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희생자 3명 재심인용 결정 재항고 기각
71년 만에 진실 드러나나…순천지원서 재심 재판 진행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 LIFE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칼 마이단스(Carl Mydans)가 찍은 사진. 촬영일 1948년 10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불법 체포돼 구체적인 범죄 증명도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71년 만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 모씨 등 3명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군·경이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에 대한 체포·감금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이에 부합한다”며 “원심의 재심개시 결정에 관련 법령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여수·순천·광양·구례·보성 등 전남동부 지역민 1만1311명(1949년 전남도 집계)이 희생된 비극이다.

당시 국군은 지역을 탈환한 뒤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에 협조·가담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내란죄로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

▲ 2009년 10월 19일 여수시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에서 열린 여순사건 61주기 위령제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동부매일 DB)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8명이 군과 경찰에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당했다며 이들을 민간인 희생자로 확인했다.

이후 이씨 등의 유족들은 군과 경찰이 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뒤 사형을 선고했다며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은 유족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은 “과거사위 결정은 포괄적인 불법 체포·감금이 있었다는 취지에 불과해, 구체적으로 이들에 대해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수사·공판 기록이 없는데 유족들 주장과 역사적 정황을 근거로 직무상 범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항고했다.

2심도 “판결문에 내란 및 국권문란죄라고만 기재됐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없다”면서 “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춰 이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됐다”며 1심의 재심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날 “적법한 절차없이 체포·감금됐다”며 재심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재심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 반군 협력자 색출 장면.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 LIFE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칼 마이단스(Carl Mydans)가 찍은 사진. 촬영일 194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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