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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인권유린 ‘단종수술’ 국내 최초는 여수애양원[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이웃 ‘한센인’] (3-1)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한센인에 대한 단종수술은 1992년, 낙태수술은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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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6  11: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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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은 한때 하늘이 내린 병, 천형(天刑)에 걸렸다고 해서 일제와 국가에 의해 철저히 강제 격리됐다. 가족과의 생이별은 물론 고향을 등진 한센인들은 폭행과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구걸 등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에는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등으로 강제 이송됐다.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버림받고 쫓기듯 정착촌에 들어오면서 고립된 채 외롭게 절망 속에서 잊힌 존재가 돼 갔다. 평생 한센인들이 받은 사회적 천대와 편견, 차별의 굴레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제와 국가의 강제 단종(정관 절제)·낙태 수술로 한센인들의 인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일제는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 수천 명을 소록도에 격리해 강제 노역을 시키고 단종·낙태 수술, 생체 실험까지 했다. 수술대와 인체해부대, 감금실, 검시실, 한센인 화장터는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 스스로 “세 번 죽는다”고 말할 정도다. 한센병 때문에 고통 겪고, 죽어서 해부되고, 해부된 뒤 화장된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 뒤에도 한센인은 차별과 편견,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고흥 소록도 84인 학살사건과 경남 사천 비토리 한센인 학살사건처럼 목숨을 잃거나 주거와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서 이 땅에서 설 자리를 잃는 등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단종·낙태 등의 한센인 인권유린은 소록도뿐만 아니라 여수, 인천, 익산, 칠곡, 안동에서도 행해졌다. 한센인 부부로 함께 살려면 남편은 단종수술을, 임신한 아내는 낙태수술을 당해야 했다. 결국 많은 한센인이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고 피울음 삼키며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한센인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조선총독부가 1916년 한센인 격리수용을 위해 소록도에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자혜의원’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은 전염병 예방과 우생학적 이유로 단종수술을 시행했고 한국 정부가 이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1935년 여수애양원(현 애양병원)에서 단종수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소록도병원은 1936년 부부 동거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한센인에 대한 단종수술을 공식 도입했다.

단종수술은 1940년대 후반 잠시 중단됐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격리수용시설 내 가정사(부부 병사)의 조건으로 다시 시작됐다. 한센인들은 1960년대 이후에도 ‘병원 내 임신·출산금지’ 정책에 따라 표면적 동의하에 단종·낙태수술을 받았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단종수술은 1992년, 낙태수술은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피해를 당한 한센인들은 2007년 설치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낙태·단종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피해자만 6462명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가 수술 등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하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39명이 6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 참여한 여수애양원의 한센인은 단종 8명, 낙태 20명 등 총 28명이다.한센병은 1900년대 초 이미 전염병이지만 유전되지 않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었다.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으며 유전도 되지 않는다. 또한 1950년 치료약도 개발돼 치유 가능한 질병이었다. 한센병은 완치되면 흔적만 남는 피부병에 불과했다. 결국 단종·낙태 수술은 한센병은 유전된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국가 정책의 잘못된 결과였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2월 15일 과거 한센병을 앓았던 강모(당시 81)씨 등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000만 원,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000만 원씩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강씨 등은 1955∼1977년 사이에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부산 등에서 격리 치료를 받으며 강제로 낙태·단종 수술을 받았다.

대법원은 “한센인들에게 시행된 수술 등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이므로, 국가는 그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한센인 강제 수술이 무지 속에 이뤄진 국가 폭력임을 인정한 것이다.

한센인권변호단(단장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공익재단 이사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기에 앞서 지난 2017년 1월, 2004년부터 13년간 일본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한센인 피해 소송 과정과 결과를 모아 <한센인권활동백서>를 펴냈다. 여기에는 고흥 소록도, 여수애양원 등에서 한센인들에게 행해진 단종과 낙태에 대한 하급심과 고등법원 판결 등에서 다뤄진 주요 쟁점을 정리한 소송 준비서면과 판결문이 실려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부설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2010년 7월 20일부터 2011년 8월 3일까지 조사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도 여수애양원의 한센인들에게 행해진 강제 단종·낙태, 강제 이송·격리, 강제 노역이 드러나 있다.

※ 자료 출처 : 국립소록도병원자료관, 한센인권활동백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여수애양원 한센기념관, 애양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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