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여수시 미온적 대처 ‘뒷북 행정’ 이제 그만
다른 지역보다 암 발생률 높다는 조사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불안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 여수국가산단.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국가산단의 일부 기업과 측정대행업체가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실태가 드러나면서 지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가운데 이번 사건에는 광주·전남 235개 기업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여수와 광양지역 사업장은 모두 166곳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한다.

그동안 대기오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자료축적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다보니 지역민들은 50년이 넘도록 석유화학공장과 제철소 등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이 건강에 이롭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걱정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대기오염물질 수치 조작으로 두 눈 뜨고도 속아왔던 오염유발 행위가 넘쳐나고 있음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노를 넘어 비통한 마음마저 들게 하고 있다. 기업들은 자동측정기기를 제멋대로, 입맛대로 조작해 그동안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버렸다.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1급 발암물질과 온 국민의 숨통을 옥죈 미세먼지 원인물질의 수치를 조작해 대기 중으로 마구 배출함으로써 산단 노동자와 지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었다는 것에 지역민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여수국가산단 주변 마을 주민들이 1급 발암물질과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의 행태를 규탄하며 내건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특히 이번 배출량이 조작된 물질 중에는 염화비닐과 벤젠, 포름알데히드와 부타디엔 같은 1급 발암물질과 질소산화물 등 미세먼지 원인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여수·순천·광양 등 광양만권 지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1군 발암물질은 암 발생과의 상관관계가 명백히 확인된 물질이다. 염화비닐은 국제암연구소(IARC) 등이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는 독성 화학성분을 가지고 있다. PVC식품포장배, 비닐랩, 샤워커튼 등에 들어가는 폴리염화비닐(PVC)을 만드는 화학물질이다.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도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며 고독성·발암성 화학물질을 발생시킨다. 벤젠은 주로 석유류에서 발생하는 가연성의 방향족탄화수소로, 대기환경보전법 상 특정대기유해물질 중의 하나다. 중독 시에는 중추신경계 마비를 불러온다. 포름알데히드 또한 높은 농도에 장기간 노출 시 부비강, 비인후, 뇌에 암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여수국가산단 주변 신풍리 도성·구암·신흥·덕산마을 주민들이 지난 24일 LG화학 여수공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염화비닐, 벤젠 등의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눈·코·입에 자극 증상을 느끼고 호흡곤란이나 구토, 기침 심지어는 경련까지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높은 농도의 1급 발암물질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다른 발암물질 등과 함께 암 유전자에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는데 백혈병, 간 혈관 육종이나 폐암, 뇌암 등의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산단 일부 기업들은 미세먼지 생성물질인 먼지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측정값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미세먼지를 사람에게 발암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미세먼지 성분인 황산염, 질산염, 광물 등이 호흡기에서 걸러지지 못하거나 피부로 직접 침투해 각종 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수·광양 시민들이 다른 지역보다 암 발생률이 높다고 불안해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동안 일부 통계에서는 여수·광양이 갑상선암 발생률이 높다거나 다른 암 발생률이 타 지역에 비해 높다는 조사가 있는 만큼 관계당국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 여수국가산단 인근에 내걸린 1급 발암물질과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의 행태를 규탄하는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 2016년 6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단위로 15년간의 수치를 분석해 발표한 ‘시·군·구별 암 발생 통계 및 발생지도’ 보고서에 따르면 여수, 광양, 순천 등 전남 지역에서 갑상선암이 많이 발생했다. 2009~2013년 여자 갑상선암 발생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광양시로, 인구 10만 명당 185.1명이 발생했다. 보고서는 다만 이 통계에서 암 발생과 거주환경 간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도출해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여수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4월 5일 당시 서정한 전남도의원은 제321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여수국가산단 관련 암 발생 역학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서 의원은 “2015년 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 당 280.5명이며 특히 산단이 접해 있는 지역에서 암 발생률이 높게 나왔고 ‘2014년 여수시 암 역학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여수가 비슷한 상황의 목포에 비해 갑상선암 발병률이 2배 이상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단 지역 환경오염 노출과 건강영향 감시사업 용역에 다각적인 요소를 반영해야 하며, 조사결과에 따라 여수·순천·광양 등 동부지역 주민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전남도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여수국가산단 주변 삼일·주삼·묘도 주민들이 1급 발암물질과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의 행태와 관리감독기관인 전남도를 규탄하는 현수막 수백장을 내걸었다. (사진=마재일 기자)

그러나 전남도와 여수시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던 도와 시는 이번 대기오염 조작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주변 대기실태조사 및 주민 유해성·건강 영향평가(입주업체 부담)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어 ‘뒷북 행정’의 극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번 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불법을 저지른 기업도 문제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지자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2014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전남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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