읍 군내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왜구 방어의 최일선 수군진이었습니다. 성벽의 길이는 외성과 내성의 길이를 합치면 1195m이며 사다리꼴의 사각형의 성입니다. 성문은 동문, 서문, 남문이 있는데, 동문은 지금의 돌산초등학교 쪽으로 넘어가는 동쪽 고개 길목에 있고, 서문은 군내리 교회 뒷산 중턱을 따라 비스듬하게 내려가면 도로 길목에 그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남문 터는 서문 터에서 도금 터를 넘어 남쪽 바닷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방답진 선소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본영 선소와 함께 거북선이 건조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난중일기 1592년 2월 자에 보면, 방답진 선소에서 전함과 거북선을 건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방답진 유적은 방답진성의 성벽 일부와, 전선을 정박하거나 보호하는 데 이용되었던 굴강, 그리고 적의 침입을 알리던 봉화산의 봉수대 등입니다.
 

   
▲얼굴을 가린 젊은이순신들. 함께 이순신-돌산로를 순례한 친구들은 끝내 얼굴 드러내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이 젊은이순신의 본모습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장민서

젊은 이순신 선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순신-돌산로’를 함께 순례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 마지막 코스인 방답진성과 그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두서영(충무고 2년) : “전함을 만들고 수리하는 곳인 방답진 선소는 시전동에 있는 여수 선소와는 달리 바로 근처에 마을이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자에 서서 굴강을 내려다보며 선조들이 땀 흘리며 배를 만든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개인 이순신’만을 존경했던 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배를 만들고 수리했을 사람들, 그 배에서 목숨을 바쳐 왜군과 맞서 싸웠을 수군들, 수군들의 죽음으로 가슴 아파했을 그의 가족들…. 이런 수많은 사람들이 여수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유민(충무고 2년) : “전쟁의 흔적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유적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아 화가 났습니다. 친구들이 방답진 성곽을 소개할 때 ‘설마 이게 성곽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옆에는 쓰레기봉투들이 쌓여 있어 악취가 났고, 방답진 성곽이라고 알려주는 안내판 또한 부실했습니다. 돌산에 있는 유적들을 잘 보존하는 것이 ‘젊은 이순신들’인 우리의 책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젊은이순신대회. 여수충무고 이순신문화제입니다. 젊은이순신으로 선발된 친구들에게 시상하는 모습입니다. ⓒ김서영

여수충무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젊은 이순신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지덕체를 겸비한 젊은이순신을 요구하는 대회의 성격상, ‘난중일기’에 관한 지필평가를 통해 ‘지’의 수준을 평가하고, ‘이순신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주제로 기술한 논술문으로 ‘덕’의 수준을 평가하며, ‘이순신로’ 여수로, 여천로, 돌산로 도보순례를 통해 ‘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대회입니다.

난중일기에 나온 옛날의 지명을 오늘날 여수의 지명으로 익히는 것도 힘들었고, 이순신로를 주말마다 친구들과 순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올해 지원자들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부모상을 당하여 효의 길을 길어간 의병장 이인영과 충의 길을 걸어간 충무공 이순신”을 비교하라는 논술 문제였습니다.

   
▲젊은이순신들. 젊은이순신으로 선발된 김지담(2학년), 유동현(2학년), 배수현(1학년), 박수현(1학년) 학생. ⓒ김민정

올해의 ‘젊은이순신’으로 선발된 자랑스러운 친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친구들에게 ‘여수’는 뭐예요?
김지담 :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는 ‘여수랑 이순신이랑 그렇게 연관이 있나?’ 싶었는데, 대회가 끝나고 나니 ‘여수가 곧 이순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라’란 또 무엇이고요?
유동현 : “이순신 장군이 그러셨듯이,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게 나라 아닐까요?”

- ‘이순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박수현 : “우리가 살아갈 길을 알려주신 ‘삶의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 ‘충무고’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배수현 : “그냥 공부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젊은이순신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였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작성 : 젊은 기자들 8기 ‘이순신-돌산로’ 특별취재반 정명규, 이보겸, 장민서, 박진, 최민경 기자

덧붙이는 말 : 이순신-돌산로를 순례하며 우리는 모두 이순신이고 이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국정농단으로 두 분의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는 우리 사회가 다시 돌아가서 마주해야 할 분이 바로 이순신이고, 그리하여 모두들 ‘작은 이순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 비극은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여수에 오면 관광만 하지 말고, 이순신을 만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더욱 간절합니다.

(젊은 기자들 8기 ‘이순신-돌산로’ 특별취재반 대표기자 정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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