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 용어는 기독 신앙과 배치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의미”
‘위령사업 시민추진위원회’를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로 개칭 촉구

‘추모사업’은 작년 여순유족회·4대 종단·시민추진위가 협의해 결정
“조례 명칭 등에 맞게 위령으로 통일해야 vs 화합 먼저, 실익 없어”

여수시의회가 최근 표결 끝에 통과시킨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지역 교계의 반발을 사는 등 논란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여수시의회는 지난달 27일 제191회 여수시의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주종섭 의원이 수정발의한 ‘여수시 여수·순천 10·19사건 지역민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명칭을 ‘추모’로 할 것인지 ‘위령’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 LIFE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칼 마이던스(Carl Mydans)가 찍은 사진.

‘추모’라는 용어 사용은 지난해 여순사건 70주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순사건유족회와 4대 종단, 시민추진위원회가 어렵게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민추진위원회는 위령사업과 추모사업의 두 가지 명칭을 놓고 협의한 끝에 4대 종단이 다 참여할 수 있도록 ‘추모사업’으로 명칭을 정했다.

이에 따라 여수시는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0월 19일 이순신광장에서 첫 합동추념식을 개최했으며, 지역 교계는 이 자리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시의회 기획행정위도 여순사건 특위 의원들의 의견과 집행부 실무 부서의 의견 등을 종합 반영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등을 앞두고 지역 내 화합을 위해서 상임위 안인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키로 결정했다.

그런데 주종섭 의원이 본회의에서 명칭을 ‘위령사업 시민추진위원회’로 변경해야 한다며 수정안을 발의, 표결 끝에 통과하면서 합의는 없던 일이 됐다.

주종섭 의원은 조례의 제명과 내용의 통일성을 기하고, 모든 관련 조례가 위령으로 명기돼 있다는 점과 제주 4·3 특별법에도 위령으로 돼 있는 점 등을 들어 시민추진위의 명칭을 위령사업으로 변경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성미 기획행정위원장은 “위령으로 할 경우 여순사건 관련 행사에 기독교계에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인 데다 유족회도 ‘추모’에 동의했고, 상임위도 집행부와 협의해 ‘추모’로 표현하기로 했는데 왜 굳이 ‘위령’으로 수정안을 내느냐”고 수정안을 반대했다.

전창곤 여순사건 특위 위원장도 “‘위령’으로 수정안을 내서 얻게 되는 실익이 무엇이냐”며 “‘추모’로 한다고 해서 중대한 법적 흠결이 있는 것도 아닌 만큼 화합 차원에서 원안대로 통과하도록 해 달라”고 했다.

결국 표결에 부쳐 재석 의원 25명 가운데 찬성 13명, 반대 10명, 기권 2명이 나와 결국 ‘위령’으로 결정됐다. ‘위령’에 서완석·정경철·고용진·주재현·고희권·김승호·나현수·주종섭·문갑태·강현태·김영규·김행기·백인숙 의원은 찬성, 송재향·박성미·정현주·정광지·강재헌·이선효·전창곤·김종길·이찬기·송하진 의원은 반대했다. 민덕희·이미경 의원은 기권했다.

▲ 여수시의회 의원들이 지난해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서 헌화 분향하고 있다. (사진=여수시의회 제공)

이와 관련, 여수지역 기독교 17개 단체로 구성된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이하 여기총)’는 1일 입장문을 내어 ‘위령사업 시민추진위원회’를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로 개칭해 줄 것을 촉구했다.

여기총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위로하는 ‘위령’이라는 용어는 기독교 신앙의 도리에 비추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의미이므로 결코 동의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총은 ‘위령사업 시민추진위원회’를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로 개칭하지 않을 경우 “희생자를 위한 추모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국회 계류 중인 특별법의 제정을 위해서도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여수시에서 계획한 평화공원 조성사업 등 제반사업에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며 합동추념식 등 관련 행사에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총은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 600여 교회의 지도자와 10만 성도들은 지난해 여수·순천 10·19사건 70주년 기념 추모사업이 보여 주었던 시민 화합과 상생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관철될 때까지 예의주시 할 것이다”고 밝혔다.

여기총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여순사건유족회와 4대 종단, 시민위원회가 화합과 상생을 위해 협의한 끝에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로 결정한 것인데 시의회가 이를 무시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지역 교계가 작년에 처음으로 여순사건 합동추념식에 참석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화합과 상생 분위기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때 아닌 ‘용어’ 논쟁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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