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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이웃 ‘한센인’] 프롤로그 – 굽이굽이 애달픈 삶, 한스런 삶편견과 무지가 빚어낸 비극…우리 안의 경계 사라져야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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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1  22: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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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애양원 한센인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한센인 사진. (사진=마재일 기자)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감염증으로 나균이 피부, 말초 신경계, 상부 기도를 침범해 병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과거에는 문둥병, 나병 등으로 비하해 불리기도 했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한센병에 의해 장애가 발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한센병 퇴치를 선언했다. 항생제인 ‘리팜피신’을 한번만 복용하면 균 감염력이 99% 사라지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더라도 2주에서 2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지 않으며, 병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 5년에서 20년 정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 완치가 된다. 고흥 소록도병원, 여수 애양원 입원자들의 경우 대부분 한센병 후유증에 대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한센인은 약 2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는 한센인 정착촌 90여 곳에 한센인 수는 2002년 1만8014명에서 2010년 1만3316명, 지난해 1만33명으로 해마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올해 1만 명 미만으로 줄었고, 2025년이면 7262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것이다.

한센인은 한때 하늘이 내린 병, 천형(天刑)에 걸렸다고 해서 일제와 국가에 의해 철저히 강제 격리됐다. 가족과도 생이별해야 했다. 대부분 한센인은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마을 우물에서 물을 못 먹게 되고 밥도 같이 못 먹었다고 한다.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를 이기지 못해 몰래 마을을 떠나거나 쫓겨났다. 소록도에는 ‘몰라 3년, 알아 3년, 썩어 3년’이라는 말이 있다. 한센병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한센병은 낫지 않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인줄 몰랐던 잠복기 3년, 병을 알고 우물우물 그저 망설이다 3년, 이제는 병이 커져서 상처 부위가 감염돼 썩어가고 눈이 멀고 팔 다리가 잘린 채 살다 죽는 생활 3년’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가족과 고향을 등진 한센인들은 폭행과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구걸 등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결국에는 당국에 붙잡혀 고흥 소록도병원, 여수 애양원 등으로 강제 이송됐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쫓기듯 정착촌에 들어오면서 고립된 채 외롭게 절망 속에서 잊힌 존재가 돼 갔다. 평생 한센인들이 받은 사회적 천대와 편견, 차별의 굴레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제와 국가의 강제 단종·낙태수술로 한센인들의 인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일제는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 수천 명을 소록도에 격리해 강제 노역을 시키고 단종·낙태 수술, 생체 실험까지 했다. 수술대와 인체해부대, 감금실, 검시실, 한센인 화장터는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센인 인권유린은 소록도뿐만 아니라 인천, 익산, 칠곡, 안동, 여수에서도 행해졌다.

여수에 한센인이 정착한 것은 1925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한센병 환자 치료와 숙소, 교회가 건축된 후 광주나병원이 1927~1928년 여수로 이전하면서다. 한센병 환자 600여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이 된다. 지난 8월 기준 애양평안요양소와 도성마을 등에 한센인 151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부매일신문>은 최근 한센병 회복자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 도성마을의 충격적인 실태를 보도한 바 있다. 아이들을 포함한 주민들은 가축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주변 산단에서 날아오는 대기오염물질에도 건강권과 환경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악취에 두통약을 달고 살고 환풍기 소리에 수면제를 먹어야 잔다. 여수시민이면서도 90년을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아야 했던 주민들. 한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센인 2세라는 이유만으로.

본지는 아름답지만 한센인들의 상처와 슬픔을 간직한 비극의 섬 소록도를 찾아 이곳에 얽힌 회한의 역사를 돌아본다. 또한 여수지역에 거주하는 한센인 등을 만나 국가와 사회의 오해와 편견, 무지로 굽이굽이 애달픈 삶, 한(恨) 많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와 기억을 더듬어 이를 연속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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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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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귀련 2018-11-12 06:30:26

    저도 한센인의 가족으로서 사회의 편견과 시선이 다시생각나네요. 억척같이 매일 일만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기자님.감사합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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